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6년 외길 이코노미스트…삼프로TV서 새로운 도전위기의 변동성 장세, 개미투자자 이해돕는 시장 분석 조력 후배들에 충고보다 격려…"자부심 갖고 임할 수 있는 직업"
  • ▲ 1세대 애널리스트 김한진 박사 ⓒ강민석 기자
    ▲ 1세대 애널리스트 김한진 박사 ⓒ강민석 기자
    1세대 애널리스트로서 3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김한진 박사의 낯엔 깊은 주름도 여럿 패였다. 외연의 주름은 늘었을지 모르지만 새 출발을 앞둔 그의 눈빛은 총명한 소년처럼 반짝여 인상 깊다. 나이가 들면 풍채가 있는 게 덕이 좀 있어 보일 텐데, 자신의 마른 체구와 외모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소탈히 웃는 그와의 대화 내내 연륜과 관록, 겸허함이 묻어났다.  

    김 박사는 증권가에서 손꼽히는 이코노미스트(거시경제 분석가)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환율은 2000원까지 치솟고 코스피지수가 한때 300 밑으로 내려가던 그 시기 외국계 증권사 대다수가 한국 경제를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김 박사는 우리 경제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며 환율이 다시 1000원대로 오르고, 코스피 역시 1000을 돌파할 것이란 의견을 꿋꿋이 냈다. 한국 증시는 실제로 반등했고, 경제는 부활했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삼성자산운용 리서치헤드를 거쳐 흥국증권 리서치센터장, 피데스자산운용 부사장을 역임한 지난 2013년 그는 다시 KTB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으로 현장의 이코노미스트서 돌아와 화제가 됐다. 그리고 지난 연말 은퇴를 끝으로 기성 증권 조직 애널리스트로서의 긴 여정을 마쳤다. 

    그의 나이 만 62세, 이름 앞에 붙은 새로운 타이틀은 경제유튜브 삼프로TV 이코노미스트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유입된 개미투자자들은 과거와 달리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정보를 습득하고 공부한다는 특성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경제 유튜브는 증시 전문가들에겐 또 다른 기회의 장이 됐다.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선 김한진 박사의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차분한 시장 분석은 화제였다. 그는 당장 이번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방송을 통해 개미투자자들과 만난다. 

    이코노미스트로서 살아온 과거와 앞으로의 행보에서 가장 큰 차이는 메시지 '대상'이다.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는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분석 자료를 제공하기에 이코노미스트 관점 역시 제약받는 게 사실이지만 앞으론 기관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에 자유로운 관점을 담을 수 있다.

    그가 유튜브 소속 이코노미스트로 인생 2막을 택한 이유도 그때문이다. 외환위기를 지나 2000년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그동안 수없이 많은 변곡점을 지났지만 코로나19라는 전염병 영향권에 있는 주식시장은 처음이기에 그조차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라고 한다. 여전히 시장에 머무는 이유는 인간이 정복할 수 없는 에베레스트산을 많은 산악가가 등반하는 것에 비유됐다. 정복하기 힘들다는 매력적인 그 무언가가 산악인들의 수없는 도전을 일으키는 것처럼 이코노미스트 역시 시장의 수없이 많은 변곡점을 지나며 좌충우돌 도전하는 것과 같다고 말이다. 

    현재의 장세는 고수로 꼽히는 전문가들에게도 녹록치 않다. 과거와 비교할 때 정보는 홍수처럼 쏟아지지만 개인투자자 대부분은 톱다운 방식의 매크로 지표를 소화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30년 넘게 이코노미스트로서 살아오면서 느낀 그 아쉬움은 김 박사가 은퇴 후에도 여전히 시장에 머물게 된 이유로 꼽힌다. 

    "이코노미스트 베이스에서 투자자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변화하는 경제지표에 대해 투자자들이 혼란스러워 한다는 겁니다. 사실 저조차도 참 어렵습니다. 금리와 통화 등 모든 지표는 연동돼 발현되는데, 어디에 우선순위를 둘지 어떻게 연결할지 판단은 쉽지 않죠. 수출 중심의 국가인 국내 주식시장은 더 더욱 대외 변수에 민감합니다. 이 어려운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도록 개인투자자들에게 선명한 투자 전략을 제시하고 싶어요."

    그 역시 이제 자유로운 개미투자자가 됐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김 박사도 초보 투자자라면 초보 투자자다. 현업에 있는 동안은 컴플라이언스(규제준수) 측면에서 국내 주식은 물론 분석에서의 바이어스(편향성)를 우려해 해외주식이나 상장지수펀드(ETF)조차도 투자하지 않았다. 전문가라고 해서 자신도 동학개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며 김 박사는 소박히 웃어보였다. 

    "지수를 추종하고 투자원금이 큰 기관투자자들과는 달리 시드가 작은 개인투자자들은 절대수익률을 추구하고 포트폴리오보단 종목 피킹 개념이 중요한 게 사실이에요. 시장을 실제로 많이 경험하고 여러 굴곡을 지나왔지만 저를 포함해 주변 은퇴한 펀드매니저들조차도 대부분 실전에 서툰 경향이 있어요. 퇴직하고 나니 동학개미들, 수많은 개인투자자가 더욱 확 다가왔습니다(웃음)."

    기존 기관투자자에게 제공했던 자료보다 일반투자자 눈높이에 적합한 콘텐츠를 그의 경험과 식견을 토대로 '김한진'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에게 새로운 과제다. 1세대 전문가지만 도전 앞에 겸손한 태도가 눈에 띈다.  

