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측 물가압력 약화…물가하방압력 증대 국제유가 급락, 경기 둔화, 정부정책 영향 커이주열 총재 "물가 흐름 구조적 변화 불가피"디플레이션 우려 차단…"발생 가능성 낮다"
  •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올해 우리나라 소비자물가상승률이 코로나19 충격으로 마이너스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특히 긴 시계에서 볼 때 코로나19 이후 물가하방압력에 따른 저물가 추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올해 2월 이후 큰 폭으로 둔화했다.

    지난해 줄곧 0%대에 머물다가 올해 1월 1.5%로 올라섰지만 2월 1.1%, 3월 1.0%, 4월 0.1%까지 떨어졌다가 5월 -0.3%로 추락했다. 

    물가상승률이 마이너스를 나타낸 것은 한은의 공식 통계상 지난해 9월(-0.4%) 이어 역대 두번째다. 만약 올해 물가상승률이 전망치(0.3%)대로 간다면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하게 된다. 

    코로나19 이후 물가 상승률이 크게 둔화한 것은 국제유가 급락과 국내외 경기 둔화가 큰 폭의 하락요인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사회적 거리두기 등으로 수요측 물가압력이 약화하고 정부정책 측면의 하방압력도 증대된 데 따른다.

    특히 국제유가 하락은 석유류가격에 대한 직접효과와 여타 상품·서비스의 생산비용 변화에 따른 간접효과를 통해 물가상승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수요 측면에서 보면 국내경제의 성장세가 위축되면서 물가압력이 약화했으며, 코로나19 확산으로 소비와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설비투자 회복도 지연되고 있다. 비용 측면에서도 임금상승률이 경기 부진, 기업실적 악화 등으로 상당폭 둔화했다.

    이주열 총재는 "코로나19의 전 세계적 확산이 글로벌 경제 전반에 전례 없는 충격을 초래하면서 물가에도 상당한 하방압력으로 작용했다"며 "이에 물가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인 2%를 크게 하회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활동 위축에 따른 원유수요 감소로 국제유가가 큰 폭 하락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여행·숙박·외식 서비스 중심으로 물가상승압력이 약화했다"며 "무상교육 확대,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부의 사회보장 강화 및 소비촉진책이 추가로 물가를 낮췄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추세 인플레이션 방향은 불확실성이 높으나, 물가하방압력으로 저인플레이션 추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예비적 저축 유인 증대, 부채비율 상승 등에 따른 수요 둔화, 온라인 거래 성장의 가속화, 생산의 자동화·무인화 등이 추세 인플레이션 하락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총재는 "코로나 확산은 단순히 경기 침체를 초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주체의 행태와 경제 구조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며 "향후 감염병이 진정되도 물가 흐름에 구조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가계와 기업은 대규모 감염병이나 경제위기를 겪은 후 미래 불안으로 빚을 줄이고 저축을 늘린다"며 "위기상황에서 대규모 해고나 매출 급감을 경험하면 극단적 위험회피성향을 갖는 이른바 '슈퍼세이버'가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경우 해당 경제주체의 재무 건전성은 개선될 수 있으나 경제 전체적으로는 성장의 한 축이라 할 수 있는 소비와 투자의 회복이 더욱 더뎌지고, 이는 다시 물가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저물가 지속으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도 점증하는 가운데 감염병 확산에 따른 경제 충격 이전부터 저성장 저물가 추세가 지속된 점을 감안 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한은은 여전히 디플레이션 우려를 차단하고 있다. 당분간 물가상승률이 0%대 내외에 낮은 수준을 보이겠으나 내년 이후 공급측 요인의 영향이 줄면서 점차 높아질 것으로 본 전망이 전제한다.

    한은은 내년 국제유가가 원유 공급과잉 완화로 완만한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물가하락의 영향이 사라지는 가운데 경기 개선, 복지정책 영향 축소 등으로 물가상승률이 1.1%를 나타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 총재는 "이런 전망을 감안할 때 상품 및 서비스 전반에서 물가가 지속 하락하는 의미의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다만 "경기 회복이 상당히 지연돼 저인플레이션이 지속한다면 일반 경제주체의 기대인플레이션과 추세적 물가 흐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어 유의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재확산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높은 만큼 국내외 경기와 국제유가의 회복세는 완만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내년 이후 국제유가 영향이 사라지는 가운데 경기가 점차 개선되면서 물가 상승률이 올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목표수준으로 수렴하는 속도는 상당히 더딜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