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동시통역관에서 애널리스트로 변신남다른 주식 사랑에 PB 전향…"주식으로 세상과 소통""탐방 없인 확신 없다"…대박 주식 '픽'해 자산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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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진 기자
    주식 포트폴리오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도현정 메리츠증권 광화문금융센터 부장은 이색 이력의 소유자다. 

    일본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한국에서 동시통역대학원을 거쳐 현지에서 동시통역사로 한참을 일했다. 

    후생노동성, 일본 대사관 통역은 물론 후지TV, NHK 등 뉴스 보도국에서 통역 업무를 맡았다. 겁도 없이 막연히 일본이 좋아 유학길을 떠났던 호기심 많던 소녀는 종횡무진 한국과 일본 국제회의장을 오가는 일본어 동시통역사로 십여 년을 보냈다. 

    증권업계와 연을 맺은 시작도 언어가 매개였다. 2007년 말, 당시 코스피 2500 장밋빛 전망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그 무렵 대신증권에서 일본주식 트레이딩시스템을 오픈하면서 리서치센터 통역 인력을 수혈한 게 계기가 됐다. 

    스타 애널리스트 출신 리서치센터장이었던 구희진 전 대신자산운용 대표가 그를 뽑았다. 금융 전문 통역사이자 애널리스트로 여의도에 첫발을 내딛었다.

    국제회의 동시통역사는 전문적 내용을 다루기에 통역기술은 기본이고 박학다식함이 요구된다. 회의에 투입되려면 빠르게 산업에 대한 공부를 섭렵해야 하는데, 리서치 업무와 얼개가 흡사했다. 주식의 매력에 금세 빠져들었기에 그는 자발적으로 매일 일본시장 상황을 정리해 메신저로 발송했다. 

    막연했지만 주식을 좀더 전문적으로 하고 싶었다. 주식을 공부하며 세상을 만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스몰캡팀 리서치 인원을 충원한다는 소식에 곧장 그는 기회를 잡았다. 경영학을 전공했다곤 해도 당시를 회상하면 참 녹록치 않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도전했던 건 주식을 할 때 진정으로 살아숨쉬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주식은 그에게 매순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세상을 만나게 해준 창구다. 주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사에 이토록 기민한 관심을 보일 수 있었을까. 주식에 영향을 미치는 거시적·미시적인 수많은 요소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고민하는 매순간, 세상과 깊숙이 소통하는 체험의 현장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당시에 뉴스를 보면 마치 제가 트럼프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책상에 앉아 세상과 소통하는 느낌을 받는 저 자신을 발견했는데, 그게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요. 주식이 무척이나 좋아요. 거기다가 잘하면 돈까지 벌어다 주지 않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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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널리스트 관점으로 3년 버틸 종목 픽…"탐방 없인 믿음 갖기 힘들어"

    7년간 애널리스트 경력을 통해 기업을 분석하고 유망한 섹터·종목을 발굴하는 관점과 노하우를 확보했다. 오랜 시간 리포트를 만들어내는 업무를 해왔던 그는 종목 뉴스, 지표 등에서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다.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관점에 갇히기보단 자신만의 관점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지난 2015년 합류한 메리츠증권은 그간 쌓은 노하우를 발휘할 주식 실전의 장이었다. 당시 메리츠증권은 성과주의를 내세우며 업계에서 소위 '선수'들을 흡수했다. 상품 판매보단 주식으로 승부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메리츠증권을 택했다. 

    회사 내 주식 고수로 정평난 문필복 전무 밑에서 실전을 배웠다. 그의 롤모델인 문 전무와 함께하는 매주 월요일 아침 회의 시간은 PB로서의 자세, 주식 투자에 대한 가치를 확립하는 시간이 됐다. 

    3년 내 2배 수익이 날 수 있는 주식 리스트 20개 정도는 늘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자신만의 리스트업을 위해 이틀에 한번 꼴로는 무조건 기업 탐방에 나선다. 애널리스트 출신이기에 탐방하지 않은 종목은 결코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 아무리 유망해보이는 기업이어도 기업설명회(IR) 과정에서 투명하고, 신뢰가 가는 기업에 투자한다. 

