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회 호르무즈 봉쇄 승인 … 국가안보위 승인 남아국제유가 130달러 이상 가능성 … 원유 확보 어려워져물류비 급등 불가피 … 삼성·현대차·LG 현지 사업 타격
  • ▲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양상이 심화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연합뉴스
    ▲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양상이 심화되면서 우리 기업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연합뉴스
    이란과 이스라엘 간 군사 충돌이 미국의 직접 개입으로 확대되면서, 중동 지역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한국 산업계는 초비상이다. 전문가들은 장기화될 경우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하고 있다. 현재 이란 의회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승인했으며, 최고국가안보위원회 승인을 떨어지면 곧바로 실행가능하다.

    국제유가 130~150달러 갈수도

    국내 정유업계는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70%가 넘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면 이 70%를 다른 곳에서 구해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유 확보가 어려워지면 국제유가는 치솟을 수 밖에 없다. 지난달 61달러까지 떨어졌던 두바이유는 76.89달러까지 급등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브렌트유도 75달러 안팎으로 뛰어올랐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 되면 국제유가는 배럴당 130~15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열어두는 상황이다.

    정유기업들은 현재 중동 지역 외의 원유 수입처를 확보하기 위한 긴급 계획 수립에 돌입했다. 하지만 조달지 변경에 따른 추가 비용과 장기적 수급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불확실성 속에서의 경영 전략 수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중동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원유 수입처 다변화가 쉽지 않은 만큼,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기업의 재무적 부담이 크게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유가 상승은 국내 소비 가격을 끌어올려 정유업계에 호재로 평가되지만, 이 같은 급격한 상승은 얘기가 다르다. 당장 물량조차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통상적인 정제와 유통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해상운임도 동시에 상승하기 때문에 비용부담까지 뒤따른다.

    삼성·LG 등 가전기업 물류비 비상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주요 가전기업들은 물류비 상승과 현지 사업 위축 우려 등 직접적인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가전제품은 부피가 크고 항공 운송이 어려워 대부분 해상 운송에 의존한다. 현재 해상운임은 이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 기준 지난달 초 1300에서 이달 2000대로 급등했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경우 물류비 부담이 급증할 전망이다.

    이들 기업들은 통상 6개월~1년 단위 해상 운송 장기계약 덕분에 단기적 타격은 크지 않지만,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신규 계약에서 비용 상승이 불가피하다. 특히 확전 양상이 계속되면서 가전 소비 둔화와 현지 사업 철수까지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중동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해 온 삼성전자와, 글로벌 사우스 전략으로 중동 시장을 적극 공략해온 LG전자는 새로운 전략 수립이 시급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현실화될 경우 물류비 상승은 물론, 가전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해져 소비자 부담이 커지고 시장 경쟁력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중동 공략 나선 현대차·기아 고심

    현대차그룹은 최근 미국 시장의 관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중동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 다변화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충돌 장기화로 중동 시장 진출에 차질이 예상된다. 이미 이스라엘 정부 지침에 따라 현대차·기아의 현지 쇼룸은 폐쇄된 상태다.

    다만 현대차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설립한 '현대 모터 컴퍼니 사우디 아라비아(HMMME)'는 분쟁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피해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지 수요 위축과 중동 정세의 장기적 불확실성이 전략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중동 지역에 신규 공장 설립과 판매망 구축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현대차그룹으로서는 향후 투자 계획 재검토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 업계 전문가는 "시장 다변화를 위한 전략적 투자도 현재의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보류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 ▲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해 중인 대형 컨테이너선과 화물선ⓒAP/뉴시스
    ▲ 호르무즈 해협에서 항해 중인 대형 컨테이너선과 화물선ⓒAP/뉴시스
    뺑뺑 돌아가야 하는 물류 … 연료비 급등

    해운사들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유류비 부담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해운업계는 이미 유가 상승으로 매출원가에서 차지하는 연료비 부담이 10~25%에 달해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유가가 10% 상승하면 제조업 평균 비용이 0.67% 상승한다. 비용 증가에 실적 악화를 이어왔던 물류기업들의 경영 환경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현재 물류기업들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노선 검토에 착수했다. 하지만 대체 노선 이용 시 추가 비용과 운송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로 인해 단기적인 대응조차 쉽지 않은 실정이다. 한 물류업계 관계자는 "대체 노선 마련과 동시에 비용 증가 문제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해상운임 상승과 글로벌 물류 공급망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정부, 비상대응 가동 … 비축유 확보 사활

    정부도 비상대응 체제를 꾸리고 24시간 모니터링을 강화한다. 기획재정부는 전날 이형일 장관 직무대행 주재로 관계기관 합동 비상대응반 회의를 열고 금융·산업 현황을 점검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정부는 90일을 버틸 수 있는 비축유를 보유 중이다. 여기에 민간 비축분을 합하면 약 200일분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존 중동 거래처 대신 다른 지역에서 대체 원유를 도입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며 "중동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을 점검하고, 이란과 이스라엘을 우회할 수 있는 노선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