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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정유업계에서 '올 상반기가 가장 큰 위기'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올해 초 업황 개선에 따른 실적 반등 기대가 컸지만, 이번 사태로 회복은커녕 상황이 더 악화됐기 때문이다.
당장 물류와 이동인구가 줄면서 휘발유를 비롯한 석유제품 수요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2003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보다 더 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지난해 업황 침체로 실적이 크게 악화된 만큼 최악의 경우 구조조정 움직임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돌고 있다.
28일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사스 유행이 절정에 달했던 2003년 3월 당시 석유제품 소비량은 전년대비 11% 감소했다. 제품별 감소 폭은 항공유가 24%로 가장 컸다. 이어 휘발유가 20% 감소했으며 경유도 7.6% 줄었다. 2009년 신종플루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석유제품 소비량은 전년대비 각각 2.6%, 3.2% 감소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 여파로 육해공 모든 영역의 화물과 여객 운송이 급감하면서 항공유와 선박유 뿐만 아니라 휘발유·경유 등 모든 종류의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하고 있다"며 "수요 감소에 따라 90%대 중반으로 사실상 완전가동 상태였던 공장가동률을 최근 80%대 후반으로 낮췄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에서는 항공유 소비가 크게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설 연휴 등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국내 주요 항공사들의 항공유 소비량은 지난해 1월에 비해 증가했지만, 1월20일 이후부터는 급감하는 추세다.
일단 항공사의 운항횟수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집계를 보면 국내 8개 항공사의 한중 노선은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직전인 1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주 546회를 기록했지만, 2월 첫째 주에는 주 380회로 30%가량 줄었고, 2월 셋째 주에는 주 126회로 77% 급감했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동남아시아까지 미치면서 동남아 주요 노선까지 운항 감축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2월 들어 동남아 여행객은 지난해 2월보다 19.9% 감소했다. 국내 항공사 국제노선 비중은 동남아가 32.4%로 가장 높다.
뿐만 아니라 대구·경북 지역의 경우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대구공항에서 출발하는 국내외 항공 노선이 완전히 중단됐다.
항공유는 국내 정유4사가 생산하는 석유제품 가운데 경유(28.5%), 나프타(24.9%)에 이어 세 번째(13.6%)로 많은데다 지난해 항공유 매출이 전체 매출의 14%를 차지한다.
특히 이번 사태가 사스나 메르스보다 장기화할 우려가 높아 피해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협회 관계자는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 현황을 보면 항공유의 경우 전년대비 두 자릿수가량 감소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며 "수출 품목 가운데 항공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매출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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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박유의 경우 글로벌 해운 물동량이 줄어들면서 올해 실적 회복을 견인할 '효자 품목'으로 꼽혀왔던 저유황연료유(VLSFO)가 흥행에 실패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 도입 효과를 기대했던 VLSFO의 경우 가격이 이달 들어 20%가량 급락했다. 싱가포르에서 거래되는 저유황유 가격은 지난달 t당 평균 667달러였지만, 이달(1~18일 평균)에는 532달러까지 떨어졌다.
문제는 규제 이전 대다수 선박연료로 쓰였던 고유황유(IFO380)와의 가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9월 t당 83달러였던 고유황유(342달러)와 저유황유의 가격차는 12월 303달러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올해 1월 이들의 가격차는 298달러로 축소됐으며 이달 들어서는 200달러대 초반까지 줄어든 상태다. 저유황유에 대한 프리미엄이 줄어들어든 셈이다.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여파로 글로벌 해운 물동량이 줄어든 것이 직격탄이 됐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글로벌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올해 주요 선종별 물동량 증가율을 0.2~3.4%p까지 하향 조정했다. 국적선사인 현대상선도 최근 중국 물동량이 전년대비 50%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밝힌 바 있다.
설상가상 수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공장 가동 중단 등으로 중국 석유 소비가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정유사 수출 가운데 중국 비중은 20% 안팎에 달한다. 국내 정유사들이 매출 중 55~57%를 수출로 올리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 석유수요 감소에 따른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메르스 사태 당시 석달여 동안 수출과 내수 판매가 10%가량 줄었지만, 코로나19가 본격화한 지난달부터 이미 10% 안팎의 부진을 겪고 있고, 앞으로 매출 감소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한국신용평가도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원유, 석유제품 수요 감소가 국제유가와 정제마진 하방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어 당분간 정유업계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정유사들은 석유제품뿐만 아니라 에틸렌, 폴리에틸렌(PE), 파라자일렌(PX) 등 석유화학제품 생산 비중도 크게 늘리고 있는데, 이 사업들도 수요 위축에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
실제 소비가 멈춰서면서 중국 내 각종 플라스틱 제품의 수요가 크게 줄고 재고는 늘고 있다. NH투자증권에 따르면 중국의 에틸렌글리콜(EG) 재고는 1월 말 35만t에서 현재 57만t으로 증가했고, PE도 25만t에서 60만t으로 급증했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코로나가 계속 번지면서 석유화학 제품 재고 증가는 지속할 전망"이라며 "코로나 사태가 종료되더라도 일정기간 재고 해소기간이 필요할 전망"이라고 판단했다.
석유 관련 국제기구들도 이달 들어 글로벌 석유수요 전망치를 잇달아 하향 조정했다.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올해 전 세계 석유수요 전망치를 20% 가까이 하향 조정하면서 "코로나19 발생이 이번 전망치 수정의 주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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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업황 부진으로 실적이 하락한 정유업계에서 코로나 여파로 실적이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 움직임도 감지된다.
2월 평균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3.2달러로, 여전히 손익분기점인 배럴당 4달러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비용을 뺀 것으로, 정유사들의 실적을 좌우한다.
배럴당 정제마진은 2018년 2월 7.4달러에서 지난해 12월 -0.1달러로 20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휘발유를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되면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 정유4사는 실적에 직격탄을 맞았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2003년 사스 당시 제품수요 감소로 3~4개월간 싱가포르 정제마진이 최대 69% 줄어든 점을 고려하면 코로나19로 인한 거래 감소, 마진 악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이미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정유사들은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로 인해 수요 감소와 불확실성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이에 따른 여파가 구조조정으로 번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지난해 정유4사의 영업이익은 3조1201억원으로, 전년 4조6523억원에 비해 32.9% 줄어들었다. 특히 2016년 7조8737억원 이후 3년 연속 내리막을 걷고 있다.
에쓰오일의 경우 최근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 검토에 나섰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정유사업에서만 25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정유·석유화학산업은 장치산업이라 인력이 많이 드는 구조가 아닌데 구조조정 얘기까지 나왔다는 것은 심각한 신호"라며 "한 곳에서 인력감축 움직임이 있으면 다른 기업들도 검토에 들어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