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사업 재편 불공정 논란 확산주주 분통에도 증권사는 "분할 합병, 좋다" 매수 보고서증권사 당국 관행 개선 요구에도 '매수' 리포트 일색 지속투자자 신뢰 잃어가는 리서치센터
-
두산그룹의 사업 재편에 대한 불공정 논란으로 금융당국과 정치권까지 나서서 제동을 걸고 있지만 증권사들은 장밋빛 일색인 리포트로 주주들을 두 번 울리고 있습니다.지난 11일 두산그룹이 지배구조상 중간지주 격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의 주식이 포함된 투자사업 부문을 인적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 100% 자회사로 편입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발표했는데요.회사 측은 사업 부문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논란은 증폭되고 있습니다.주주들의 반발은 거셉니다. 두산밥캣 주주 입장에서는 저평가된 회사 주식을 고평가된 회사 주식으로 대신 받아들어야 하고, 두산에너빌리티 주주 입장에선 알짜 자회사를 두산로보틱스에게 넘겨줘야 하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해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연 매출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영업이익이 1조3000억원 넘는 상장사인 두산밥캣의 과반수인 54% 일반주주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는 것이냐"며 "매출 규모가 두산밥캣의 183분의 1인 530억원에 불과하고 무려 192억원의 영업손실을 낸 두산로보틱스와 같은 기업가치로 주식을 바꿔야 하는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꼬집었습니다.금융당국과 정치권까지 나서서 제동을 걸었습니다.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장법인에 공정한 합병가액 산정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른바 '두산밥캣 방지법'을 대표발의했고, 금융감독원은 지난 24일 두산로보틱스에 합병 및 주식의 포괄적 교환·이전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다시 제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주주들의 거센 반발에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증권사에선 이번 분할 합병이 주주들에게 이득이 된다는 용감한(?) 리포트를 냈는데요.메리츠증권이 발행한 '분할합병 오해 마세요. 좋은 겁니다'라는 두산에너빌리티 보고서는 종목토론방에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에너빌리티 주주에게는 떼어주는 밥캣보다 받는 로보틱스 주가 가치가 더 크기 때문에 유리한 거래라는 게 골자죠.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지난 11일엔 시장의 오해 탓에 두산에너빌리티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인 2만890원까지 하락했지만 감자효과와 두산로보틱스 주식 교부가 이뤄지는 11월25일에는 자산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며 "지금이 매수 기회"라고 주장했습니다.시장에선 논란이 증폭되는 상황에서도 두산이 사업구조 재편을 발표한 지난 11일부터 26일까지 이들 3개사에 대한 매도 의견 제시 리포트는 0건이었습니다.매수 의견이 대부분이었는데요. 두산에너빌리티에 대한 매수 의견은 총 4건, 두산밥캣에는 매수 2건, '단기 매수' 1건, '보유' 의견 2건 등이 제시됐습니다.증권사들의 리포트가 시장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단 평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요. 최근 두산 관련 종목들을 포함한 주식 종토방에선 증권사 리서치에서 발행하는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조롱하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건 '매수' 일색 보고서를 발표해온 리서치센터의 자업자득입니다.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들어 6월 20일까지 발행된 기업 보고서 8662건 가운데 투자의견을 '매도'로 제시한 보고서는 단 2건(0.02%)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상 매도 의견에 가까운 '비중 축소'는 4건(0.05%)이었습니다. 반면 '매수' 의견은 8012건(92.5%)으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했죠. '보유'는 636건(7.34%), '강력매수'는 8건(0.09%)으로 집계됐습니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매수 일변도의 증권사 리서치 관행을 개선하도록 촉구했지만 뚜렷한 변화는 보이지 않습니다.
비판적인 리포트가 증권사의 이익을 훼손하는 것을 조심스러워 하기 때문일 텐데요. 애널리스트가 IB(기업금융) 영업을 서포트할 수밖에 없는 비지니스 구조 속에 벌어지는 웃지 못할 현실입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증권사의 기업분석 리포트를 조롱하며 유튜브나 주식투자카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찾아 투자 정보를 취득하는 것도 리서치센터가 뼈아프게 느껴야 할 대목이 아닐까요?
정부가 추진 중인 기업 '밸류업(가치제고)' 프로그램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는 두산그룹의 사업구조 개편. 우리 증시의 밸류업이 필요한 것처럼 애널리스트의 리포트도 밸류업되길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