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IRA·칩스법 폐지·축소 가능성에 기업 '비상'중국산 저가 공세에 철강 업계 셧다운 등 피해 이어져 정부 경제팀, 낙관 전망에 상황인식·대응 안일 비판 잇따라 국회, 뒷받침해줄 입법 지지부진… 산업 경쟁력 약화 우려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뉴시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반도체, 배터리 등 제조업계가 비상이다. 관세 장벽이 강화되고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 과학법(칩스법) 등이 폐지 또는 축소될 수 있어서다. 트럼프 리스크의 연쇄 충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산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그럼에도 고전하는 경제팀과 여야 정쟁으로 인해 방파제가 되어줄 국내 사업 지원 정책은 더딘 형국이다. 국내 산업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는 이유다. 

    ◇"관세 부과 시 韓 산업에 부정적"

    외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 IRA에 근거한 대당 최대 7500달러 규모의 전기차 보조금 폐지를 계획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동안 IRA에 대해 '그린 뉴 스캠(신종 녹색 사기)'라고 비판하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전기차 의무화(EV mandate)'를 끝내겠다고 주장해왔다. 

    전기차 보조금 폐지가 현실화하면 현재도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기차와 배터리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내 전기차 보급 확산이 억제돼 캐즘이 더 장기화돼 기업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현대차 등 완성차 기업들과 배터리 업체들은 IRA 보조금을 받기 위해 대미 투자를 늘려왔는데 전략에 차질을 빚는 셈이다. 

    정부는 "IRA 보조금 관련 폐지 여부는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업계에선 바이든 행정부 대비 지원 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은 명백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배터리 업계는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의 축소 또는 폐지 가능성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배터리 업계는 영업이익 비중에서 AMPC 비중이 높아 타격이 불가피해서다. 

    반도체 업계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당선인이 칩스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며 칩스법 폐기 가능성을 언급해 미국 정부의 반도체 정책에 불확실성이 켜졌다. 미국 정부가 TSMC에 칩스법 지원금 66억달러 지급을 확정한 것과 달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예비 거래 각서(PMT)을 체결하고 계약 세부 사항을 조율 중인 상태다. 칩스법 상 법적 구속력이 있는 본계약이 이뤄져야 실제 보조금 지급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미국발 변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트럼프 2기' 출범에 따라 IRA와 칩스법이 폐지될 경우 한국 기업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란 국제신용평가사의 전망도 나왔다. 무디스의 션 황 연구원은 "IRA이나 칩스법 등의 정책 변화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배터리, 자동차, 반도체 산업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전망"이라며 "관세 부과 시 미국형 수출 물량이 많은 한국 산업에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발 공급과잉도 문제다. 대표적인 피해업종이 철강이다. 국내 철강사들이 수익성 방어를 위해 줄줄이 공장 셧다운에 들어가고 있다. 포스코가 중국발 공급과잉으로 생산량 급감에 직면하면서 최근 포항제철소 1선재공장을 폐쇄했다. 지난 7월 포항 1제강공장에 이은 두번째 셧다운이다. 현대제철도 최근 포항 2공장의 가동을 멈췄다. 앞서 현대제철은 지난 7월 말 중국 업체들의 저가 후판 수출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반덤핑 제소를 했다. 국산 대비 15% 저렴한 중국산 후판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철강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어서다. 

    중국발 공급과잉은 반도체로도 확산되고 있다. 중국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어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전체 D램 시장에서 중국 메모리 업체의 점유율은 올해 3분기 6% 수준이지만 내년 3분기에는 10.1%를 기록해 10%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 전문가 "경제팀 방향성 안보인다"

    산업계가 트럼프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돌파구를 찾고 있지만 정작 정부의 상황인식과 대응은 안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어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와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각각 2.2%, 2.0%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맞물려 내년에 하방 위험이 더 큰 것으로 평가하면서, 성장률이 1%대로 추락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금융연구원도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로 낮췄고, 내년 성장률도 2.0%로 전망했다.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2%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 내년 성장률 전망치의 경우 HSBC 등 5개 IB는 2%를 밑도는 1%대 성장률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경제가 둔화하고 있는 상황 속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 수출도 감소할 수 있어 자칫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수 있다"며 "한국과 같은 개방형 경제 구조에서는 경착륙이 되면 위기가 발생하는 만큼 연착륙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 역시 금리를 높이는 시기에는 재정을 풀듯, 우리도 재정 확대나 대출 규제 완화 등 정책을 좀 더 적극적이고 기술적으로 쓸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부연했다. 

