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협약 4개 중 3개 국회 동의안 제출키로노사 찬반 논란 거세질 듯
  • ▲ 기자회견하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연합뉴스
    ▲ 기자회견하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연합뉴스
    정부가 통상 마찰 우려가 제기되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기존 입장을 수정해 비준 절차와 입법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경영계가 노동자 단결권 강화에 대한 반대급부로 노조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을 요구하면서 노사 맞서는 상황이어서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미비준 4개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에 관한 제87호와 제98호,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제29호 등 3개에 대해 비준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상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은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 이 장관은 "관계 부처 협의와 노사 의견수렴 등 관련 절차를 거쳐 정기국회를 목표로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내겠다"고 말했다. 이어 "협약 비준에 요구되는 법 개정과 제도 개선도 함께 추진하겠다"며 "올해 정기국회에서 3개 협약에 대한 비준 동의안과 관련 법안이 함께 논의될 수 있게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장관은 "결사의 자유 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을 위한 법 개정은 지난달 15일 발표된 경사노위 최종 공익위원 안을 포함해 사회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또 "강제노동 협약 제29호는 관계 부처 협의 결과, 주요 쟁점인 우리나라의 보충역 제도가 협약에 전면적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돼 협약 취지를 최대한 반영한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강제노동 금지 협약 제29호는 순수한 군사적 성격의 작업을 제외하고 처벌의 위협 아래 행하는 모든 비자발적 노동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보충역 제도가 이 협약 위반에 해당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번에 비준 추진에서 빠진 강제노동 금지 협약 제105호는 정치적 견해 표명과 파업 참가 등에 대한 처벌 등 5가지 형태로 부과하는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조항이다. 국가보안법이 이 협약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 ▲ 지난달 9일 말스트롬 집행위원과 악수하는 이재갑 노동부 장관.ⓒ연합뉴스
    ▲ 지난달 9일 말스트롬 집행위원과 악수하는 이재갑 노동부 장관.ⓒ연합뉴스
    우리나라는 1991년 12월 ILO 정식 회원국이 됐다. 8개 핵심협약 중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4개 협약은 아직 비준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공약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을 내걸었다. 정부는 핵심협약 비준을 국정과제로 추진해 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그동안 정부는 ILO 핵심협약 기준에 맞게 국내 노동관계법을 먼저 개정하고 ILO 핵심협약을 비준한다는 이른바 '선(先) 입법 후(後) 비준'을 따라왔다. 법 개정을 위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대타협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지원해왔다. 경사노위는 지난해 7월부터 대화를 해왔으나 노동계와 경영계의 견해차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노동계는 국제 기준에 맞는 노동권 보장을 위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요구하지만, 경영계는 국내 노사관계 현실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라며 팽팽히 맞섰다. 결국 경사노위는 공익위원 권고안만 발표한 상태다. 사실상 '빈손'으로 대화를 마친 셈이다.

    문제는 유럽연합(EU) 측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에서 정한 노동 부문 의무사항인 ILO 핵심협약 비준이 늦어진다며 우리나라를 상대로 후속 분쟁 해결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옐로카드를 꺼낸 것이다.

    지난달 9일 한-EU FTA 제8차 무역위원회에 참석한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집행위원회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우리나라의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안 발의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조속한 시일 내 가시적인 진전이 없으면 전문가 패널 개시가 불가피하다"고 우려를 표했다.

    EU가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하면 3명으로 짜진 전문가 패널이 한국의 FTA 위반 여부를 따지게 된다. 이들이 우리나라가 FTA를 위반했다고 판단해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채택하면 '노동권 후진국'의 낙인이 찍힐 수 있다.

    이날 이 장관은 "(EU는) 전문가 패널에 넘기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 수출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EU와의 분쟁이 경제 불확실성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라고 부연했다.

    이 장관은 "ILO 핵심협약 비준 추진을 통해 우리 경제가 당면한 통상 문제의 불확실성을 해결하고 자율과 상생의 노사관계로 도약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