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 5만~50만원 전국민 지급…여야 공감대, 재정당국 고민2022 대선 아젠다 선점 치열, 최소 30조에서 100조 예산 어쩌나與 국토보유세 등 증세카드 군불…野 "증세 안돼, 정책디자인 필요"
  • ▲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권창회 사진기자
    ▲ 재난지원금이 지급된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권창회 사진기자
    건국 이례 처음 시행된 전국민 현금지급, 코로나19 재난지원금에 이어 기본소득 도입론이 정치권에서 시작되고 있다. 긴급 재난지원금이 당초 우려와는 달리 경기부양 효과로 이어지고 여론의 호평이 나오면서 여권을 중심으로 기본소득제도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모습이다.

    기본소득에 거부감을 표출하던 야당도 이번에는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 2012년 대선에서 무상급식이라는 복지 아젠다 싸움에서 밀려 적지 않은 실점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기본소득 이슈를 선점하겠다는 계산이다.

    올해만 100조원 이상 국채를 찍어내며 적자재정이 가중되는 가운데 정부는 마뜩찮은 표정을 짓고 있지만 177석 거대 여당과 제1야당이 밀어붙인다면 선거를 앞두고 또다시 포퓰리즘 논란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의 쟁점은 지급방식이고 관건은 재원마련이다. 재원이 충분치 않은 만큼 지급대상과 지급액을 두고 이견이 엇갈릴 수 있다.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시작해 점차 전국민으로 확대해나가자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지급액이 작더라도 전국민에게 지급해야 기본소득 취지에 맞다는 목소리도 있다.

    재원마련 방식에 대해서는 정권을 쥔 여당에서는 증세론에 군불을 떼고 있고, 여당은 기존 세출 사업을 삭감해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재난지원금으로 효과 증명, 기본소득 목적세 신설"

    재난기본소득을 가장 먼저 시행한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본소득 이슈에 대해서는 가장 적극적이다.

    이 지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에 경기도민에게 지급된 10~20만원 재난소득은 제 예상까지 뛰어넘어 엄청난 경제선순환 효과(승수효과)를 내고 있다"며 "재난기본소득은 소비를 촉진시켜 그간 경제학교과서에서 보지 못한 경제효과를 내고 있음이 통계와 현장에서 확인된다"고 밝혔다.

    경기도에 따르면 1인당 15만원에서 최대 50만원까지 재난기본소득이 지급된 4월 둘째 주부터 도내 신용카드 사용률이 가파르게 올라 코로나19로 전년대비 70% 수준에 머물던 것에서 107%로 회복했다. 특히 재난기본소득을 사용할 수 있는 연매출 10억원 미만 중소 영업장 매출이 24% 가량 증가했다.

    이 지사는 "재난기본소득에 집행한 2조3000억원 중 7~8000억원 즉 1/3 가량이 결제된 것만으로도 경제효과가 뚜렷한 숫자로 확인된다"며 "지역 상인들과 주민들이 명절 대목을 다시 맞은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피켓을 들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태년 원내대표 등이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피켓을 들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그는 "빌 게이츠,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같은 실리콘벨리의 성공한 CEO들과 다보스포럼, 교황이 왜 기본소득을 주장할까"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유지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지사가 제시하는 기본소득 계획은 20년 장기 목표를 세워 1인당 월 50만원씩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분기별 15만원(월 5만원)을 단기목표로 삼되 우선 연 1회, 다음에는 반기 1회 정도 시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5200만명 인구에 월 50만원씩 연간 600만원을 지급하는데 드는 예산은 30조원이 넘는다. 이 지사는 "재원마련 방법으로 초기에는 기존 예산 조정으로, 다음에는 연 50조원 가량의 각종 세금감면 축소 및 폐지로, 마지막에는 기본소득목적세를 신설하면 된다"고 했다. 기본소득목적세 명목으로 국토보유세, 탄소세 등 환경세, 로봇세, 데이터세 등을 이 지사는 제시했다.

    기본소득법 곧 발의… 여당, 공론화 속도 낸다

    177석 거대 여당으로 거듭난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기본소득 시행을 위한 법안을 마련하고 있다. 소병훈 민주당 사무부총장은 원구성이 꾸려지는대로 기본소득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대표발의할 계획이다.

    민주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이었던 더불어시민당은 지난 총선에서 '월 60만원 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선거 이후 더불어시민당에서 기본소득당으로 복귀한 용혜인 당선인은 "기본소득실현에 동의하는 많은 정치세력과 논의를 이어가겠다"며 "기본소득 내용에 동의한다면 미래통합당과 정의당 등 다른 정당과도 협조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에따라 당내에 기본소득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연말까지 각 부처 장관들과 민·관 전문가들을 모아 정책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아직 기본소득을 당론을 내세우기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지사처럼 전국민을 대상으로 월 5만원에서 50만원까지 20년 장기계획을 세워 추진하자는 의견과 저소득·취약게층 등 사회적 약자부터 시행하자는 주장이 나뉘고 있다. 허영 민주당 당선인은 "육아수당, 자영업월세수당, 청년수당 등 사회적 약자 계층에 대한 기본소득부터 단계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재난지원금을 두고 빚었던 당정간 갈등도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나라곳간을 지키는 재정당국이 기본소득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근 국회에 출석해 "기본소득은 여러나라가 시도했지만 정착된 나라는 없었다"며 "재정당국 입장에선 굉장히 신중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 사무실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가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 사무실을 찾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이종현 사진기자
    증세는 안 돼… 김종인式 기본소득안 드러나나

    그동안 북한식 배급제와 비교하며 노골적인 거부감을 표출하던 미래통합당도 이번 기본소득 아젠다에는 상당히 전향적인 태도다.

    이준석 최고위원은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해 "기본소득제에 대한 언급이 잦아지는 것을 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의 선제적인 입장 표명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 내다봤다. 이 최고위원은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서로 다른 버전의 기본소득제가 나올 수 있다"며 "무상급식 같은 경우에도 '한다' '안 한다'로 붙으면 보수가 그냥 안티 세력같이 보이는 위치로 갈 수 있다"고 했다.

    통합당 초·재선 의원이나 젊은 정치인들도 기본소득 취지에는 동의하는 편이다. 이양수 의원은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기본소득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검토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통합당이 주목하는 기본소득제의 관건은 재원마련 방식이다. 당장 여당이 기본소득목적세 등 증세 카드를 꺼내는 움직임에 끌려갈 수 없다는 생각이다. 성장과 감세는 통합당의 당헌에 기재된 당론이다. 김희국 미래통합당 당선자는 "곧 기본소득제 등 핵폭탄이 작렬할텐데 언제까지 증세는 안된다며 제도에 대한 비판만 할 수는 없다"며 "기본소득제를 해야 한다면 통합당만의 대안이 제시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야권은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가 내놓을 기본소득제 방향이 향후 여야 정책대결에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 보건사회부 장관과 경제수석비서관을 지내며 경제민주화론을 주창했던 만큼 보수이념이 담긴 기본소득제를 제시한다면 향후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판단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본소득제는 재원마련이나 지급방식을 더 고민해야 할 아직은 섣부른 아젠다"라며 "로봇이 실제로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이 갖춰지는 시대는 와야 추진할 수 있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조 연구실장은 다만 "코로나19 이후 재정정책이 글로벌 이슈로 빠르게 다가오는 만큼 기본소득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디자인을 시작할 필요는 있다"며 "기본소득이 도입됨으로 인해 사라지는 기존의 복지제도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정책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