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불법합병·회계분식' 혐의로 불구속 기소수심위 건고 받아들이지 않은 '첫 사례' 기록'오너리스크' 현실화… "중장기적 전략수립 지연" 우려수사팀 의혹-엘리엇 주장 일맥상통… IDS 소송에도 영향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 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 DB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권고에도 검찰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해 끝내 불구속 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오너 리스크'가 현실화됐다. 삼성은 검찰의 기소로 또 다시 이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이 반복돼 정상적인 경영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1일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삼성그룹 불법합병 및 회계부정 의혹 사건'과 관련해 이 부회장을 자본시장법 위반(부정거래·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외부감사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중단과 불기소 권고를 내렸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불구속 기소' 처분을 내린 것. 이는 수심위를 도입한 지난 2018년 이후 첫 사례다.

    수사팀은 수심위가 이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를 권고한 지 두달이 넘도록 최종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대신 법률·금융·경제·회계 등 외부 전문가들을 직접 검찰로 불러 의견을 청취하고 수사내용과 법리, 사건처리 방향 등을 재검토 했는데 결국 이 부회장을 기소하기로 결론냈다.

    검찰은 수심위가 불기소 권고를 내렸음에도 수십명의 교수들과 전문가들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수사를 이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조사를 받은 일부 인사들은 검찰이 전문가나 교수들의 견해를 듣는 차원을 넘어, 검찰이 마치 답을 정해놓고 원하는 답변을 유도하거나 '압박'을 느낄 정도로 추궁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검찰이 기소를 강행하면서 지난 2016년 말부터 진행됐던 수사가 또 다시 총수 등에 대한 재판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됐다.

    이 부회장은 물론 전현직 임직원들은 집중 심리가 이뤄질 경우 매주 2~3회꼴로 재판정에 서야하고, 재판 준비를 위해 기업 활동도 차질을 빚게 된다.

    이 부회장은 2016년 11월 이후 4년가량 '사법리스크'에 시달려 왔다. 현재까지 검찰에 10차례나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구속영장 실질심사도 3번 받았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과잉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검 기소에 따른 재판은 80차례 열렸으며 이 중 이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 재판은 1심에서만 53차례를 포함해 총 70여차례에 달했다. 이 가운데 오전에 시작된 재판이 다음날 새벽에 끝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문제 등과 관련한 수사에서도 50여차례의 압수수색과 430여차례의 임직원 소환조사가 진행됐다.

    코로나19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삼성은 사법 리스크가 발목을 잡으며 경영 활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김현석 삼성전자 사장(CE부문장)도 지난 7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부회장의 앞선 사례들을 소개하며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사장은 "전문경영인들로는 불확실한 시대에 필요한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며 "과연 이 어려운 시절을 전문경영인들이 잘 극복할 수 있을까 걱정들을 많이 한다"고 언급했다.

    앞서 일본 최대 경제지인 니케이도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당시 "이 부회장이 구속되면 그룹의 경영 자원이 재판 대책으로 할애돼, 중장기적인 전략 수립이 지연되는 등의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블룸버그는 삼성이 한국 경제와 국가 정신에 있어 흔치않은 중요한 역할이라고 전하며 "한국이 경제에서 기술 수출 강국으로 변신한 것은 가족이 운영하는 대기업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은 큰 숲을 보고 방향을 제시해 주는 리더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이번 기소 결정으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IDS)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엘리엇은 지난 2018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하고 영향력을 행사해 7억7000만달러(약 9100억원)의 피해를 봤다며 ISD에 중재 신청서를 제출했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상대국의 제도 등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국제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받는 제도다.

    검찰 수사팀이 주장하는 의혹이 엘리엇의 논리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이 부회장이 검찰에 기소되면서 ISD 소송이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엘리엇은 '정부 개입으로 부당하게 손해를 봤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법무부에 검찰 수사자료를 요청하기도 했다. 앞서 ISD 중재재판부는 '수사가 진행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며 엘리엇의 요구를 기각했지만, 재판이 시작되면 민감한 수사자료 제공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지게 된다. ISD 소송에서 엘리엇에 유리한 근거로 악용돼, 대규모 국부 유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한편, 이 부회장 측 변호인단은 검찰의 불구속 기소 결정에 대해 "공소사실인 자본시장법 위반, 회계분식, 업무상 배임죄는 증거와 법리에 기반하지 않은 수사팀의 일방적 주장일 뿐 결코 사실이 아니다"라며 "합병과정에서의 모든 절차는 적법하게 이뤄졌다고 판단받음으로써 수사팀이 주장하는 공소사실은 범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안"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