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 규제, 1년 내내 광고만… “민심 돌아설라”"규제 한다, 안한다" 반복…일관성 상실한 대출정책에 외압설까지"오락가락 정부 정책에 국민혼란 커져… 일관성 가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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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피벗(통화정책 전환)을 단행했음에도 전 금융권이 일제히 대출 금리를 높이고 있다. 금융소비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대출요건을 알아보느라 어지러울 지경이다. 대출시장이 이 같은 혼돈에 빠진 것은 가계대출 관리를 외치면서 정작 직접 규제에 나서기를 주저하는 금융당국의 탓이 크다. 최근 전세대출과 정책대출에 대한 규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지나치게 외풍을 의식하고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지 못하면서 오락가락 행태를 보였다. 정책 번복이 거듭되다 보니 정책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에 떨어진 모양새다. 일부 수요자들 사이에선 어차피 내년이 되면 다시 대출 여건이 좋아질 거란 기대까지 나온다. 금융당국의 대출정책 혼란상과 원인, 파장을 짚어본다. [편집자주]금융당국이 전세자금대출 관련 규제를 검토하고 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주담대)를 중심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한 풀 꺾인 만큼 고삐를 더 조이겠다는 의미다.하지만 그간 당국의 전세대출 규제는 말로만 그친 사례가 많아 또 ‘군기 잡기용’에 그칠 거란 의구심이 나온다.그 사이 전세계약 종료 시점을 앞둔 세입자들은 앞으로 대출한도나 가능여부가 어떻게 달라질지 예측하기 어려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전세대출 DSR 도입 1년째 광고만… “국민 혼란 초래”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전세대출에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을 적용하는 방안과 함께 전세대출 실행 시 임대인 상환능력까지 평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금융위 관계자는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하고 있지만 전세대출 DSR 도입 시기를 계속 살펴보고 있다”면서 “연내에는 관련 내용을 밝힐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사실 금융당국이 전세대출 DSR 도입을 예고한 것은 최근의 일이 아니다.앞서 금융위는 지난 1월 올해 발표한 업무계획에서 DSR 규제 적용 범위를 전세대출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그러나 서민 주거 안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여론이 조성되자 계획을 중단했다. 특히 당시에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있었던 터라 대통령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하지만 하반기 들어 가계대출이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금융위는 연내 전세대출 DSR 적용 계획이 유효하다며 가계부채 증가 추세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내고 있다. 1년 내내 기한도 없이 전세대출 규제 광고만 하고 있는 셈이다.전세대출은 대표적인 서민 자금이면서 갭투자(전세끼고 주택구입) 등 투기수요로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이 때문에 전세대출을 규제할 때는 늘 ‘서민주거 안정’과 ‘투기수요 억제’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충돌한다.문제는 금융당국이 전세대출과 관련한 정책 딜레마 앞에서 여론과 정치권 등 외풍에 부딪혀 주저하는 인상을 남기면서 정책목표의 명확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세대출 잔액은 총 119조490억원으로 전분기 말보다 8263억원 늘었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4월까지만 해도 감소세를 기록했지만 5월 638억원 늘며 증가로 돌아섰고 지난 8월 증가폭이 4000억원대로 불어났다.전세자금 대출 과정에서 집주인의 보증금 반환 능력을 평가하는 방안도 최근 검토되고 있지만 ‘가계대출 관리’보다는 ‘임차인 보호’에 초점이 맞춰졌다.금융위 관계자는 “집주인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수준은 아니고 과거 보증금 반환을 안해서 문제를 일으켰던 임대인을 공통으로 관리하자는 수준”이라면서 “보험회사들이 보험금 지급하고 나서 사고보험금 지급내역을 회사 간 공유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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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작스런 규제 연기로 ‘외압’ 논란… 가계빚 폭증하자 은행 겁박연초 전세대출 DSR 도입을 미룬 데 이어 지난 6월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연기 결정은 금융정책에 외압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증폭시켰다.하반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앞두고 가계부채 관리의 고삐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규제를 느슨하게 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구심에서다.더욱이 가계대출은 올해 4월부터 증가세로 전환해 4조~5조원씩 불어나는 중이었다.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서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스트레스 DSR 2단계가 9월부터 시행되기로 했는데 급작스럽게 연기됐다”면서 “금융위가 연기 판단을 내리기 직전 관계기관 회의가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기재부가 재정으로 성장을 주도하기 어려우니까 가계부채를 풀어서 경기 부양하자는 압박을 준게 아니냐”고 질의했다.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와 관련해 “누가 시켜서 한 것은 아니고 당국이 결정한 것이 맞고 그에 대한 책임도 금융위와 금감원에 있다”면서 “가계부채 디레버리징(부채정리)이 중요한 정책 목표인 것은 맞으나 다양한 거시경제 운영을 같이 하다 보니 기재부 등과 논의를 통해 연기를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결과적으로 예정된 규제 연기는 시장에서 규제완화 시그널로 읽히면서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선 것으로 받아들여졌다.애초 규제 시행 예정일이었던 7월부터 규제가 시행된 9월 전까지 2개월간 가계대출은 17조원이나 폭증했다.당국은 가계대출이 급증세를 보이자 규제를 다시 앞당기는 등 직접 정책을 수정‧보완하기보다는 은행들을 겁박해 가계대출을 옥죄기 시작했다.지난 8월 금감원이 가계대출 증가액이 경영계획을 초과한 은행에 대해 내년도 관리계획을 수립할 때 페널티를 부과하겠다고 전격 발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이후 각 은행별로 진행된 금리 인상과 대출 제한조치에 대출시장은 말 그대로 대혼돈에 빠져들었다.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 정책은 제일 중요한 것이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라면서 “그래야만 국민들이 미리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국민들이 큰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