    "굉장히 유명한 매니저 중엔 탐방을 하지 않고 사는 분들도 있어요. 오히려 IR을 가면 판단이 안 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 같은 경우는 탐방을 하지 않은 주식을 안 사는 게 아니라 사지지가 않더라고요. 3년을 버틸 수 있는 투자여야 하는데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방향성 투자의 경우 주가가 빠지면 물을 타야 하는데, 확신이 있으려면 더더욱 탐방을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3년을 버티는 투자라지만 운이 좋으면 한두달 안에 2배 수익을 올리는 종목들도 적지 않았다. 그때마다 그의 방향성 투자에 대한 확신은 더해진다고 한다. 중요한 건 보유 기간보다 목표가다. 목표치에 도달하면 물량을 덜어내고, 조정이 오면 다시 물량을 확보하면서 확신 있는 주식과 함께 간다. 이같은 종목 픽을 통해 그의 가장 오래된 고객의 자산은 2015년 10억원에서 현재 80억원까지 불어났다.

    그런 주식들 중 하나가 의료 인공지능(AI)업체 루닛이다. 지난 6일 종가 기준 17만5200원까지 오른 이 주식을 그는 2만원대 초반에 담았다. 재무제표에 따박따박 숫자가 찍히는 제조업과 달리 바이오업체는 상대적으로 막연하게 느껴졌지만 그가 분석했던 루닛은 남달랐다고 한다. 

    "주변 VC들과 자주 소통하는데, 다들 루닛에 대해 너무 비싸다는 얘길했어요. 근데 제 생각은 좀 달랐어요. 글로벌 1등기업과의 파트너십, 회사 구성원들의 역량, 폐암 조기진단 사업의 유용성과 의미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도 감춤 없이 성의 있고 신뢰가 가도록 IR을 해줬고요(웃음)."

    ◆"설렘으로 도전하는 매일…언젠가 자선펀드 만들 것"

    하루의 시작은 새벽 4시부터다. 미국시장과 주요 뉴스를 정리하고, 종목별로 이슈를 체크하는 장 시작 전 매일 4~5시간은 그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건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언젠가 스스로 인정할 만큼의 승부를 보는 순간은 이 시간들을 지켜내는 데서 올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담겼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자신에 주는 이유는 피같은 고객 돈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해서다. 24시간 주식 생각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역사에서 애널리스트, 그리고 PB로 업을 바꿀 때 두려움보단 설렘이 컸거든요. 매순간을 통해 매일매일 조금씩 지혜로워지고 성장해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요. 항상 그렇게 도전하고 살아왔던 이유는 하고자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에요. 아직 성에 안차요. 제가 주식을 좋아하지만 올라도, 내려도 판단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하거든요. 근데 그 압박감이 괴롭기보다 저에겐 도전이 되고 있어요."

    지난해부터 그는 3년 투자 리스트로 AI와 로봇 종목들에서 새롭게 기회를 찾고 있다. 오픈AI의 챗GPT로 시작된 AI 열풍은 결국 전 산업으로 퍼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다만 아직까지 대부분 AI 관련 국내 기업들이 IR에 적극적이지 않은 건 아쉬운 대목이다.

    "AI 사업은 굉장히 빠르게 확산되고 있어요. 제 삶에서도 그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느낄 정도로요. 전 분야에 다양하게, 결국 세상은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냉철한 시장에서 주식전문가로 살아가면서 그에게 지닌 따뜻한 꿈이 하나 있다. 언젠가 자선펀드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성공적인 PB의 삶을 통해 주식으로 돈을 벌고 싶은 이유 역시 들여다보면 이 소망과 통한다.

    "자선펀드라고 하니 너무 거창해 쑥스럽지만 펀드 가입을 해 수익도 얻고, 기부도 하는 그런 걸 언젠가 하고싶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하고 있어요. 뉴스에 나오는 노령 세대의 부 양극화 문제는 특히나 제 마음을 아프게 해요. 저나 저의 고객들은 부를 늘려가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너무 힘들게 지내는 분이 많죠. 저의 방식으로,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돌려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