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26일 '기업 밸류업' 1차 세부내용 발표공시 우수기업 세제지원 등 과감한 인센티브 제공'자사주 소각 의무화' 구체적 방안은 미비 지적도추후 관련 기업 의견 수렴 예정, 5월 중 2차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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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투자자들의 투심을 끌어올린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세부 내용이 공개됐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금융당국의 야심작으로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중장기 증시 부양책으로 주목을 받았다.다만 세부내용에 기업들의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빠지면서 '2% 부족한'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는 증시 부양책이 이제 막 첫발을 뗀 만큼 추후 정책 보완을 통해 기업들의 가치를 끌어올릴 안정적인 정책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복안이다.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밸류업 프로그램은 기업지배구조 보고서에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써넣도록 해 공시 우수법인 선정 시 가점을 부여하는 게 골자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유관기관은 상장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은 궁극적인 이유는 국내 주식시장이 저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상장사의 가치를 평가하는 주요 척도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5, 주가순이익비율(PER)은 19.76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상장사의 평균 PBR은 1.04, PER은 14.16이다.이는 지난 10년 간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 평균(PBR 2.50, PER 19.69)과 비교해 낮은 것은 물론 대만·중국·인도 등 신흥국 평균(PBR 1.58, PER 14.32) 등과 비교해도 저조한 수치다. 금융위는 상장사들이 저평가 받고 있는 원인으로 자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꼽았다.실제 지난 10년간 한국 주식시장의 자기자본이익률(ROE)는 8%로 이 역시 미국·일본·영국 등 선진국 평균(11.6)보다 낮았다. 이 기간 평균 배당성향(당기순이익 대비 현금배당총액 비율) 역시 한국은 26%인데 반해 주요 선진국은 49.5%에 달했다. 선진국은 기업 순이익의 절반을 주주들에게 돌려주는데 비해 국내는 4분의 1에 그친 셈이다.금융위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양적성장에 걸맞은 평가를 받으려면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업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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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 정부는 국내 상장사들이 가지고 있는 자본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려면 상장기업 스스로 현황을 진단하고 가치제고를 위한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봤다.
우선 코스피 상장사 809개사와 코스닥 상장사 1598개사들이 주체적으로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번 정책에 따르면 상장사는 '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소통' 4단계를 통해 각 기업에 적합한 계획을 만들어 이를 투자자에게 공개하고 계획을 이행해야 한다.
가령 상장사는 현황진단을 통해 자본비용 및 자본수익성, 지배구조 등이 적절한지를 다각적으로 파악하고 자본효율성 개선을 위해 중장기(3년 이상) 목표를 설정한다. 이후 목표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경영전략뿐 아니라 추진일정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기업가치 제고 노력에 대해 매년 1회 상장사 홈페이지 및 거래소를 통해 자율적으로 공시하도록 했다. 다만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하고 있는 주요 코스피 상장사들은 기존 공시에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담아 공시할 수 있다.
상장사들이 스스로 기업가치 제고 노력에 힘쓸 수 있게 인센티브 정책도 강화했다. 정부는 상장사들의 기업가치 제고노력을 종합 평가해 매년 5월 '기업 밸류업 표창'을 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는 모범납세자 선정 및 R&D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등 세정 지원 내용을 토대로 한다. 아울러 코리아 밸류업 지수 ETF를 개발해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들이 벤치마크 지표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자산운용사 및 기관투자자, 전문가 등의 의견수렴을 거쳐 올 하반기 중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하고 ETF를 출시할 예정이다. 기업가치 제고노력을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판단에 활용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코드에도 반영한다.
일각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가 빠진 것을 두고 사실상 맹탕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증권사 등 국내 기업의 높은 자사주 보유 비중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기업들의 주주환원 정책이 어느정도 자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데다 정부의 공시 강화 정책도 단계적으로 시행돼 왔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정부의 정책이 기업에 강력한 증시 부양의 시그널로 작용할지는 의문이라는 얘기다.
앞서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상장법인의 자사주 제도 개선방안에서도 '인적 분할 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 금지'만이 포함되면서 자사주 소각 내용은 빠져 기대감을 일축시킨 바 있다. 지난해 금융위 정책 자문기구인 금융발전심의회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제안했지만 재계 반발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기업 밸류업은 어떤 한두 가지 조치로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기업‧투자자‧정부가 함께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과제인 만큼 국민 여러분도 긴 호흡으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지켜봐 주시고 성원해 주시길 당부 드린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