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은법 개정안 계류되며 폴란드 2차 계약도 표류폴란드 정권교체 야권연합 전 정부 계약 번복할 수도4대 방산국가 도약하려면 금융지원 시급… 외교역량 활용해야
  • ▲ K9 자주포.ⓒ한화에어로스페이스
    ▲ K9 자주포.ⓒ한화에어로스페이스
    “수출입은행법(수은법) 개정안도 그렇고 폴란드 총선도 그렇고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지켜만 봐야 하는 상황입니다. 회사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다 했다고 봐야죠.”

    지난해 수주 잭팟으로 K-방산 열풍을 견인한 국내 방산기업들이 초조해하고 있다. 수은법 개정안 지연과 폴란드 새정부 출범에 따라 폴란드와의 2차 계약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올해 정부가 목표로 내걸었던 방산 수출 목표 금액 200억 달러를 달성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해 한국 방산업체들은 폴란드 정부와 124억달러(한화 약 17조원) 규모의 무기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천무 다연장로켓,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FA-50 경전투기, 현대로템의 K2 전차 등이 수출됐다. 

    이 중 K2 전차와 K9 자주포는 도입 규모가 이례적으로 커 사업을 2단계로 나눴고, 올해 2차 계약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당초 협의가 된 2차 계약 규모는 K2 전차 820여대, K9 자주포 360여대 등 30조원 규모로 추정됐다.

    당초 업계는 올해 상반기까지 2차 수출 계약이 마무리 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한국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한도를 높이는 이른바 수은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수출에 제동이 걸렸다. 

    대규모 무기를 발주한 국가는 부족한 재원 조달을 위해 입찰 당사국에 금융 대출 등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현행 법에 따르면 수출을 지원하는 한국수출입은행은 특정 대출 국가나 기업에 자기자본(15조원)의 40%(6조원)만 빌려줄 수 있다. 폴란드의 경우 1차 계약에서 이미 대부분의 대출한도를 소진한 상황이어서 2차 계약에 지원 가능한 자금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그나마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KB국민·신한·하나·우리·HN농협 등 5대 은행이 폴란드 방위산업 수출 2차 계약에 대해 공동대출을 결정하면서  K9 자주포 ‘2차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수입국에 대한 금융 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이번 계약은 애초 예상했던 수출 물량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진다.

    게다가 최근 폴란드 총선으로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업계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폴란드 새 정부가 올해 총선 이후 체결한 무기 수입 계약 일부를 철회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지난 10월 총선에서 야권 연합이 과반을 확보하면서 정권 교체가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 15일 열린 폴란드 총선에서 도날트 프란치셰크 투스크 전 총리는 8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고 폴란드의 신임 총리로 확정됐다. 야권연합은 그동안 자국 내 한국 무기체계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경계해왔다. 또한 한국 무기 구입 자금을 위한 특별 예산 편성에 대해서도 비판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지난 10일(현지시간) 폴란드 야권 연합의 일원인 시몬 호워브니아 하원의장은 방송에 출연해 “법과정의당(PiS) 임시 정부가 서명한 합의는 무효가 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 시절 추진된 각종 정책이나 핵심 사업이 번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애당초 폴란드 총선 전 적절한 대안이 마련돼 금융 지원이 이뤄졌다면 2차 계약까지 순조롭게 이뤄질 예정이었다. 계약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미국, 독일 등의 선진 방산국가들의 견제까지 이뤄지며 K-방산 열풍은 잠깐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방산 분야를 새로운 수출 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K-방산을 성장시켜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한국경제인협회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세계방산 수출 9위인 한국이 2027년까지 세계 4대 수출국으로 성할 경우 방산 매출액은 29조7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6만9000명의 고용이 신규 창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내세운 대로 한국 방산을 세계 4대 방산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수출입은행법을 개정해 방산업계 지원 가능액을 늘리는 것이 시급하다. 현재 국회에는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를 35조원으로 늘리는 법안 개정안과, 정부 간 계약일 때는 신용 공여 한도를 올려주는 법안 등이 계류 중이다. 또한 정부의 외교·안보역량을 활용해 기업들이 힘들게 따낸 수출 계약이 축소되거나 백지화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신냉전으로 최근 세계 방산시장에서 K-방산이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은 한국 방산 수출 확대의 호기가 아닐 수 없다. K 방산이 ‘수출 효자’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