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공정위, 함정시장 독점 두고 심사숙고복수사업자들 경쟁 제한 우려… 노조·정치권 등도 가세단순 M&A아닌 조선업 재편·대조양 정상화 차원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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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들 쓰는 표현 가운데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과 ‘싸움구경’이라는 말이 있다. 특히나 싸움구경은 이기적인 인간의 심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당사자들은 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지만 구경을 하는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한 남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마냥 마음 편히 볼 수 없는 싸움구경도 있다. 늦어지고 있는 한화와 대우조선해양 합병이 그렇다.

    막바지에 다다른 것으로 보였던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좀처럼 결론나지 않고 있다. 현재 튀르키예, 영국, 일본, 베트남, 중국, 싱가포르, 유럽연합 등 한국을 제외한 해외 7개 경쟁 당국은 양사의 합병을 승인한 상태다. 한국 공정위는 양사가 합병할 경우 함정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게 돼 경쟁관계가 훼손될 위험에 대해 심사숙고 중이다. 

    해당 사연의 자초지종이 밝혀진 건 지난 3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백브리핑이었다. 이날 공정위 관계자는 “복수의 사업자들이 정보 접근 차별 등 함정 부문 경쟁 제한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제기한다”며 “함정 부품 시장에서 한화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함정 시장에서의 경쟁사를 봉쇄할 가능성에 대한 집중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업결합 심사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심사가 다른 나라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함정을 건조하는 국내 조선사는 대우조선해양을 비롯해 HD현대중공업, HJ중공업, SK오션플랜트 등 총 4곳이다. 이들은 배에 탑재되는 무기를 생산하는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에 무기 공급을 우대함에 따라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해관계에 따라 한화와 대우조선해양 합병에 제동을 걸고 있는 곳은 경쟁사들뿐만이 아니다. 각사 노조는 물론 지역사회, 시민단체, 심지어 정치권과 언론까지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을 두고 잇속차리기에 나서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노동자 추모건과 관련해 한화와 기싸움을 벌인 바 있으며, 이로 인해 IMO(통합관리) 사무실이 철수됐다 다시 재설치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과 HJ중공업 노조는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특수선 일감이 줄어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공정위 앞 1인시위를 예고한 상태다. 정치권은 이번 합병을 통해 표심얻기에 나서고 있으며, 언론 일각에서는 음모론까지 꺼내들며 합병저지에 나섰다. 

    그야말로 이전투구(泥田鬪狗) 그 자체다. 이해집단이 난립하면서 코 앞까지 다가왔던 양사 합병은 점점 더 늦어지고 있다. 

    한화와 대우조선해양 합병은 단순 민간 기업간 M&A가 아닌 한국 조선업 역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큰 이벤트다. 현재 국내 조선업의 중국과의 선박 수주경쟁 심화, 출혈경쟁 등으로 인해 산업구조 재편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합병은 한국 조선업 경쟁력 제고와 건전한 경쟁 생태계를 조성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산업은행 아래서 혈세로 운영되던 대우조선해양이 새로운 주인을 맞을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대우조선해양은 대우그룹이 무너진 이후인 2001년부터 21년간 산은의 관리 아래 있었다. 투입된 직간접적인 공적자금만 13조원 규모로 추산된다. 공정위 심사 기간이 길어지면서 대우조선해양의 경쟁력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올해 1분기 대우조선해양 수주액은 8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42억달러와 비교해 81%나 줄었다. 국가적으로도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가 절실한 상태다. 

    재밌어야 할 싸움구경이 씁쓸한 이유다. 지금의 싸움은 백이면 백, 서로 지는 싸움이며 서로 간에 상처만을 남기는 이전투구일 뿐이다. 이런 싸움에서는 승자가 없다. 국내 이해당사자들의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면서 해외 조선사들만 반사이익을 누리게 되는 건 아닌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