수입규제 도미노 해제 우려했나… 상소기구 내 美 입김 컸을 가능성정부, 수산물-환경요소 상관성 집중 설명… 민간전문가 적극 영입도
  • ▲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수산물 수입 반대 기자회견.ⓒ연합뉴스
    ▲ 일본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 수산물 수입 반대 기자회견.ⓒ연합뉴스

    우리나라가 예상을 깨고 한·일 수산물 분쟁에서 이길 수 있었던 배경으로 미국의 불안감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이 지면 미국도 질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이례적인 뒤집기로 이어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12일 우리나라가 일본 원전사고 지역인 후쿠시마 인근 8개 현(縣)의 수산물을 수입 금지한 조처가 타당하다고 결론 내린 세계무역기구(WTO) 상소기구의 판정에 대해 "이번 판정을 높이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WTO 위생·식물위생(SPS) 협정 관련 주요 분쟁에서 상소기구가 1심 격인 분쟁 해결패널의 판정을 뒤집은 사례는 없었다. 발표 전 시민사회단체는 2심도 패배할 것으로 봤다. 정부 관계자도 "쉽지 않은 소송이라 생각했고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뒀다"며 "패할 경우 국민을 안심시키고자 통관단계 검역 강화와 유통단계 원산지 표시 강화 등 대응방안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부연했다.

    WTO 상소기구가 SPS 협정 관련 분쟁에서 이례적으로 1심 결과를 번복한 이유는 뭘까?

    정부는 상소 이후 식약처 등 8개 관계 부처와 10여 차례 공식회의를 하면서 대응방안을 모색했다고 설명했다. 통상 당국 내 전문가뿐 아니라 민간인력을 적극 활용하려고 미국 통상전문 변호사 출신인 정하늘씨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분쟁대응 과장으로 영입했기도 했다.

    정부가 1심 패소 원인을 분석하고 2심에선 전략을 다소 수정한 것도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1심에선 일본의 상품(수산물)에 하자(연간 방사성물질 노출량)가 없다는 논리에 맞서 (원전사고 지역의) 환경적인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고 역점을 뒀고, 패널은 일본 손을 들어줬다"면서 "2심에선 수산물과 환경요소의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데 치중했는데 이 부분이 먹힌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상고심은 자료를 추가로 받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상소기구의 법률적 판단을 합리적으로 유도하는 데 공을 들였고 이게 주효했다는 것이다.

  • ▲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일본 총리.ⓒ연합뉴스
    ▲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아베 일본 총리.ⓒ연합뉴스
    일각에서는 상소기구 내 미국의 불안감이 한국 승소의 숨은 공신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WTO 상소기구는 사건당 3명의 위원을 배정한다. 이번에 배정된 위원은 미국과 인도, 모리셔스 국적의 위원이다. 인도와 모리셔스는 각각 2016년 2월과 10월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규제를 풀었다. 반면 미국은 일부 수입규제 조치를 여전히 시행한다는 게 산업부 설명이다. 시민방사능감시센터와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51개 국가에서 일본산 농수산물식품 등에 대해 수입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상소기구 내 심리과정과 의사결정 방식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다만 결과를 놓고 보면 이번 의결과정에서 미국의 발언이 컸을 거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일본산 수산물을 수입 규제하는 미국이 한국이 지면 그 여파가 자신에게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1심 결과를 뒤집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일본이 유독 우리나라만 WTO에 제소한 이유에 대해 "우리나라가 가장 강력한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우리한테 이기면 나머지 19개 주요 수입국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규제를 다 풀 수 있다고 전략적 판단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일각에선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자국민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1심 결과를 번복했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미국(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이 그동안의 WTO 판정에 적잖은 불만을 품고 있는 것도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는 견해다. 원래 WTO 상소기구는 총 7명의 심의위원을 둔다. 현재는 미국, 중국, 인도, 모리셔스 출신의 4인 상임위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3명이 결원인 상태다. 이유는 미국이 충원에 반대하고 있어서다. 정부 한 관계자는 "상임위원을 새로 배정하려면 회원국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미국이 반대한다. WTO 판정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게 이유로 알려졌다"며 "미국은 (WTO가) 부여한 권한을 넘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한다는 불만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