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환산액 병기·업종별 차등 적용, 기존대로… 경영계 요구 외면동결 대신 낮은 인상률 결정 위한 사전작업이란 분석도 사용자위원 제6차 전원회의 불참… 당분간 파행 불가피
  • ▲ 사용자위원 불참한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연합뉴스
    ▲ 사용자위원 불참한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연합뉴스
    공익위원이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 적용 등과 관련해 노동계 손을 들어주면서 최저임금위원회가 파행에 직면한 가운데 일각에선 3% 안팎의 인상률을 염두에 둔 사전 포석일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지탄의 목소리가 크지만, 나중에 최저임금 인상수준을 결정할 땐 공익위원으로서 노동계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캐스팅보트(결정표)를 행사했다며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익위원 무용론도 제기된다.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채 정부, 여당의 눈치를 보며 입김에 휘둘린다는 지적이다.

    27일 최저임금위에 따르면 전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과 관련해 표결을 벌인 결과 내년도 최저임금을 기존 방식대로 전체 업종에 똑같이 적용하기로 했다. 이날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 9명씩 총 27명이 참석한 가운데 10명은 차등 적용에 찬성했고 나머지 17명은 반대했다.

    최저임금의 월급 환산액 병기 안건도 찬성 16명, 반대 11명으로 가결됐다. 대부분 공익위원이 노동계 손을 들어준 것이다.

    사용자위원은 표결 결과에 반발하며 전원 퇴장했다. 사용자위원은 27일 열린 제6차 전원회의에 불참했다. 최저임금위는 당분간 파행이 불가피해졌다.

    소상공인업계에선 공익위원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공익위원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다"면서 "임명권자나 행정부의 눈치만 보며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느라 현장에서 업종과 규모에 따라 최저임금을 사실상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 ▲ 모두발언하는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연합뉴스
    ▲ 모두발언하는 박준식 최저임금위원장.ⓒ연합뉴스
    그러나 일각에선 공익위원의 이번 노동계 몰표가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을 낮게 가져가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계 한 관계자는 "안건별로 봤을 때 노동계가 결정단위(월급 환산액 병기)나 업종별 차등 적용에서 퇴장하진 않을 테고, 마지막 결정수준 단계에선 강하게 의사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면서 "(다만) 표결 결과가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공익위원이 표결에서 몰표를 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노동계 편을 들어줄 거라는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예견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익위원이 정해진 방향대로 움직이는 거 같다"면서 "이번에 월급 환산액 병기나 업종별 차등 적용에서 노동계 편을 들어준 만큼 인상 폭 결정 단계에서 (공익위원의 부담이) 다소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나 여권 일각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신호음'이 나오는 가운데 공익위원이 앞선 두 차례의 대폭 인상과 달리 이번엔 인상률을 대폭 낮추기 위한 사전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한 전문가는 "이번 (공익위원) 몰표는 일부러 그런 측면이 있다고 본다. 인상 수준 결정단계에선 거꾸로 경영계 쪽 제시안에 몰표를 줄 수 있다"면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처럼 비칠 수도 있으나 오히려 'O·X'가 정해진 사람이 유동성이 없다. 누구 편을 들어준 게 아니라 사안별로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했다고 항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영계 일각에선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3% 안팎에서 결정될 공산이 크다는 견해다. 공익위원이 앞서 일부 언론이 청와대발로 인용 보도한 3~4% 수준의 인상을 이정표로 삼을 수 있다는 의견이다. 청와대나 여권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간에 이미 시장에 동결이나 대폭 인상은 안 된다는 신호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시각이 적잖다. 최근엔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속도 조절을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김 실장은 지난 25일 청와대 기자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최저임금 부작용에 대한 질문을 받자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스의 말을 인용하며 "환경이 바뀐다면 정책은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계와 경영계 안팎에선 공익위원 제도 무용론도 제기한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여당 일각에서 이제 와 소상공인을 위하는 것처럼 '동결에 가까운' 인상을 거론하지만, 결국 내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발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쏘아붙였다. 그는 이어 "공익위원이 문제다. 소신 있게 객관적으로 판단하기보다 로봇처럼 정부 눈치만 살핀다"면서 "정권이 바뀌면 또 임명권자 입맛에 맞게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