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兆 '쩐의 전쟁' 막 올라…尹대통령 "법정기한내 통과시켜 민생숨통 틔워주길"

윤석열 정부 들어 첫 국정감사가 사실상 마무리되고 국회의 본격적인 내년도 예산안 심사 막이 올랐지만, 첫 출발부터 파행을 겪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5일 검찰·감사원의 전방위적 수사·감사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며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민주당의 보이콧은 예산안·주요 법안 처리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선언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어 정기국회 일정이 안갯속에 빠져들고 있다.

윤 대통령은 2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했다. 윤 대통령은 "고물가, 고금리, 강달러 추세속에 금융시장 변동성은 커지고 경제 불확실성은 높아지는 등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매우 어렵다"면서 "엄중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동안 정치적 목적이 앞선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재정수지 적자가 빠르게 확대됐고 나랏빚은 국내총생산(GDP)의 절반 수준인1000조원을 넘어섰다"면서 "경제 성장과 약자 복지의 지속 가능한 선순환을 위해 국가재정이 건전하게 버텨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금융 안정성과 실물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의 국제신인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건전재정 기조로 내년 예산을 짰다. 총지출 규모는 639조원으로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예산을 축소 편성(-6.0%)했다"면서 "공공부문부터 솔선해 허리띠를 졸라맸고, 역대 최대인 24조원의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해 재정수지는 큰 폭으로 개선되고 국가채무비율도 49.8%로 지난 3년간의 가파른 증가세가 반전돼 건전재정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렇게 절감한 재원은 서민과 사회적 약자 보호, 민간 주도의 역동적 경제 지원, 국민 안전과 글로벌 리더 국가의 책임 강화에 투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첨단전략산업과 과학기술을 육성하고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해 새로운 성장기반을 구축하겠다"면서 "메모리 반도체의 초격차 유지,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문 인력양성과 연구·개발(R&D), 인프라 구축 등에 총 1조원 이상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양자 컴퓨팅, 항공 우주, 인공지능(AI), 첨단바이오 등 핵심 전략기술과 미래 기술시장 선점을 위해 총 4조9000억원의 R&D 투자를 지원하겠다"면서 "무너진 원자력 생태계 복원을 위해 원전 수출을 지원하고, 소형모듈원자로(SMR)와 원전 해체기술 개발 등 차세대 기술 개발도 지원하겠다"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은 미래 산업기반인 교통혁신에도 예산을 집중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는 기존 노선의 적기 완공과 신규 노선 계획에 총 6730억원을 투자한다"며 "도심항공교통(UAM), 개인형 이동수단(PM) 등 미래교통수단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실증 실험시설, 환승센터 구축 등 혁신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서민 주거 안정과 관련해선 "반지하·쪽방 거주자가 안전한 주거환경으로 옮길 수 있게 보증금 무이자 대출을 신설하고, 전세사기 피해자 보호를 위해 최대 1억6000만원의 긴급대출 지원도 신설했다"면서 "청년에게는 '청년 원가 주택'과 '역세권 첫 집' 5만4000호를 신규 공급하겠다"고 설명했다.

물가 안정과 관련해선 "에너지바우처 지원을 확대하고 농·축·수산물 할인쿠폰 규모를 올해 590억원에서 내년 1690억원으로 3배쯤 확대했다"면서 "주요 농·축·수산물 비축을 확대하는 한편 중·소농의 공익직불금 지급 확대, 비료·사료 등의 구매자금 지원을 통해 농가 생산비 부담도 경감하겠다"고 역설했다.

정부는 격화하는 경제 블록화 물결에 대비한 경제안보 역량 강화에도 예산을 집중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공급망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해외 자원개발 투자를 확대하고 니켈·알루미늄 등 광물 비축, 수입선 다변화를 위해 3조2000억원을 투자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서 완전히 벗어나 다시 뛸 수 있게 채무조정과 재기 지원 등에도 재정을 추가 투입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끝으로 "예산안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지도이고 국정 운영의 설계도"라며 "국회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해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주고 미래 성장을 뒷받침해 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정기국회 내 예산안 심사는 난항을 예고했다. 야당은 이날 시정연설에 전면 불참했다. 야당 의원들이 국무총리가 대독한 시정연설에 불참한 적은 있으나, 대통령이 직접 나선 시정연설에서 입장조차 하지 않은 것은 헌정사상 최초다. 민주당은 본회의장에 입장하는 대신 국회 로텐더홀에서 피켓 등을 들고 규탄 시위를 벌였다. 제1야당이 초유의 시정연설 보이콧에 나서면서 예산안과 법안 심사 과정에서 여야 대치가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모두발언에서 "(윤 대통령이) 뒤로는 막말 정쟁을 하며 민생을 외면하고 야당 탄압과 협치 파괴로 입법부를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산안 심사와 관련해선 "국민 혈세를 허투루 쓰이지 않게 예산심사는 그 어느 해보다 철저히, 더 강력하게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