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정제시설 순증설 규모 30년만에 첫 역성장올 석유제품 수출액 호주·미국·싱가포르 크게 늘어"국내 정유사 정제능력 글로벌 '톱', 수출시장 다변화 택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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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장에서 정유공장 폐쇄 속도가 빨라지면서 국내 정유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의 석유제품 생산 캐파는 내수 소비량보다 큰 만큼 남는 물량을 해외로 내보내 수익성을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호주·중국 등 주요 국가에서는 노후화된 정유시설을 없애는 추세다. 글로벌 메이저 석유화학 회사인 라이온델바젤은 미국에서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휴스턴 정제공장을 올해 말까지 폐쇄할 계획을 내놨다. 100년이 넘은 이 공장을 유지하려면 막대한 재투자가 필요한데 석유정제 사업에 투자 가치가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일본 최대 석유회사인 에네오스도 최근 몇년 간 정유시설 폐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대신 정유 대신 친환경 항공유나 수소 생산공장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중국 정부 역시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소규모 원유정제시설의 설비를 폐쇄하는 등 정유산업의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호주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글로벌 정제시설 순증설 규모는 30년만에 처음으로 역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하루 85만 배럴의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정제시설이 증설됐는데 폐쇄된 정제시설 규모는 이보다 배 가까이 많은 160만b/d(하루당 배럴)에 달했다.
각 국의 정유공장 축소 분위기는 국내 정유사들에게 기회로 떠올랐다. 세계 '톱5' 안에 드는 정제시설을 3곳(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이나 보유한데다 최근 수출 물량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서다.
한국무역협회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석유제품 수출액은 52억6500만달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44억6200만달러) 대비 18% 늘었다. 특히 호주·미국·싱가포르 등으로의 수출이 크게 늘었다. 호주는 지난해 대비 65%, 싱가포르는 55.5%, 미국은 4.9% 늘었다.
수출량 통계에서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정유 4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의 석유제품 수출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증가한 2억2850만 배럴로 집계됐다. 지난 2021년 1억9600만 배럴로 급감해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글로벌 이동수요 증가 등에 힘입어 2년 연속 증가했다.석유업계 관계자는 "올해 주요 정유사의 원유도입액 중 60% 정도를 석유제품 수출로 회수했다"며 "3년 전부터 호주나 중국 등에서 작은 정유 정제시설을 없애고 있는 추세가 빨라지면서 정제 능력이 월등하고 공급 여력도 큰 국내 정유업체 입장에서는 수출 공급망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이런 흐름은 최근 가시화되고 있다. 국내 정유사 중 수출 캐파가 가장 적은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미국 본토에 석유제품을 공급하기로 했다. 지난 2021년 미국에 휘발유를 공급하기 시작했지만 하와이·알래스카·괌 등에 국한됐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이번 장기 계약으로 연 360만 배럴 이상을 2024년까지 공급할수 있게 됐다. 회사의 일일 원유 정제능력은 52만 배럴로 계약 규모와 비교했을 때 수출 물량이 큰 규모는 아니지만 미국 본토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향후 미국 본토 진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전기차 성장세에 휘발유·경유 등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반면 미국은 기본적으로 석유 수요가 많은 시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고유가 등으로 전반적인 수요가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은 휘발유 최대 소비국이다. 지난해 기준 미국의 하루 평균 휘발유 소비량은 약 2000만 배럴을 넘겼다. 여기에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 이후 미국산 휘발유의 유럽 수출이 확대되며 수입산 석유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업계 관계자는 "호주나 미국 등에서는 탄소배출권을 줄이기 위해 정유공장보다 친환경 포트폴리오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며 "다만 친환경 에너지 전환을 하더라도 당장 석유 제품을 대폭 줄일 수는 없는 상황에 한국의 완제품 수입을 택할 확률이 높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