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상속 할증 포함 OECD 최고 수준 세율 '도마 위'보유 지분 팔아 상속세 재원 마련 나선 기업가들...결국 경영권 포기 이르러삼성·현대차도 겪은 외국계 벌처펀드의 경영권 위협...상속세 맞물려 재연 가능성기업가 정신 이어갈 제도 부재...한경연 "장기적으로 자본이득세 도입 필요"
  • 재계가 잇따라 3,4세 경영 체제를 맞이하며 오랜 기간 논란을 빚어왔던 상속세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2년 전 LG그룹의 구광모 회장이 900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게 된 데 이어 롯데그룹도 4000억 원이 넘는 상속세를 내고 경영권을 넘겨받아야 할 상황에 처하면서 재벌들의 상속은 주목을 끌었다.

    논란은 한국 역사 상 최대 규모로 기록될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을 앞두고 절정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일가가 고(故) 이건희 회장의 삼성그룹사 지분만 물려받는다고 하더라도 상속세 규모는 10조 6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기 때문이다. 사상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두고 다시 한번 국내 상속세율이 적합한 것인지에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미 재계에서 오랫동안 주장해 온대로 한국의 상속세율은 최대주주 상속 할증까지 포함하면 글로벌 최고 수준이다. 명목 상속세 최고세율 50%에 최대 주주 상속 할증 20%가 가산돼 최대 65%까지 세율이 커질 수 있다. 최고세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 일본(55%)이나 미국(40%), 프랑스(45%), 영국(40%) 보다도 높을 뿐만 아니라 호주나 캐나다, 뉴질랜드처럼 상속세가 없는 곳과 상당히 대조적인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일부 재벌에만 적용되는 최고세율이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에 대해 '쓸데 없는 오지랖'이라고 평하거나 기우에 불과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상속세의 근본 취지가 '부의 재분배'라는 점을 앞세워 한 국가의 경제를 좌우할 수 있는 사안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주체 중 하나인 기업이 상속 과정에서 존속 자체에 위협을 느낀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꼽힌다. 기업 승계를 단순히 부의 이전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기술이나 사업 경쟁력을 이어가는 단계로 이해하는 측면이 상대적으로 부족해 의견 괴리가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국내 상속세율에 따르면 회사를 세 번 이상 승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기업이 첫 상속에서 60% 가량의 상속세를 적용받고 이후 또 상속이 이뤄질 경우, 안정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최소 지분 30% 마저 지키기가 어렵다는 계산이 나온다. 100년 이상 역사를 이어온 이른바 '장수기업'이 국내에서 탄생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로 이 같은 상속 구조가 꼽히기도 한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이하 한경연)은 OECD 주요국 대비 과도한 수준의 상속세가 가업 상속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기업가 정신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한경연은 이 조사를 통해 실제 상속세 마련을 위해 기업 영속성에 방해를 받은 사례들을 제시했다. 손톱깎이 생산 세계 1위 업체였던 '쓰리세븐'의 경우 지난 2008년 상속세 납부를 위해 지분을 전량 매각할 수 없었다. 이후 창업주의 경영 철학이 이어지지 못하는 상황에서 고전하던 쓰리세븐은 적자기업으로 전락해 그 명성을 모두 잃게 됐다.

    이우현 OCI 부회장이 상속세 때문에 한때 최대주주 지위를 잃었던 사례도 회자된다. 지난 2017년 부친 이수영 회장이 타계하며 물게 된 상속세가 1900억 원에 달해 이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이 부회장이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해 3대 주주로 내려앉았던 적이 있었다. 이처럼 보유 주식을 팔아 상속세에 조달하려면 주식 양도소득세도 내야 해 부담은 이중, 삼중으로 더해진다.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지분으로 상속세를 충당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기업가들이 이른바 기업 사냥꾼이나 행동주의 펀드들의 타깃이 된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후속 경영인들이 가업을 이어나가 발전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도 외국계 사모펀드나 단기 이익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투자자들의 경영권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되는 일은 이미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한경연은 이처럼 상속세 마련을 위해 경영권을 포기하거나 빼앗길 위기에 놓였던 기업의 사례로 제시했다. 콘돔 생산 세계 1위였던 국내기업 '유니더스'는 상속세 탓에 지난 2017년 사모펀드에 경영권을 넘길 수 밖에 없었고 밀폐용기 제조업체 '락앤락'도 상속 시 발생될 세금을 감안해 비슷한 시기 홍콩계 사모펀드에 지분을 매각했다.

    현재 막대한 상속세로 주목받는 삼성의 경우, 상속세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던 것은 아니지만 지배구조 이슈로 외국계 벌처펀드(vulture fund)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공격을 받았던 경험이 있다. 당시에도 엘리엇이 삼성의 향후 지배구조 개편과 상속 등의 상황에서 공격의 여지가 있을 것임을 인지하고 적대적인 경영권 조준에 나섰다는 비판이 있었다.

    이에 바로 뒤이어 또 다른 지배구조 개편을 앞두고 있던 현대자동차그룹 경영권에도 제동을 걸었던 곳이 엘리엇이다. 그 간 엘리엇이 경영권 사수에 취약한 기업들에 전략적으로 접근해 초단기 이익 취득을 달성하고 기업의 영속성을 해친 경우가 많았다는 점에서 국내기업들도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이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삼성과 현대차가 일부 지배구조 개편에만 나섰던 상황인데 반해 이제는 천문학적인 수준의 상속세 마련을 위해 보유 계열사 지분 중 일부는 매각에 나설 수 밖에 없어 위기감은 더 커졌다.

    한경연에서는 가업 승계를 저해하는 수준의 높은 상속세 문제와 관련해 궁극적으론 상속세 대신 '자본이득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본이득세란 자산의 매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득에 조세하는 방법으로, 상속을 받은 직후 그 상속 규모에 비례해 납부하는 상속세와 달리 상속 받은 자산으로 추후 발생한 이득에 세금을 매긴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본이득세가 적용되면 기업가들은 기업 승계를 단순히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자각을 할 수 있다는게 한경연의 주장이다.

    임동원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기업승계 시 '징벌적 상속세'라는 장애요인을 제거할 수 있도록 단기적으로 상속세율을 인하하고, 추후 기업승계에 한정하여 자본이득과세가 도입된다면 기업승계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면서, "중소·중견기업의 활성화 및 대기업으로의 성장이라는 선순환을 위해 우선 국제적으로 높은 상속세율(50%)을 OECD 회원국 평균인 25%까지 인하하고, 최대주주할증과세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이미 주식가격에 포함돼 있어 실질과세원칙에 위배되므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임 위원은 "장기적인 대안으로 기업승계의 장애요인인 상속세를 폐지하고 동시에 조세형평성을 유지할 수 있는 자본이득세(승계취득가액 과세)의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추후 상속자산 처분 시 사망자와 상속인 모두의 자본이득에 과세하기 때문에 조세형평성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