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업계 의견 외면하던 당정청 '발등에 불'… 지자체 압박"요금 인상 으름장 말고 대책이 없는 것 같다" 힐난주52시간 연착륙 2조 필요… 유예 연장도 외면
  •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2일 버스노조 노동쟁의 조정 신청에 따른 합동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12일 버스노조 노동쟁의 조정 신청에 따른 합동 연석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광역알뜰교통카드를 도입해 서민 교통비 부담을 줄이겠습니다" vs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버스요금 인상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시행하면서 숲 전체를 보지 못하고 나무만을 본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스 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에 버스요금 인상만을 압박할 뿐 지난 1년간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적잖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자동차노련)이 오는 15일 파업을 예고한 가운데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노조 측과 비공개로 만났다. 류근종 자동차노련 위원장은 회동 후 기자들과 만나 "부총리가 시내버스 인허가 업무가 지자체로 넘어가 지방정부가 역할을 하는 게 맞다. 다만 중앙정부도 시내버스 공공성 강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적극 검토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부총리가 시내버스 요금을 조정할 때가 됐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번 파업과 관련해 버스요금 인상을 해법으로 제시하며 연일 지자체를 압박하는 모양새다. 지난 12일에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서울청사에서 합동연석회의를 하고 "근로시간 단축으로 말미암은 노선버스업계의 인력 추가 고용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며 "고용기금, 공공형 버스 등 중앙정부도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나 현실적으로 시내버스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 10일 노선버스 안정적 운행을 위한 대응방안을 설명하며 그동안 운전인력 양성, 공공형 버스 지원, 고용기금 지원 확대 등 다양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추가 재원 마련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지난 2월 시외·광역급행버스 요금을 인상했다고 부연했다. 정부는 그동안 할 만큼 했으니 지자체가 버스요금을 올려 파업사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교통전문가인 박용남 지속가능도시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버스파업 예고와 관련해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지금껏 뒷짐 지고 있던 장관들이 속속 무대에 등장하고 있다"며 "국토·노동부 장관이 특별한 대책도 없이 나타나 요금 인상을 포함한 재원마련 방안을 지자체가 내놓으라고 재촉한 데 이어 부총리가 노조 측과 비공개 회동을 할 예정이다. 당정 협의를 한다니 여당 실세들도 무대에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누구도 요금을 인상하라고 으름장을 놓는 것 말고는 대책도 없는 것 같다"면서 "정부와 여당이 압력을 넣어 서울과 인천이 (경기와 함께) 요금 인상에 나선다면 시민들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작금의 사태를 왜 미리 방지하지 못했을까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 ▲ 버스업계 근로시간 단축 관련.ⓒ연합뉴스
    ▲ 버스업계 근로시간 단축 관련.ⓒ연합뉴스
    시계를 1년 전쯤으로 돌려보면 사태의 심각성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김정렬 국토부 제2차관은 지난해 4월2일 취임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장 버스 문제가 심각하다"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주당 86시간을 넘기지 못하므로 1일 2교대 형태로 바꾸려면 단순 계산으로 2만5000명의 버스 기사가 필요하다.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17만명으로 추산되나 관건은 열악한 급여조건"이라고 말했다.

    김 차관은 "준공영제를 시행하는 지자체는 월급이 300만~350만원이나 경기도의 그렇지 않은 지자체는 150만~200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며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소득 감소 등을 고려할 때 정부 지원이 없으면 버스 노선 감축이나 버스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김 차관은 "(근로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려면 대략 2조~2조5000억원의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며 "추진과정에서 지원 규모가 다소 줄긴 하겠지만, 2조원 이하로 줄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1년 남짓 지난 현재와 비교해 문제가 크게 해결된 게 없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이 전체 그림이 아닌 단면 만을 보고 정책을 시행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1년 전 청와대와 여당은 대통령 공약 중 하나인 주 52시간 근로제를 밀어붙였다. 당시 버스업계는 준비에 시간과 재원이 부족하다며 노동시간 단축 적용을 1~2년 미뤄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한 관계자는 "(경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려고 500억원의 예산을 증액하며 노력했다. 지난해부터 정부에 수차례 건의하며 국고지원을 건의했지만, 정부는 지방정부 사무이니 지자체가 알아서 하라는 태도였다"면서 "시내버스는 국가가 지자체에 위임한 사무이므로 어느 정도는 중앙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통 당국인 국토부는 궁여지책으로 교통 관련 대선공약인 광역알뜰교통카드 확대를 내놓았다. 교통비를 최대 30% 줄여준다던 광역알뜰교통카드를 업그레이드해 30%+α 혜택을 준다며 다음 달부터 시범사업을 전국 단위로 확대하기로 했다. 국토부 발표대로 이용자가 추가 혜택을 누릴지는 의문이다. 교통비 30% 절감 혜택을 보려면 마일리지로만 1만원 상당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2단계 시범사업을 마친 전주·울산의 경우 참여자 1인당 월평균 적립액은 6005원에 그쳤다. 최대 20%까지 마일리지를 쌓을 수 있지만, 평균 12% 수준에 머문 것이다.

    일각에선 서민 교통비를 줄여주겠다며 도입한 광역알뜰교통카드와 버스 파업을 막으려면 버스요금을 인상하라는 정부의 신호는 이해가 상충한다고 지적한다. 교통과 노동으로 정책분야는 다르지만,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데도 정책을 탄력적으로 조율하지 못하고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했다는 것이다.
  • ▲ 차고지에 주차된 버스들.ⓒ연합뉴스
    ▲ 차고지에 주차된 버스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