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제 이후 서울교육감 모두 유죄 판결 … 교육감 직선제 논란'공천 불가' 자금난 유발하는 선거과정 … 비리 연루될 가능성↑높은 진입장벽 … 교육 전문가가 부담하기 어려운 선거 자금
  • ▲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에서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4년마다 치러지는 전국 시·도교육감 선거가 '깜깜이 선거' '로또 선거' 비판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조희연 전 서울시교육감의 당선 무효형 판결 확정을 계기로 정치 놀이터로 전락한 교육감 선거의 '직선제' 폐지론이 힘을 받고 있다.

    2일 교육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직권남용과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희연 교육감에게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하면서 2008년 교육감 직선제로 선출된 모든 서울교육감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과거 공정택 전 교육감, 곽노현 전 교육감, 문용린 전 교육감 모두 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 또는 선고유예로 임기 도중 하차했다. 선거법 위반에 연루된 사례는 지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서거석(전북)·하윤수(부산)·임종식(경북)·신경호(강원) 교육감도 선거 관련 혐의로 재판을 진행 중이다.

    조희연 전 교육감은 2018년 전교조 요구에 따라 전교조 출신 해직 교사 등 5명을 채용하기로 내정하고 특별채용 절차를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이중에 1명은 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다가 조 교육감과 단일화한 뒤 선거운동을 도운 인물이다.

    조 전 교육감까지 비리 연루로 직위를 잃자 '교육감 직선제' 개선 목소리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사법 리스크로 낙마할 때마다 직선제에 대한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는데 이번 역시 '교육감 직선제' 자체의 근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선거자금 마련하려다 불법 연루… '정치중립' 선거가 역설적으로 정치판 돼

    교육감은 연간 100조원의 예산(지방교육재정교부금 포함)으로 2만여개 학교의 운영과 500만명이 넘는 학생의 교육, 70만명의 교사 및 교직원 인사를 책임지는 자리다. 서울시교육감만 해도 1280개 공립 학교 교사 4만3000명과 공무원 7000여명의 인사권을 갖고, 한 해 11조원 넘는 예산을 집행한다. 

    현행법상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는 정당 공천 없이 출마해야 한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때문에 교육감 후보자는 등록신청 개시일로부터 과거 1년 동안 비정당인이어야 한다. 

    조직 없이 개인 선거를 치러야 해 후보자들은 극심한 자금난을 필연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선거 자금은 득표율 15%가 넘으면 보전받지만, 선거 전에는 자금을 직접 마련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각종 비리에 연루될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교육 전문가 출신은 거액의 선거비용 마련에 부담을 느끼는 있는 경우가 많다 보니 교육 전문가보다 유명 정치인이나 재력가가 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현역 교육감 중 정치인 출신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유다.

    2022년 6월 당선된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16~18대 국회의원을,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 바 있다. 강은희 대구시교육감도 19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박근혜 정부에서 5대 여성가족부장관직을 수행했다.

    정치인 출신이 아니더라도 선거 비용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특정 단체의 도움을 받는다면 당선 이후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어렵다. 이번에 직위가 상실된 조 전 교육감이 유죄 판결을 받은 이유도 자신을 지지한 전교조에 대한 '보은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어려운 환경이 교육감 직선제에 조성되면서, 정치적 중립을 강조한 교육감 선거가 역설적으로 선명한 정치 대결 구도를 가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인지도만 높으면 되는 '로또 투표'까지… 러닝메이트제 등 대안 논의 시급

    교육감 직선제는 지역 주민이 직접 교육감을 선발해 교육 자치를 실현하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교육감 선거는 도입 당시부터 유권자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007년 2월 부산에서 치러진 첫 교육감 직선제의 투표율은 15%대에 그쳤다.

    17대 대선이 치러진 2007년 12월, 울산·충북·경남·제주에서도 잇따라 교육감 직선제가 실시됐다. 그러나 당시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와 같은 '기호 2번'이 모두 당선되는 기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유권자의 낮은 관심도로 인해 후보자의 구체적인 공약은 파악하지 않고 당일 손이 가는 대로 투표를 하는 이른바 '로또 선거'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교육감 선거에 관심 없는 유권자들은 이름을 많이 들어 본 후보에게 표를 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다선 후보자가 처음 출마하는 후보보다 유리한 점을 차지하게 된다.

    서울에서 자영업을 하는 조모 씨는 "교육 정책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후보자의 과거 정치 성향을 보고 투표를 한다"며 "교육업에 종사하지 않으면 교육감 후보자의 공약 내용에 관심이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감 후보들은 정책 대결보다는 상호 비방과 인신공격에 열을 올리면서 인지도 끌어올리기에 주력했다.

    2022년 6월 치러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은 정책 대결이 아닌 검찰 고소전이나 단식 투쟁, 삭발 출정식 등으로 수많은 뉴스 기사를 장식한 바 있다.

    교육감 선거에서 승패의 핵심키는 '후보 단일화'라는 웃지 못할 조언도 전해진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감 보궐선거는 관심도 낮고 투표율도 낮아서 결국 조직력 싸움"이라며 "진보, 보수 각각 후보 단일화가 어떻게 되는지가 관건이다"고 말했다.

    지난 2022년 6월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세종·충남은 진보 성향 교육감이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보수 성향 2·3위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당선자보다 많아지는데, 이는 단일화가 됐다면 당선자가 바뀌었을 수 있었던 셈이다.

    이에 정부는 현행 교육감 직선제를 폐지하고, 시·도지사 선거의 후보자가 교육정책을 공유할 수 있는 교육감 후보자를 지명해 선거에 공동으로 출마하는 '러닝메이트제'를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 밖에도 정당 공천제, 시도지사 임명제, 시도 의회 선출제 등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 지난해 주요업무 추진계획에 러닝메이트법을 4대 입법과제로 포함했지만 야당 반대로 1년 반 넘게 진전이 없는 상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감 직선제가 최선의 대안이 아니다. 제도 개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라며 "교사·학부모·교직원·사립학교 관계자 등 교육 관계자들만 참여하는 '제한적 주민직선제' 등 대안을 찾아봐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