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480원 돌파해 금융위기 후 최고 수준 '권한대행 탄핵' 헌정사 초유 사태 가능성에 환율 자극물가 전반 악영향… 수출 기업 강달러 수혜도 '옛말'트럼프 2기 통상 불확실성 속 수출 여건도 '비상등'
  • ▲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 27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과 코스피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사상 초유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 가능성에 원·달러 환율이 장중 1480원을 뚫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방침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압력 속 탄핵 정국에 따른 국내 정치적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원·달러 환율이 연일 연고점을 경신하고 있다. 강달러 현상이 심화하면서 경제 전반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27일 원·달러 환율은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480원대에 올라섰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고, 더불어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추진에 나서면서 정국 불확실성이 재차 확대된 영향이다. 

    연준이 올해 마지막 회의에서 '매파적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달러 강세 기조가 이어지고 있지만 원화 약세는 유독 두드러진다.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에 이어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 표결까지 앞둬 정치적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갈수록 심화하는 국내 정국 혼란이 다른나라 통화 대비 한국 원화 가치를 가파르게 끌어내리고 있다는 평가다. 비상계엄 사태가 있던 지난 3일 이후에만 원화값이 4% 이상 급락했다. 시장에서는 고환율과 통상환경 변화가 겹치며 한국 경제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고 우려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1400원대 1차 저지선인 1425원과 2차 저지선인 1450원이 다 뚫린 상황"이라며 "지금 추세대로라면 외환보유액이 4100억달러대 이하로 떨어졌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3000억달러대까지 내려오면 상당히 위험하다"고 말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이날 민주당의 한 권한 탄핵소추 추진을 두고 "한 대행 탄핵으로 환율, 물가, 대외신인도, 수출 모든 부분에 있어서 먹구름을 드리웠고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며 "우리 외교도 심대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강달러 바람이 거세지면서 물가도 들썩이고 있다. 이상기후 여파로 수급 이슈까지 겹치면서 먹거리 물가가 비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생산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식품산업이 60~70%, 외식산업이 30~40% 수준이다. 식품사업 원료 소비 실태조사 결과 식품제조업체의 국산 원재료 사용 비율도 2022년 기준 31.8%에 그쳤다. 사실상 식품·외식업계는 원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고환율은 먹거리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은 11월 기준으로 1.6%에 그쳤으나 이 중 상승률이 10%를 웃돈 품목만 16개에 달했다. 무(62.5%), 호박(42.9%), 김(35.0%), 오이(27.6%), 시금치(27.0%), 상추(25.5%) 등의 품목이 두드러졌다. 황경임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은 "인플레이션이 누적돼 물가 수준이 올라갔기 때문에 체감물가는 아직 높을 것"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체감 물가 상승과 내수 침체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강달러로 수출 전선에도 먹구름이 끼었다는 것이다. 강달러가 수출 기업에 유리하다는 것은 옛말이 됐다. 강달러 현상이 지속되면 원자재와 원료 수입 비중이 높거나 외화부채가 많은 업종일수록 타격이 크다. 대표적인 업종이 석유화학과 철강, 이차전지, 항공 등이다. 

    딜로이트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원화 약세는 미국과 중국의 내수가 약해져도 대미·대중 수출을 계속할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국내 수입물가를 끌어올려 소비자 구매력과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자재와 중간재 등 수입 비용 부담이 증대해 기업들이 생산비를 절감하기 위해 투자 감축에 나설 수 있다"며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원자재 수입품의 가격이 오르고 공급이 불안해져 수출에 호재가 아닌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고 내다봤다. 

    국내 기업들의 경기 전망도 어둡긴 마찬가지다. 한국경제인협회가 26일 발표한 업종별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자·통신(105.3)과 의약품(100)을 제외한 나머지 8개 제조업종은 내년 1월 업황 악화가 전망됐다. 

    원료와 원자재 비용이 높은 석유화학업계와 철강업계는 환율 급등에 수익성이 악화해 감산과 구조조정에 나선 상태다. 조 단위의 해외투자가 이어졌던 배터리 업계와 항공기 리스·유류비 등을 달러로 지급하는 항공업계에는 고환율로 외화부채가 확대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반도체 업계도 미국에 짓고 있는 공장 투자액이 계획 규모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과거에 비해 가격보다는 기술 경쟁에 주력하고 있는 추세로 수출기업들의 환차익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산업연구원은 원화의 실질실효환율이 10% 하락하면 대규모 기업집단의 영업이익률은 0.29%포인트(P) 하락할 것으로 추정했다. 김태훈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주요 대규모기업집단의 수출전략이 점차 가격경쟁에서 기술경쟁으로 변화하면서 원화 가치 하락 시 수출가격 하락으로 매출이 증대하는 매출 효과가 사라졌음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악재는 또 있다. 트럼프 2기 정부가 보편적 관세 카드를 준비 중인 가운데, 미국이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관세를 부과할 경우 대미 수출이 급감할 것이란 국책 연구원 발표도 나왔다. 산업연은 트럼프의 관세 시나리오에 따라 대미 수출이 9.3%에서 최대 13.1%까지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경우 우리 경제의 명목 부가가치도 0.34%(7조9000억원)~0.46%(10조6000억원) 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연은 "기업의 생산기지 이전 등 보편관세 부과의 투자 유출 효과를 고려하는 경우 부가가치 감소 효과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