    내년 1% 성장 위기감이 번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낙관적이다. 경제 사령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기 상황이나 불안한 상황은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이같은 정부 경제팀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경제팀은 성장률, 물가, 고용 등 초점을 어디에 둔 것인지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경제팀이 새롭게 꾸려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경제 철학을 갖고 산업에 익숙해져 있는 인사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욕을 먹더라도 뚝심 있게 경제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인사로 경제팀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도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한 대비가 부족했다는 평가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 충분히 예견돼 왔음에도 업계 대응을 위한 대외 행보는 당선 이후에서야 이뤄져서다. 

    실제 산업부는 트럼프 당선 직후 안덕근 장관 주재로 산업 업종별 릴레이 간담회를 열어 업계에 미칠 영향을 점검하고 각 업종별 대응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향후 민관 대미협력 전담반(TF)을 꾸려 본격 가동하고 글로벌 통상전략회의 등을 지속 점검을 통해 대비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이를 두고도 정부 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선제 대응이 아닌 뒷북 대응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전략사업을 뒷받침해 줄 정책에 대해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며 "미국 경제안보 정책이 새 패러다임이 되고 있는 만큼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 ▲ 제418회 국회(정기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0차 전체회의 ⓒ뉴시스
    ▲ 제418회 국회(정기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제10차 전체회의 ⓒ뉴시스
    ◇정쟁에 뒷전된 입법… 핵심전략산업 초격차 가로막아 

    국회 역시 정쟁에 매몰돼 산업을 뒷받침해 줄 입법은 뒷전이다. 대표적인 것이 K-칩스법으로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이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관련 설비투자를 하는 기업에 최대 25%(대·중견기업 15%)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것으로 올해 말 일몰 예정이다. K-칩스법이 일몰되면 내년부터 반도체 대기업의 시설 투자 공제율은 15%에서 8%로 축소된다. 직접 보조금도 없는 상황에서 세제 해택마저 사라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주요국 대비 소극적이라고 평가 받는 K-칩스법은 여야가 합의 처리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정쟁에 논의가 뒤로 밀리면서 국회가 핵심전략산업인 반도체의 초격차를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당정의 입장차도 자리한다. 정치권이 일몰 기한 연장과 세액공제 비율 확대 등을 담은 법안을 발의한 가운데 정부는 세액공제율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일몰 기한만 3년 연장하겠다는 입장이어서다. 

    또 국민의힘이 지난 11일 당론으로 발의한 반도체 특별법도 더불어민주당이 난색을 보이면서 법안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 반도체 특별법은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직접 보조금 지원과 주52시간제 적용 예외 등을 골자로 한다. '주 52시간 적용 예외(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조항 등을 두고 여야가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주요 기업에 직접적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계획하며 첨단기술 격차 벌리기에 사활을 거는 상황과 대비된다. 대한상공회의소가 GTA가 발표한 세계 각국의 제조업 보조금을 분석한 결과, 전 세계 보조금은 2015년 584억달러에서 2023년 5502억달러, 지난 9월 기준 5060억달러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정부가 기업에 직접 자금을 지급하는 재정보조금은 2020년~2024년 9월 재정보조금은4995억 달러로 코로나19 이전보다 약 6배 증가했다. 이를 제외한 정부대출, 무역금융 등 나머지 보조금 유형은 코로나19 이후 비중이 감소했다. 

    이와 관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세계적인 보조금 흐름은 코로나로 인한 경제 충격에 대응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보조금을 늘리며 시작됐다"며 "이후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공급망 및 경제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본격적으로 보조금 경쟁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업계에선 트럼프 2기 출범에 대비해 K-칩스법 등 산업 지원 입법이 속도감 있게 전개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한국도기업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해 과감한 투자에 나서게 하는 글로벌 트렌드에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최근 출범한 국회 민생협의체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 법안도 의제로 오른 만큼, 국가전략 차원에서 국익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지원정책이 도출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