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 "美, 24시간 전 통보 약속 어겨"… 전문가 "이례적"홍진실업, 남극서 불법어업… 검찰 기소유예로 처벌 피해미국 "과징금 등 행정벌 도입해야"… 관련 법 국회 계류 중
  • ▲ 미국이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분류했다.ⓒ연합뉴스
    ▲ 미국이 한국을 예비 불법어업국으로 분류했다.ⓒ연합뉴스
    미국이 우리나라를 예비 불법 어업(IUU, 불법(Illegal)·비보고(Unreported)·비규제(Unregulated))국으로 분류했다. 2013년에 이어 2번째다. 정부는 당장 우리 원양어선의 미국 입항 거부 등 제재는 없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사전 통지 약속을 깨고 한국의 예비 IUU 국가 분류를 기습적으로 발표한 일련의 행정절차를 두고 공고했던 한미 간 공조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20일(이하 한국시각)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 산하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이날 의회에 제출한 2019 '국제어업관리 개선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예비 IUU 국가로 분류했다. 2015년 2월 예비 IUU 국가 지정 명단에서 빠진 지 4년6개월여 만이다.
  • ▲ 불법어업국 지정 관련.ⓒ연합뉴스
    ▲ 불법어업국 지정 관련.ⓒ연합뉴스
    한국 원양선박인 홍진실업의 서던오션호와 홍진701호는 2017년 12월 남극 수역에서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의 어장폐쇄 통보에도 조업을 계속해 보존조치를 어겼다. CCAMLR은 1982년 설립된 국제기구다. 이빨고기(메로)·크릴·빙어의 총허용 어획량을 배분한다.

    홍진701호 선장은 12월1일자로 어장을 폐쇄한다는 CCAMLR 사무국의 통보 메일이 통신업체 서버에서 스팸메일로 분류되는 바람에 메일을 받지 못했다. 홍진701호는 12월 2일과 4일 이틀 더 조업했다.

    서던오션호는 선장이 메일을 하루 늦게 봤지만, 이를 무시하고 12월 2~4일 사흘간 더 조업했다.

    해수부는 이듬해 1월8일 원양산업발전법 위반 혐의로 두 선박을 수사 의뢰했다. 해양경찰청은 홍진701호는 혐의가 없다고 보고 입건하지 않았다. 서던오션호는 7월24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12월26일 서던오션호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혐의는 인정되지만, 초범이고 불법조업 기간이 짧아 위반 정도가 중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해수부는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홍진701호는 행정 처분하지 않았다. 서던오션호에 대해선 60일 영업정지와 선장의 60일 해기사면허 정지를 각각 처분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지난해 10월21일 열린 CCAMLR 연례회의에서 한국의 행정적 제재가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올해 3월15일에는 우리나라에 사건조사 결과, 불법 어획물 처리 결과,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이 2차례 법 개정을 통해 징역·벌금·몰수 처분 규정을 마련했으나 실제 집행이 이뤄지지 못해 불법 어획물이 유통됐고, 결과적으로 불법 어업을 한 선주가 경제적 이득을 봤다는 견해다. 해수부는 불법 어획물 37t쯤이 유통돼 홍진실업이 9억4000여만원의 부당이득을 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 ▲ 해수부.ⓒ연합뉴스
    ▲ 해수부.ⓒ연합뉴스
    미국은 불법 어획물로 인한 부당이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벌(과징금) 도입을 요구한다. 개정된 원양산업발전법은 IUU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를 높였다. 500만원 이하였던 과태료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수산물 가액의 최대 5배와 5억~10억원 중 높은 금액의 벌금으로 강화했다. 하지만 서던오션호처럼 검찰의 기소유예 등으로 형사처벌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해수부는 과징금을 도입하기로 했다. 법률 개정안은 지난 4월 발의돼 현재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상태다.

    해수부는 "미국은 보고서를 의회에 낼 때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부득이 예비 IUU 국가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는 태도"라며 "일반적으로 예비 IUU 지정 후 2년이 지나는 시점에 해제 여부를 판단하지만, 이례적으로 한국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21년 이전에라도 가능한 한 빨리 해제하기로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연내 법 개정 의지를 밝힌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의 서한을 언급하며 한국 행정부와 국회의 노력을 높게 평가했다"고 덧붙였다.

    해양캠페이너로 IUU 문제를 깊게 들여다본 NGO 관계자 P씨도 "엄밀히 말해 미국의 국제어업관리 개선보고서는 IUU 국가로 '지정'한다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면서 "예비 분류 단계에선 어떤 강제적인 조치가 이뤄지지도 않는다. 과거와 달리 (한국은) 불법 어업에 대해 확실한 근절 의지를 갖고 있고 법적인 제재 수단도 마련했으므로 예비 지정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일 건 없다"고 부연했다.
  • ▲ 불법어업 근절 관련 그린피스 활동.ⓒ그린피스
    ▲ 불법어업 근절 관련 그린피스 활동.ⓒ그린피스
    오히려 문제는 미국이 예비 IUU 분류와 관련해 한국에 보인 행정적 태도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해수부는 미국과의 협의과정에서 NOAA가 홈페이지에 보고서를 올리기 하루 전에 미리 통보받기로 입을 맞췄다. 그러나 미국 측은 이 약속을 어겼다.

    해수부는 "주미대사관을 통해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고 19일까지도 (미국 측에서) 이번 주는 보고서가 홈페이지에 등재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를 했다"면서 "미국 측 담당자가 오늘(20일) 새벽 홈페이지 등재 직전에 공식발표를 알리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24시간 전에 알려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했다.

    P씨는 이에 대해 "이례적이고 석연치 않다"고 했다. 그는 "과거 사례를 봐도 보통 몇 달 전부터 외교부·해수부에 공문을 보내면서 미리 통지하고 정부 간 물밑에서 정보공유를 하며 진행한다"고 말했다. P씨는 사견을 전제로 "(이번 기습 등재는) 마치 통상 압력처럼 느껴진다. NGO 입장에선 우방국 간 협의라기보다 정치적인 행동으로 읽힌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등을 둘러싸고 한미 간 매끄럽지 못한 관계가 연출됐던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보고서 등재 시점도 석연찮은 부분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불과 며칠 앞둔 상황에서 미국 측이 기습적으로 홈페이지에 보고서를 올렸기 때문이다. 해수부가 미국의 예비 IUU 국가 지정을 언론에 브리핑한 것은 지난달 27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해수부는 보고서 제출이 임박했다고 봤다. 하지만 20여일이 지나서 그것도 갑자기 약속을 깨고 IUU 지정 발표가 이뤄진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오는 22일 유엔총회 참석차 3박5일 일정으로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현지시각으로 23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등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사안을 두고 한국을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하지만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 전술을 떠나서 전통의 우방국이었던 한미 간 공조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제기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