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효용성' 논란… 현금복지성 '포퓰리즘' 비판대규모 사업체서 주로 사용… 영세업체 '낙수 효과' 적어지자체간 경쟁·부정유통 문제… 대규모 세금 투입 불가피
  • ▲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한 시민이 온누리상품권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서 한 시민이 온누리상품권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골목상권을 살리고 내수 진작을 목적으로 발행된 지역사랑상품권이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쓰이는 게 곳곳에서 포착되면서 '효용성' 논란이 다시금 불거지고 있다. 대규모 세금 투입이 이뤄지는데도 기존 소비 대체에 그친다는 비판까지 나오며 사실상 '지역화폐 무용론'까지 번지는 상황이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지역사랑상품권에 대한 재정 지원을 국가 책무로 명시한 '지역화폐법'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역화폐가 지역경제와 내수 진작의 마중물이 될 거라고 주장하지만, 당정은 실질적 효과가 미미한 현금복지성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견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지역화폐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90곳(78.2%)에서 발행되며 사실상 전국 단위의 경제 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전국으로 확산된 지역화폐는 이듬해 23조6000억원이 판매됐고 2022년에는 27조2000억원이 팔리며 정점을 찍었다.

    문제는 상품권 사용이 대규모 사업체에 쏠려있고 영세업체에는 '낙수 효과'가 고르게 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매출 50억원 이하의 사업체에서는 지역사랑상품권의 총공급액 비율이 1%포인트(p) 증가할 때 업종별 매출액이 4.12% 증가했으나, 매출 10억원 이하 사업체에서 업종별 매출액은 2.95% 증가에 머물렀다.

    지역화폐 본연의 역할인 영세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취지와 다른 정책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이마저도 상품권 발행 혜택을 보는 곳이 일부에 치우치면서 실효성 문제는 더욱 커졌다. 슈퍼마켓 등 종합소매업(26.4%)과 식당·제과점·카페 등 음식점업(24.8%)에서 절반을 웃도는 상품권이 사용됐고 미용실, 세탁소 등 개인 서비스업, 서점·문방구 등에서 쓴 비율은 각각 한 자릿수에 그쳤다.

    모든 지자체가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할 수 있다 보니 상품권 발행이 자칫 경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로 인접 지자체가 상품권을 발행하면 다른 지자체들도 소비 유출을 막기 위해 경쟁적으로 상품권을 발행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렇다 보니 자금이 부족한 지자체는 경쟁에서 밀리고, 예산이 풍족한 지자체는 더 유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지속된다. 2020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중앙정부가 일률적으로 발행을 보조하지만 판매대행 수수료 등 제반 비용은 지자체에서 별도 부담하므로, 재정 여건이 양호한 지자체에서 대규모 발행이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2019년 대전 대덕구는 지역사랑상품권인 '대덕이로움'을 발행했고, 이듬해에는 대전시가 '온통대전'이라는 지역화폐를 신설했다. 2020년 4월부터는 대덕이로움이 온통대전과 병합됐으나, 행정안전부가 광역 자치구 지역화폐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중단하면서 '대덕이로움'은 폐지됐다.

    반면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시 강남구는 지역화폐 발행액이 750억원(1~9월 기준)에 달해 주민들이 얻는 혜택이 타 지자체에 비해 높은 편이다. 강남구의 발행액은 지역화폐가 가장 적게 발행된 영등포구(120억원)의 6배가 넘는다.
  • ▲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지난해 6월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을 겨냥해 집중단속을 시작한 지난해 6월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있다. ⓒ연합뉴스
    ◇서울 상품권 20%는 사교육비 투입… 재정건전성·부정유통 문제점

    고소득 지역에서 지역화폐가 학원비 등 사교육비로 활용되며 기존 소비 대체에 그치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나경원 의원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9월까지 발행된 서울사랑상품권 중 19.6%(7285억원)가 입시학원, 외국어학원, 예술 교육 등 사교육에 사용됐다. 반면 올해 1~6월 기준 연 매출 3억원 이하 영세 업체에서 사용된 금액은 전체 결제액(29%)은 30%가 채 되지 않았다. 

    지류로 유통하는 경우가 많은 상품권 특성상 부정 유통에 취약하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행안부는 지난 5월 전국 190개 지자체에 대해 '2024년 상반기 지역사랑상품권 부정 유통 일제단속'을 실시해 141건의 부정 유통을 적발했는데 소위 '상품권깡'으로 불리는 부정 수취·불법 환전이 56건으로 전체의 39.7%를 차지했다. 상품권으로 선결제하거나 외상값을 일괄 결제하는 사례도 포착됐다.

    무엇보다 지역화폐 발행이 정부 재정건전성 악화의 주범 중 하나로 꼽히는데도 야당은 지역화폐에 대한 재정 지원을 국가 책무로 명시한 '지역화폐법'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집권 시기인 2021년 지역화폐가 23조6000억원 판매됐을 당시에 투입된 국비는 1조2522억원에 달했다. 건전재정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지난해 지역화폐 국비 지원은 3522억원, 올해는 3000억원에 그쳤지만, '지역화폐법'이 추진된다면 정부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급증하게 된다. 여기에 상품권 발행 비용까지 반영한다면 실질적인 정부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지역화폐가 소비를 촉진해 내수 경기를 살리는 마중물이 될 거라는 입장을 굳히고 있다. 이와 관련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자체가 할인금을 부담해 준다면 지역화폐에 대한 수요는 당연히 있다"면서도 "사용처가 대부분 주유소, 학원, 병원 등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소용이 없는데도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포퓰리즘 정책은 정치·경제·사회 시스템 전반에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경계해야 하고 재정을 고민하면서 정책을 내놔야 한다"며 "근본적인 정책 고민 없이 현금 나눠주기식 손쉬운 정책을 내놓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