    "주식시장 발전을 위해 제가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생각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일반 투자자들에게 맞갖은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각오는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여전히 계속 고민하고 발전시켜가야 할 지점이에요." 
  • ▲ 1세대 애널리스트 김한진 박사 ⓒ강민석 기자
    ◆"변동성 강한 공포장세…글로벌 경기 확장은 시장 하단 지지"

    김 박사는 금융시스템이나 산업 등 실물경제는 여전히 양호하다는 점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경제 회복 속도가 굉장히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기준으로 전년 대비 기저효과를 감안할 때 인플레이션율은 오는 6월께 5%대 초반, 연말에는 4% 정도로 떨어져 안정적인 수준이 될 것이란 게 그의 전망이다. 

    다만 내년 상반기까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은 강한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당장 올해 주식시장은 출렁임이 강한 공포장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코스피 시장과 강한 연동성을 보이는 나스닥 시장을 기준으로 10~15%(1만2000~1만3000선) 정도 다운사이드 리스크가 남았다는 게 김 박사의 분석이다. 나스닥 지수는 지난 11일(현지시각) 기준 1만3791.15포인트다.

    그럼에도 내년까진 글로벌 경기가 확장될 것이란 점에 그는 집중하고 있다. 오는 2023년까진 경기 상승 국면이 지속돼 인플레이션이 경기 하강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어닝 사이클이 시장의 바닥을 지지해주면서도 통화정책과 인플레이션 이슈가 버티고 있기에 시장 상단을 막는 박스권을 예상한다. 

    "변동성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클 것 같습니다. 다만 금리는 계속 올라도 경기 흐름이 좋기에 하반기엔 안도감이 반영될 것이라 봅니다. 인플레이션율이 낮아지고 통화정책 부담이 줄어드는 하반기, 나스닥도 다시 1만5000선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합니다."

    장기적으로, 코스피가 2040년엔 1만포인트에 도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때문에 투자자들은 그때가 돼도 선두 기업이 될 기업을 찾아내야 한다고 했다. 향후 이익이 날만한 곳을 찾기 위해선 현재 잘나가는 대기업들의 투자처를 참고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국내 주식 시장의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뛰어넘으려면 벤처·유니콘 기업에 대한 짜임새 있는 정부 정책 지원과 주주 자본주의 기반 미국식 자본주의 문화 정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증시에 비해 현저히 낮은 한국 증시의 주주환원율이 주가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본 것이다. 전 세계에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기업이 된 애플은 10년간 평균 117%의 주주환원율을 기록했다.

    "정부는 작은 혁신기업들이 중견기업들로 성장하도록 돕는 자본정책을 지금보다 정교히 설계할 필요가 있고, 기업은 혁신성장을 통해 많은 돈을 벌어 주주에게 많이 환원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충족되면 국내 주식시장이 안 오르려야 안 오를 수 없죠."

    ◆"여전히 시장은 어려운 에베레스트산…후배들, 애널리스트로서 자부심 가져야"
  • ▲ 1세대 애널리스트 김한진 박사 ⓒ강민석 기자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코노미스트로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지난 1986년, 신문 공고를 보고 우연히 증권사에 입문했던 그는 그저 하루하루 주어진 길을 묵묵히 걸어왔을 뿐이다. 소싯적엔 다 맞힐 수 있을 것 같은 교만함도 있었다면서 여전히 시장은 어려운 '고지'라며 고개를 숙어보였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차별화된 콘텐츠, 개인투자자들이 투자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 그의 목표다. 그 걸음을 멈추는 시점은 김 박사가 발전을 계속할 수 없을 때다.

    "KTB증권에 머무는 동안 동료들과 정말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 잘할 걸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여전히 연장선상에 있고, 꾸준히 제 길을 가고 싶어서죠. 담는 그릇이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제가 그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가입니다. 앞으로도 그것만 생각하고 걸어갈 거예요. 현재도 저는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만약 제가 생각하는 그런 콘텐츠를 만들기 부족하다? 그렇다면 당장 그만둬야지 계속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시장과 개인투자자들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면 앞으로도 길게 그 일을 하고 싶어요."

    이코노미스트가 아닌 인간 김한진으로서의 꿈은 소설 한 편을 펴내는 일이다. 최근 9년간 6권의 경제서적을 발간한 그의 꿈은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소설가였다. 어쩌다보니 경제학도로 시작했지만 반쯤은 그 꿈을 이룬 셈이다. 언젠가는 주식시장에 관련된 에피소드를 담은 소설을 짓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은 유독 반짝였다.

    여전히 현장에는 그를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적지 않지만, 김 박사는 후배들에게 감히 조언하는 것조차 민망해했다. 충고의 말보단 격려의 말을 전하고 싶어 했다. 최근 증권업계에선 애널리스트의 입지와 위상이 점차 줄어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자존감 있게 리포트를 쓰는 많지 않은 직업, 유연하게 시장 트렌드를 좇아간다면 조금씩 자신의 성장하는 모습을 체감할 수 있는 직업,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직업. 베테랑인 김 박사는 이따금 고객들로부터 '생각 못했던 논리를 제공해준 리포트였다'고 칭찬받으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제가 후배 애널리스트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선 부끄럽습니다. 애널리스트 입지가 과거 같지 않다고들 하는데, 제가 만나본 애널리스트 후배들은 자신의 직업을 좋아하고 자부심이 크단 걸 느껴왔어요. 쉽지 않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애널리스트로서 자부심을 갖고 임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