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경제 곳곳에 경고음… 성장률 줄줄이 하향 조정부실채권 증가·대기업 구조조정 성장동력 빨간불경제 구조 개혁 하세월·리더십 부재에 신음F4 열지만 디테일 부족 지적… "미리 안전장치 마련해야"
  • ▲ 부산항 ⓒ연합
    ▲ 부산항 ⓒ연합
    트럼프 발(發) 경제 불확실성이 다가오기 전부터 우리 경제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고물가·고금리 여파로 민간 소비와 투자가 활기를 띠지 못하고 내수 부진이 지속되고 부실 채권 증가 등 유동성 위기로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내년 경제 성장률 1%대 전망에다 경제 전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한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은 기존 전망보다 0.3%포인트(p) 낮춰 2.2%로, 내년 성장률은 기존보다 0.2%p 하향 조정된 2%로 발표했다. 내수 회복세가 더디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신정부 출범과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 불확실한 대외 환경이 향후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의 연례 협의를 마친 IMF 한국 미션단은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높고 하방 리스크가 더 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지난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올해 경제 성장률을 2.5%에서 2.2%로 하향 조정했으며 내년 성장률은 0.1%p 내려 2.0%로 제시했다. 수출 회복세와 1분기 성장에 힘입어 장밋빛 전망이 대세였던 상반기와는 대조적이다.

    문제는 트럼프 신정부의 정책 방향에 따라 경제 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지지하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 1%대로 떨어질 것이란 경고도 나왔다.

    1954년부터 집계를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2%대 이하를 기록한 경우는 건국 초기인 1956년(0.6%), 1980년 2차 석유파동(-1.6%), 1998년 IMF 외환위기(-5.1%),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19(-0.7%), 2023년(1.4%) 등 총 6차례다.

    트럼스 신정부에 따른 전세계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는 동시에 유동성 위기로 우리 경제에 금융위기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2년 만에 1400원(종가)을 넘어선 가운데 시장에서는 1400원이 곧 1달러가 되는 뉴노멀(새로운 기준) 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달 들어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는 각각 2.9%, 8.1% 하락했다. 

    우리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된 금융그룹들의 부실채권에 대한 대응 여력 지표가 눈에 띄게 나빠지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3분기 말 기준 5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의 고정이하여신(NPL) 커버리지비율은 평균 148.9%로 전년 동기 대비 34.2%p 낮아졌다.

    NPL 커버리지비율은 금융사가 보유한 부실채권을 가리키는 고정이하여신 잔액과 비교해 충당금을 얼마나 적립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향후 잠재적인 부실에 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축소됐다는 뜻이다. 문제는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 여파로 저축은행의 영업 환경도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경제를 이끌고 있는 국내 주요 기업들도 위기에 빠지면서 성장동력도 꺼져가고 있다. 경기 둔화와 고금리 장기화로 대기업들도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SK는 알짜 자회사인 SK스페셜티의 연내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며, CJ제일제당도 바이오 사업 부문 매각을 추진 중이다. 중국발 과잉 공급으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 화학, 철강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포스코는 지난 19일 45년 넘게 가동해 온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청산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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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재정부 ⓒ뉴시스
    전문가들은 총체적적인 경제 난국 속 더 이상 구조 개혁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내년에는 트럼프 신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의 통상 압력이 커지면서 성장동력 약화가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IMF도 국내외 환경 변화에 회복력 있게 대응하기 위해 "강력한 경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통상 환경의 악화가 국내 경제 리스크 요인들과 결합하지 않도록 한국 경제 자체의 리스크 요인들에 대한 안정화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도 지속적인 성장 잠재력 확충, 경제 구조 업그레이드 등 혁신 성장을 통해 경제의 내구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재계 안팎에서는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최고조의 위기에 놓인 시점에서 과감하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부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재 정부 내부에는 큰 수술을 할 수 있는 적임자, 일명 칼잡이가 없다는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헌재 전 부총리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같은 경험 많은 정통 관료들이 사태 해결을 맡았다. 이들은 구조조정 칼잡이라는 별칭을 얻으며 컨트롤타워 역할을 통해 위기를 극복했고 우리 경제가 도약할 준비를 할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부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하는 F4(파이낸스 4·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시장 상황에 대한 대응책도 논의하고 있지만, 전문성과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례로 우리 경제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큰 고비를 넘겼다고 평가하고 있다. 지난 12일 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체감 경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기본적으로 수출 관련 경제 지표와 실제 체감과의 괴리에 있다"며 "위기 상황이나 불안한 상황은 지나갔다"고 진단했다. 이는 위기 관리 능력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더구나 트럼프 신정부 출범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통상자원부의 무역통상정책 분야 수장이 전문성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안덕근 장관과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각각 서울대와 인하대 교수 출신이다.

    미국만 보더라도 내년 1월 출범하는 트럼프 신정부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임명하고 대규모 숙청을 예고했다. 관료주의를 해체하고 과도한 규제와 낭비성 지출을 줄이고 연방 기관들을 구조조정할 방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서울권 소재 대학의 한 교수는 "현재 경제사령탑의 리더십 부재가 아쉬운 상황"이라며 "현 상황에 대해 자신 있게 처방전을 제시할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이어 "과거보다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불확실성이 커졌다. 사건이 터진 후 대책을 마련하는 것보다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