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호, 주요 일정 취소 … 전국 시도교육감과 긴급 대응 논의"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생활하도록 조속히 방안 마련할 것"확산하는 정신질환자 포비아 … 전문가들 "우울증은 죄가 없다"
  • ▲ 지난 11일 오후 초등학생 피살사건이 발생한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초등학교 정문 옆 담장에서 시민들이 국화꽃과 과자·음료 등을 놓으며 고 김하늘(8) 양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 지난 11일 오후 초등학생 피살사건이 발생한 대전 서구 관저동의 한 초등학교 정문 옆 담장에서 시민들이 국화꽃과 과자·음료 등을 놓으며 고 김하늘(8) 양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1학년 여학생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교육부와 전국 시·도교육청이 긴급 대응에 나섰다. 가해 교사의 정신 건강 문제와 복직 절차가 도마 위에 오른 가운데 교육부는 해당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고 교사 관리 체계를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12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주요 일정을 취소하고 사건 관련 상황을 점검했다. 이 부총리는 전날 대전시교육감을 직접 만나 사건 경위를 공유했으며, 이날에는 전국 17개 시·도교육감과 긴급 협의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 부총리는 "대전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사망 사건에 대해 애도를 표하고 유가족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우리 학생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배우고 생활할 수 있도록 조속히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전교육청에 따르면 가해 교사 A씨(48)는 지난해 12월 우울증을 이유로 6개월간의 질병휴직을 신청했지만 20일 만에 복직했다. 복직 당시 A씨는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소견서를 제출했으며, 교육청은 현행 규정에 따라 이를 승인했다.

    대전교육청 관계자는 "현행법상 질병휴직 사유가 소멸되면 교원은 즉시 복직해야 하며 교육청이 이를 거부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복직한 A씨는 교내에서 동료 교사를 폭행하고, 업무용 컴퓨터를 부수는 등 이상 행동을 보였다. 이에 학교 측은 교육청에 문제를 보고하며 병가 또는 연가를 통해 분리 조치를 요청했지만 교육청의 현장 점검과 권고가 이뤄진 당일 비극이 벌어졌다.

    ◇ 교육청, 교사 질병휴직 절차 등 점검 … 교원단체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 필요"

    대전 초등생 참사 사건으로 인해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각 교육청도 발 빠르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서울시교육청은 전날 설세훈 부교육감 주재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질환교원심의위원회 운영 실태, 교사 질병휴직 절차, 복직 심사 기준 등을 점검했다.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학생의 안전에 대한 모든 위협에 대해 빈틈없는 점검을 진행할 것"이라며 "다시는 이 같은 참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거운 성찰 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도교육청도 대응에 나섰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학교는 학생들이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인데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며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교단에 설 수 없도록 임용 단계에서 검증을 강화하고 주위 평가 등을 통한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강조했다.

    교원단체들도 피해 학생에게 애도를 표하는 한편 교육 당국의 보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가해 교사는 동료 교사에게도 폭력적 행위를 하는 등 이상 징후를 보였음에도 학교에 계속 출근했다"며 "교육청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수사기관과 교육부, 대전교육청은 이번 사건을 철저히 조사해 진상과 원인을 규명하고 예방 및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역시 "황망한 사고 소식에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며 "다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 당국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신건강 전문가 "우울증과 범행 연관 짓는 것은 위험 … 정확한 원인 분석 필요"

    사건 이후 가해 교사의 정신질환 이력이 부각되면서 일부 여론이 '정신질환 교사 배제' 등으로 확산되자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나종호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조교수는 전날 자신의 SNS에 '우울증은 죄가 없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나 교수는 "가해자는 응당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입니다만,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언론이 우울증 휴직 전력을 앞다퉈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죄는 죄인에게 있지, 우울증은 죄가 없다"며 "(우울증을 앞세운 보도는) 우울증에 대한 낙인을 강화시켜 도움을 꼭 받아야 할 사람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게 만들어 한국의 정신건강 위기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이 있을 때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국내 현실인 만큼 여론이 이런 방식으로 조성되는 것이 무척 걱정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