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랩 '세계 3위' 차량공유 업체 부상정부 전폭적 규제 완화 정책 성공 요인'규제 공화국' 대한민국…'기울어진 운동장' 해소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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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 차량 공유 업체 '그랩(Grab)'을 직접 접하게된 건 베트남에서였다. 다낭 공항에서 스마트폰에 설치된 '그랩 앱(App)'을 실행시키자 2분 안에 택시가 잡혔다. 차량도 4인승과 7인승으로 골라 탈 수 있으며 오토바이도 선택 가능했다. 탑승 전 거리에 따른 가격이 책정돼 있어 불편한 흥정도 피할 수 있었고, 택시기사들의 친절한 서비스도 기대 이상이었다. 여행 직전 수많은 지인들이 그토록 그랩을 추천했는지 몸소 느끼게 됐다.그랩은 지난 2012년 말레이시아에 설립한 회사로 베트남을 비롯해 동남아시아 8개국 336개 도시에서 택시, 오토바이, 리무진 등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모바일 앱 다운로드만 누적 기준 1억 3500만건으로 글로벌 차량 공유 기업 가운데 규모 면에서 중국의 '디디추싱(DiDi)'과 미국의 '우버(Uber)'에 이은 3위다. 특히 6년만에 기업가치 약 130억 달러(약 14조 3000억원)에 달하면서 동남아시아 최대 '유니콘 기업'으로 발돋움 했다.그랩은 지난해 3월 우버의 동남아사업을 인수했으며 소프트뱅크, 토요타, 디디추싱, SK, 현대·기아자동차 등으로부터 75억 달러(약 9조원)를 투자받으며 고공 성장 중이다. 차량공유서비스 외에도 페이와 소액대출 등 다른 분야로도 진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토종 기업이 막강했던 글로벌 기업들을 물리치고, 최대 차량 공유 기업으로 군림하게 된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그랩의 성공 요인으로는 '철저한 현지화'와 '규제 완화'가 꼽힌다. 창업자인 앤서니 탄은 미국 하버드대 시절부터 창업을 시작하며 각국의 해외 서비스 시장에 대한 견문을 넓혔다. 그랩이 오토바이 배달을 도입하고, 예약 시스템을 통한 택시기사들의 소득을 보장해주는 등 동남아시아 실생활에 맞는 승차 공유 시스템을 적용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무엇보다 싱가포르 정부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의 '규제'를 받지 않으면서 지금의 그랩으로 성장하게 됐다는 분석이 높다.'IT 강국'으로 꼽히는 대한민국에서도 이 같은 토종 기업의 성공 사례가 많다. 포털 양대 산맥인 네이버와 카카오를 비롯해 SW 기업인 한글과 컴퓨터, 안랩, 파수닷컴, 티맥스 등은 벤처 1세대 주역으로 꼽힌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등도 게임 업계 맏형으로 불리며 국내 게임 시장을 이끌고 있다. SK텔레콤과 지상파 3사의 결합을 통한 토종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도 내달 출범을 앞두고 있다.하지만 그랩과 달리 국내 토종 기업들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웹서비스(AWS), 오라클, 디즈니, 넷플릭스 등 소위 글로벌 IT 공룡이라 불리는 이들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필수 기술로 꼽히는 빅데이터 기반의 클라우드 시장은 물론, AI·블록체인 등 실생활 서비스에 빠르게 침투 중이다. 구글의 유튜브가 2030 세대의 필수 미디어 플랫폼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며 텐센트·넷이즈로 대변되는 중국 게임은 연일 매출 상위 차트에 오르내리는 실정이다.이쯤되면 의문이 든다. 국내 토종 기업이 경쟁력이 없어서였을까. 혹은 빠른 변화에 적응을 못해서였을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그렇지 않다"고 답을 한다. 기업이 제 아무리 경쟁력을 갖춰도 규제라는 '견고한 벽'에 막혀 있다는 점에서다. 개인정보를 비롯한 승차공유, 원격의료, 셧다운제, 해외송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는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져 지금의 구글과 페이스북의 망 사용 무임승차 논란을 키웠다.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을 시작해도 모자랄 판국에 국내 기업은 이중, 삼중의 규제를 넘어서야 한다. 그러는 사이에 글로벌 플레이어들은 발빠르게 시장에 진출해 승전보를 울리고 있는 형국이다.미국 정부는 구글과 MS 등 자국 기업들의 빅데이터와 AI 개발에 막대한 연구개발(R&D) 예산을 지원하면서 지금의 글로벌 IT 공룡으로 키웠다. 유럽이 지난해 5월 개인정보보호법(GDPR)을 발효시키면서 지키려 했던것도 단순히 국민 주권이 아닌, 기업의 경쟁력 확보다. 중국 정부가 자국 스타트업에 대규모 지원 정책을 펼치는 동시에 해외 기업에 판호(版號) 등을 발급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 세계가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것과 달리 대한민국은 각종 규제로 기업들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규제 공화국'에 갇힌 토종 기업들은 하루하루가 힘들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