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부흥 내세운 트럼프 … 美LNG 수입 확대 카드 부상 조선·방산 경쟁력 내세워 협상 … 기업들, 앞다퉈 현지 생산 확대 전문가 "중국 대체할 공급망 구축할 수 있는 핵심국가 강조해야"
  •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도 예외없이 관세 폭탄을 동시다발적으로 터트리고 있다.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한데 이어 상호주의적 관세 부과도 예고했다. 한국도 미국발 관세전쟁의 직접적 영향권에 들어서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정책 노선 부합·무역 수지 균형 맞출 'LNG 수입 확대'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격화하면서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고 관세위협을 빗겨가기 위한 협상카드 마련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와 품목을 가리지 않고 관세 조치를 휘두르면서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보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크게 늘어난 한국은 비상이다. 지난해 대미 수출과 대미 무역수지는 각각 1278억달러, 557억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은 대미 무역에서 1998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흑자다.

    관세 불똥을 피하기 위해 거론되는 협상카드는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다.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미·일 정상 회담에서 대미 투자 확대와 미국산 LNG 수입 확대를 약속하며 방위비 증액과 관세 인상 압박을 완화했다. 일본은 반대급부로 '방위 공약 유지' 등도 확답받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대해서도 무역 불균형 해소 압박을 가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점에서 LNG 수입 확대 전략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석연료 부흥책을 내세우고 있고 대선 후보 시절부터 LNG를 원유와 함께 미국의 핵심 수출품으로 키우겠다고 강조해와서다. 석유·가스 시추를 늘리자는 구호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은 트럼프 에너지 공약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LNG 수입 확대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4%에 달하는 한국 입장에서도 트럼프 대통령 정책 노선에도 부합하고 대미 무역 수지 균형도 맞출 수 있는 카드라는 평가다. LNG 발전비중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LNG 발전 비중은 29.8%로 원자력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사상 처음으로 석탄 발전 비중을 추월했다. 시기적으로도 1990년대 카타르와 맺은 LNG 장기 도입 계약 만기가 지난해 연말부터 도래해 미국산 LNG 수입이 확대될 여건도 마련됐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은 미국의 무역적자국 8위로 국가적 차원에서는 무역수지 균형을 위해 수입을 늘릴만한 품목은 에너지 외에는 뚜렷하게 없다"며 "제3국에서 수입하던 석유, 가스 등을 미국산으로 대체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줄이는 방안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고 말했다. 
  • ▲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도크에 상선이 접안하는 모습. ⓒ한화오션
    ▲ 한화오션이 지난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도크에 상선이 접안하는 모습. ⓒ한화오션
    ◇조선·방산 협력 기대감 … 기업, 현지 투자 확대로 대응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조선 분야 협력이 대미 관세 협상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고 보수·수리·정비 분야에서 협력할 필요가 있다"며 "미국 조선업은 한국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어서다. 

    최근 미국 의회에서 해군 함정 건조를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에 맡기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도 발의되며 수출시장 길을 열어주는 모양새다. 최근 미국 공화당 소속 마이크 리 상원의원과 존 커티스 상원의원 등은 '해군 준비 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했다. 

    두 법안의 골자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혹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도·태평양 국가의 조선소에 미군 해군 함정 건조를 허용한다는 것이다. 건조 비용이 미국 내 조선소보다 저렴해야 하고 중국 기업이나 중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소유가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법안에서 특정 국가가 명시되지 않았지만,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도·태평양 국가 중 이같은 조건에 해당하는 국가는 사실상 한국과 일본 뿐이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조선업 협력'을 트럼프 압박에 맞설 카드로 제시했다. 조 장관은 "전략적인 산업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선업으로 경제·안보적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환영받는 분야"라며 "한국의 세계 최고 수준의 조선업 역량은 한미동맹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그동안 재래식 무기를 등한시해 자주포 개량에 실패함에 따라 해외서 자주포 도입을 추진 중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 자주포와 탄약운반차 K10에 대해 미국 측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방산 역시 협력 대상에 오를 것이란 관측이다. 

    장상식 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미역흑자국들은 에너지·무기 수입, 비관세 장벽 개선 등을 골자로 미국과 협상전략을 짜고 있고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미국이 중국을 배제할 때 한국이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핵심국가라는 점과 향후 미국에 대한 투자 계획을 잘 설명할 필요가 있다"며 "반도체, 배터리, 조선, 태양광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미국 관세 폭탄에 대응해 현지 생산 확대 카드를 속속 빼내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수입 철강에 관세 25% 부과 예고에 현지 투자 확대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제철은 미국에 약 10조원을 투자에 미국 현지에 첫 제철소를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현대제철의 투자 검토를 언급하며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가 미국 제조업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다. 포스코도 미국 내 신규 생산기지 신설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아그룹은 텍사스주에 연간 6000만톤 규모 특수합금 공장을 건설 중으로 2026년 상업 가동을 앞두고 있다. 

    다만 국내 기업들이 이처럼 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고 현지 생산량을 늘리게 되면 국내 사업장 축소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따른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도 나온다. 

    장 원장은"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 확대는 국가적으로도 고용부진, 국내 산업 생태계 약화, 수출 기반 약화, 산업 공동화 현상이 우려된다"며 "기업 입장에서도 생산과 투자는 향후 10~20년을 내다보고 해야하는 만큼 트럼프 집권으로 인해 향후 4년간을 보고 투자하는 것도 리스크가 큰게 사실"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