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둔화-과잉공급' 여파롯데케미칼 등 잇달아 감산 돌입정유4사 1분기 영업손실 3조 전망 등 산업계 불확실성 확산
  • ▲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국제유가가 사상 처음 마이너스로 거래를 마치는 등 저유가 타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1분기 정유4사의 영업손실이 3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가하면, 수요절벽에 따른 시황 악화로 석유화학업계에서도 잇달아 감산에 돌입하고 있다.

    통상 저유가는 석유화학업계에 호재다. 석유화학제품의 생산단가를 낮춰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극심한 수요 부진과 과잉공급이 맞물려 석유화학업계도 원가 하락 수혜를 누리지 못하고 결국 가동률 조정에 나선 것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케미칼은 울산공장 메타자일렌(MeX) 2개 라인과 파라자일렌(PX) 1개 라인 가동을 중단했다.

    롯데케미칼 측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조처"라며 "올 연말까지 해당 공정을 중단할 예정으로, 시황이 개선될 경우 재가동 시기를 앞당길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SK종합화학은 지난달 SK 울산 CLX 내 제1 나프타 분해공정인 NCC공정과 합성고무 제조공정인 EDPM공정을 가동 중단한다고 밝혔다.

    시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범용제품 생산공정 일부를 가동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고부가 화학제품 비중을 높이는 사업구조 전환의 일환으로 글로벌 신증설 영향에 따른 과잉공급도 영향을 줬다.

    LG화학은 지난달 한시적으로 여수공장 스팀크래커 가동률을 95%로 5%p 낮추면서 수요 감소에 대응했다.

    석유화학업계는 미국의 에탄크래커(ECC) 증설, 중국의 석유화학제품 공급 확대, 미중 무역 분쟁과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석유화학제품 수요 감소 등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석유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저유가는 원가 절감으로 이어져 석유화학업계에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이번의 경우 수요 절벽이 문제"라며 "당장은 물량 조절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실제로 코로나19 장기화로 수요 둔화와 수출단가 하락이 겹치면서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여수 지역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여수세관 자료를 보면 1분기 여수 지역 수출은 지난해 1분기에 비해 11.9% 감소한 48억달러를 기록한 반면, 수입은 4.0% 증가한 73억달러로 집계됐다.

    수출이 감소한 것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제품 수요 둔화, 석유화학제품의 수출단가 하락 등이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품목별로는 △LPG, 휘발유, 나프타, 등유, 경유, 제트유, 중유, 아스팔트 등 석유제품이 9.4% △합성수지, 합성 고무제품 및 에틸렌, 프로필렌, 부타디엔, 벤젠, 톨루엔 등 석유화학제품이 15.8% △철강제품이 7.2% 각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수입은 원유 및 석유제품 수입량 증가로 전년대비 4.0% 증가했다. 수입 비중이 큰 원유가 3.9%, 석유제품이 8.4% 늘었다.

    유가 급락에 여파를 그대로 맞고 있는 정유업계의 상황은 더 암울하다.

    한국신용평가는 수요 감소와 유가 급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로 정유4사의 1분기 영업손실 규모가 최대 3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에 정유사들은 공장가동률을 85% 미만으로 낮추고 정기보수 일정 앞당기기, 희망퇴직 시행 등을 검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정유공장 가동률을 100%에서 85%로 낮췄다. 여기에 5~6월 예정된 정기보수를 1~2주가량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수에 들어가면 가동률은 현 수준보다 약 10%p 더 내려간다.

    현대오일뱅크는 제2공장 원유정제처리시설 및 중질유분해시설 가동을 5월22일까지 중단하기로 했고, GS칼텍스는 정제설비 정기보수를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 중이다. 에쓰오일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실시를 검토 중이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여파로 수요 감소가 장기간 이어지면 추가 감산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적어도 상반기 내내 업황 부진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한편, 유가 급락 사태는 장기적으로 석유화학 연관 산업과 후방산업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 본부장은 "일차적으로 정유업계, 석유화학업계가 영향을 받겠지만 이후 화학 소재를 사용하는 전자산업을 포함해 정밀화학 소재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산업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연구원은 국제 생산 정상화는 내년에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 여파가 정상화 될 때까지 1년가량 시간이 걸린다고 가정하면 적어도 1년 정도 기업들이 살아남아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생산시설이 멈추거나 경영악화 등으로 생산설비 등을 처분하고 문을 닫는 업체들이 나올 경우 상황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