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에도 일한다"… 2차 베이비부머의 달라진 은퇴관국민연금 매일 885억 적자, 2055년 완전한 기금 고갈IMF·KDI 잇단 경고… 성장률 하락에 국가 부채 급증
  • ▲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 앞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 서울 마포구 서부고용복지플러스센터 일자리정보 게시판 앞에서 한 구직자가 일자리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시스
    우리나라 인구 5분의 1 규모를 차지하는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시작되면서 계속고용·연금개혁의 문제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1964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난 이른바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약 954만명에 달하는 2차 베이비부머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집단이다. 이들의 대규모 은퇴는 노동시장, 연금 재정, 복지 시스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2차 베이비부머 세대는 학력 수준과 건강 상태가 이전 세대와 비교해 높은 편이다. 이러한 특성은 이들이 은퇴 후에도 노동시장에 남아 일하고자 하는 의지로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장래 근로 희망 비율과 은퇴 희망 연령이 다른 세대보다 높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들의 노동시장 이탈은 우리나라 경제 성장 잠재력을 감소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단일 세대 중 규모가 가장 큰 2차 베이비부머가 11년에 걸쳐 법정 은퇴 연령(60살)에 진입한다"며 "이로 인해 2024~34년 연간 경제성장률이 0.38포인트(P) 하락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 연금 자산 인출 본격화… 노동시장·연금재정 지각변동 예고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연금 재정에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25일 국민연금연구원에 따르면 2027년부터 국민연금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보다 3조2536억원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후 2041년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에는 완전히 소진될 것이라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KDI(한국개발연구원) 등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들도 연금개혁 시급성을 경고하고 있다. IMF는 한국의 국민연금 구조가 개혁되지 않을 경우 2070년에는 GDP 대비 국가 순부채 비율이 180%에 이를 수 있다고 밝혔다. KDI는 연금개혁이 1년 지체될 때마다 하루 약 1425억 원의 재정 부담이 미래 세대에 전가된다고 분석했다.

    이같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혼란과 여야 정쟁으로 인해 연금개혁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매일 국민연금 적자가 약 885억원씩 쌓이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국회의 조속한 논의를 촉구하고 있다.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는 노동시장에도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 세대는 은퇴 후에도 노동시장에 남아 생계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현대자동차 등 일부 기업에서는 정년퇴직 후 2년간 촉탁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직원이 삭감된 임금 조건에서도 은퇴 후 근무를 이어가고 있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계속고용 연령을 높이는 제도 개혁이 시급하다"며 "임금 체계의 전반적 개편과 사회적 합의 없이는 정년 연장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고 밝혔다. 성 부원장은 "평균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50대를 위해 업무 재배치와 임금 조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사례처럼 '단계적 의무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해 기업들이 고령자를 재고용하거나 정년을 연장하는 옵션을 선택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기선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년 연장은 연금 수급 개시 연령과 조화돼야 한다"며 "중소기업과 대기업에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인 연령 기준 상향도 재정 절감을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분석에 따르면 기초연금 수급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높일 경우 연간 6조8000억원의 재정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 다가온 초고령사회… 지금이 개혁의 마지막 기회

    고령층에 본격 진입한 1차·2차 베이비부머는 오랜 기간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51~70살인 베이비부머는 20년 뒤인 2045년에 71~90살이 돼도 여전히 인구의 26.3%(1282만명)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71~90살 인구가 약 590만명(11.4%)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노인 인구가 얼마나 비대해지는지 알 수 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닌 연금재정, 노동시장, 복지 시스템 등 국가적 과제로 연결된다.

    한국은행의 '2차 베이비부머의 은퇴연령 진입에 따른 경제적 영향 평가' 보고서는 "2차 베이비부머는 높은 인적 자본을 가지고 있어 효과적인 정책 대응이 이뤄진다면 은퇴 후 재취업 시 고용의 미스매치가 완화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성장잠재력 추가 하락의 정도가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지금이야말로 연금개혁과 계속고용 정책을 실행할 최적의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연금개혁은 점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며 그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전가된다"며 "정치적 논쟁을 멈추고 국민 모두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