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개국 '윤활기유-윤활유' 수출 글로벌 1위 기업2009년 분할 이후 2조~3조 매출 '알짜 자회사' 꼽혀유가 급락, 코로나 확산 따른 수요 감소 등 성사 가능성 높지 않아
  • ▲ SK이노베이션. ⓒ성재용 기자
    ▲ SK이노베이션. ⓒ성재용 기자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 SK루브리컨츠의 지분 매각에 나선다. 공격적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부문의 투자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이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다 '매물'의 실적도 부진한 상황이다. 난항이 예상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SK루브리컨츠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소수 지분(Minority)을 매각하기 위해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을 주관사로 선정하고 인수희망자를 찾고 있다.

    구체적인 매각 지분 규모와 금액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일각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경영권 통매각을 고려하진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경영권을 유지하려는 입장인 만큼 거래 대상은 SK루브리컨츠 지분 49%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

    시장 관계자는 "그룹 내 시나리오 중 경영권 매각은 아예 없으며 신주 없이 구주만 내놓을 계획"이라면서 "지난해 엑손모빌(Exxon Mobile)과 협상했던 것처럼 전략적 제휴 파트너를 찾는 모양새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재무건전성 확보와 신규 사업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다양한 전략적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서도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 없다"고 공시한 바 있다.

    2009년 SK에너지에서 분리된 SK루브리컨츠는 미국 등 60개국에 윤활기유와 윤활유 제품을 수출하는 글로벌 1위 기업이다. 미국석유협회(API) 윤활기유 분류 기준 중 고급 기유에 해당하는 그룹Ⅲ 윤활기유인 유베이스(YUBASE)와 자동차 윤활유 브랜드인 '지크(ZIC)'가 주력 제품으로, 분할 이후 꾸준히 2조~3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알짜 자회사'로 꼽힌다.

    이번 지분 매각은 SK그룹이 미래 사업으로 힘을 싣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투자를 위한 '실탄' 마련 차원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배터리 1공장과 2공장 건설을 추진 중이다. 2021년 하반기 완공에 이어 2022년 양산을 시작할 예정인 1공장은 지난해 2월 착공했다.

    2공장은 9억4000만달러가 투입된다. 1공장 투자액을 더하면 3조원 규모다. 2023년 목표로 건설 중인 2공장의 생산규모는 1공장 9.8GWh를 훌쩍 넘어서는 11.7GWh다. 글로벌 생산능력도 70GWh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2025년에는 100GWh까지 확대한다는 목표다. 미국 공장 투자 규모는 장기적으로 50억달러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회장이 배터리를 미래 핵심사업으로 꼽고 있는 만큼 추가 투자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부터 현대자동차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SK이노베이션 배터리가 탑재될 예정으로, 배터리 3사 중 후발주자로 꼽히는 SK이노베이션의 시장 확대 발판이 마련됨에 따라 한층 공격적인 경영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이에 따른 추가 자금 마련이 필수적인 상황이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재무건전성이 LG화학, 삼성SDI 등 배터리 3사 중 가장 열위한 만큼 투자자금 확보 방안이 절실하다.

    반기보고서 분석 결과 SK이노베이션의 연결 기준 상반기 부채는 모두 23조원으로, 지난해 상반기 19조원에 비해 4조원(21.8%) 늘어났다. 2017년 상반기 부채가 13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3년새 10조원이 불어난 셈이다. 이 기간 부채비율은 70.5%에서 148%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3사의 평균 부채비율은 53.8%에서 112%로 늘어났다.

    차입금은 지난해 상반기 8조원에서 13조원으로 증가(64.2%)하면서 차입금의존도도 43.0%에서 87.8%로 크게 뛰었다. 같은 기간 3사 평균 차입금의존도는 60.9%이며 전년대비 20.6%p의 상승했다. 2017년 상반기 SK이노베이션의 차입금은 4조원, 차입금의존도는 21.9%였다.

    권기혁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재무융통성을 감안할 때 비교적 양호한 수준의 재무구조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코로나19 등으로 현금창출력 약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배터리사업 중심의 투자자금 지출과 외부차입이 현금흐름과 재무안정성에 부담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 ▲ SK루브리컨츠 연결 기준 연도별 영업이익. 자료=전자공시시스템. ⓒ한국신용평가
    ▲ SK루브리컨츠 연결 기준 연도별 영업이익. 자료=전자공시시스템. ⓒ한국신용평가
    문제는 지분 매각 성사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이다.

    당장은 경영권이 빠진 점이 걸림돌이라는 판단이다. 전략적투자자(SI)들이 선호하지 않는 방식이다 보니 인수 후보군들이 좀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M&A시장 한 관계자는 "초기 단계도 아니고 성숙된 산업에 경영권 없는 소수 지분 투자에 나설만한 기업은 국내에 없을 것"이라며 "조인트벤처나 합작회사 방식에 비해 우위가 없다"고 진단했다.

    SI가 등판할 상황이 아니라면 사모펀드(PEF)가 가능성이 있는데, 이마저도 자금회수 방법이 뚜렷하지가 않다. 향후 SK루브리컨츠 재매각시 선뜻 나설 글로벌 기업을 찾기 쉽지 않을 뿐더러 기업공개(IPO) 시장의 평가도 부정적이다.

    실제 SK루브리컨츠는 2013년, 2015년, 2018년까지 세 차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기 위해 국내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에 나섰으나, 만족할만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세 차례 모두 상장을 철회한 바 있다.

    최근 영업실적과 재무성과가 부진한 상황인 점도 우려사항이다.

    상반기 기준 SK루브리컨츠의 영업이익은 2018년 2546억원, 2019년 1171억원, 올해 662억원으로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실제로 원가율은 2016년 70.8%에서 올해 85.5%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한 부채(1조5216억원)와 차입금(8706억원) 모두 최근 2~3년새 가장 높다. 부채는 3년 만에 88.0% 증가했고, 차입금은 2년새 두 배 이상 늘었다. 영업성적이 부진한 만큼 재무부담은 가중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조원무 한국기업평가 평가전문위원은 "국제유가 급락,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글로벌 수요 감소 등을 고려하면 올해 영업성적은 지난해보다 더 축소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연내 5000억원의 배당이 지급된 점, 베트남 윤활유업체 지분 인수, ILBOC 생산설비 리뱀핑 등 투자가 예정된 점을 감안하면 당분간 재무부담 증가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중장기적으로 배당 및 투자 축소, 제품 수요 및 마진 개선 등으로 재무구조가 점진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로서는 그 시기를 예단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인수후보군에게 납득할만한 구조를 제시해야 장기간 답보 상태였던 거래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2014년 이후 웬만한 PEF들은 SK루브리컨츠를 한번씩 들여다 본 상황인데다 최근 그룹Ⅱ를 중심으로 증설 탓에 수급 여건이 악화됐고, 코로나19 충격으로 수요 부진이 심화됐다"며 "시장 니즈와 요구사항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