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의무사항 아냐…'분양완판' 등 허위정보 수두룩알권리 침해에 소비자 피해 속출…확인·제재 방법 無건설사 "낙인효과 우려" 비공개 유지…정부 조치 필요
  • 부동산은 공급자와 수요자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유독 큰 분야다. 매일 쏟아지는 부동산 관련 통계로 집값 등 시장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지만 시점과 기준이 제각각이라 혼란만 주기 십상이다.

    전세시장에서는 등기부등본 서류 하나만 믿고 전세계약을 체결했다가 악성임대인에 사기를 당해 피 같은 보증금을 날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래 한번에 수억원이 오가는 부동산시장에서 정보 부족은 돌이킬 수 없는 '악수'로 이어진다. 더욱이 가계자산 70%가 부동산에 몰려 있는 한국에서는 잘못 쓴 계약서 한장으로 인해 개인·가정의 인생플랜 자체가 꼬여버릴 수 있다.

    최근 소비자 알권리 침해 측면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아파트계약률'이다.

    현행법상 민간아파트 계약률은 공개 의무사항이 아니다.  즉 정당계약이나 무순위청약에서 나온 계약률이 궁금해도 이를 확인할 방도가 없다. 모델하우스나 시공사에 문의해봐도 "영업비밀이라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다.

    지자체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는 지역별·업체별 미분양현황 자료를 통해 계약현황을 유추해볼 순 있지만 이마저도 시공사 요청으로 비공개되는 경우가 적잖다.

    사실 시장이 호황기일땐 계약률이 크게 문제될 일이 없었다. 아파트 선호도가 높은 국내 부동산시장 특성상 청약률이 그대로 계약률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부동산침체기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기준 서울 민간아파트 초기분양률(계약률)은 20.8%에 그쳤다. 전년동기(100%) 대비 79.2%p 하락한 것으로 통계발표가 시작된 2015년 3분기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대출이자 부담과 시세차익 감소 등을 이유로 계약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난 까닭에 청약흥행에는 성공했지만 완판에는 실패하는 단지가 부쩍 증가했다. 

    보통 A단지가 분양에 들어가면 특별공급과 1·2순위청약을 진행하고 이후 물량이 다 소진되지 않을 경우 무순위·선착순모집에 나선다. 이때 시공사는 잔여물량 소진을 위해 열띤 마케팅을 펼치곤 한다. 이과정에서 '완판임박', '계약률 00% 달성' 등 허위정보가 판을 친다. 그러나 현행법상 이를 확인할 수도, 제재할 방법도 없다.

    계약률 비공개로 인한 '깜깜이' 분양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실제로 허위정보만 믿고 덜컥 아파트를 계약했다가 수년간 발이 묶이고 상당한 금전적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대구 모 아파트 견본주택에서는 계약자 B씨가 계약취소를 요구했다가 이를 거부당하자 전시중인 아파트 모형을 파손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현재 계약률은 30%이며 로얄층은 얼마 안남았다'는 말을 믿고 계약했다가 추후 실제 계약률이 16%에 불과한 것을 알고 계약취소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낙인효과'를 우려해 계약률 비공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저조한 계약성적을 공개할 경우 미분양이 장기화할 수 있고 브랜드이미지도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아파트 계약 한번에 인생을 건다. 내집마련을 위해 아등바등 수억원을 겨우 마련한 이들에게 영업비밀만 운운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더욱이 계약률 비공개는 자본주의 공정경쟁 원칙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최근 미분양이 꾸준히 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계약률 공개에 대한 건설사들 스탠스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 결국 정부차원의 조치가 선행돼야 깜깜이 분양으로 인한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정치권 입법지원도 필요하다. 고무적인 것은 최근 국회에서 주택건설등록사업자가 일정규모 이상 아파트를 공급할 때 주택단지별로 체결된 공급계약률을 공시하도록 하는 '주택법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된 것이다.

    다만 2015년에도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초기계약률 공개를 추진했다가 건설업계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어 통과여부는 미지수다.

    장기적으로 계약률 공개는 서민 실수요자 보호와 올바른 부동산정책 수립과 직결된다. 정부와 정치권의 발빠른 조치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