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잠재성장률 0%대 … '한강의 기적' 옛말중국발 저가 공세에 핵심 기간 산업 제조업도 '휘청'반기업법 쏟아내는 정치 … 국가경쟁력 죽이는 '암세포'최경환 전 부총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 無성장 탓""규제완화해 기업하기 좋은, 투자하기 좋은 환경 만들어야"
  • ▲ 서울시내 전경. ⓒ뉴시스
    ▲ 서울시내 전경. ⓒ뉴시스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 80년이 지나는 동안 세계 극빈국에서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도약하는 등 세계사에 전례없는 드라마를 썼다.

    전쟁의 폐허에서 국가를 재건하던 1950년대 1인당 국민총소득은 60달러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기준 3만662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 중 6번째 수준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2024년 1조8697억달러로 세계 12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금 끝을 알 수 없는 긴 불황의 터널에 진입했다. 80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뤄냈지만, 진정한 선진국으로서의 '경제 광복'을 이루기 위해선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美 관세·제조업&내수 위기·저출생 고령화… 韓경제 악재로 가득 

    0%대 성장률, 미국발(發) 관세 전쟁, 주력 제조업 위기, 저출생 고령화에 반(反)기업법 추진 등 악재들이 가로막고 있는데 향후 10~20년을 주도할 미래산업은 보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구조적인 경제 체질 개선, 규제 완화에 온 힘을 쏟아야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 등을 '추격'하면서 성장해 온 경제 구조를 선도형 초혁신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건 각종 지표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대표적으로 잠재 성장률이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2일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0.8%로 전망했다. 지난 5월 상반기 경제전망을 그대로 유지한 것이다. 이번 전망에는 최근 미국이 언급한 반도체 100% 품목 관세는 반영되지도 않았다.

    올해 수출 증가율도 2.1%로 전망했다. 이는 작년 6.8%보다 4.7%포인트(p)나 떨어진 것이다. KDI는 하반기에 본격화 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관세 인상 영향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지난 7일부터 한국에 1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설경기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됐다. KDI는 0%대 성장률 전망을 유지한 배경으로 건설투자 부진을 꼽으며 올해 건설투자 증가율(-8.1%)을 기존 전망보다 3.9%p 하향 조정했다. 특히 최근 6·27 대책 등 대출 규제 강화와 새 정부가 예방을 강조하는 '건설현장 안전사고' 관련 여파 등이 건설업 부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6월 발표한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올해 잠재성장률은 1.9%로 추정됐다. OECD 추정치가 2% 아래로 내려간 것은 2001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이다.

    '한강의 기적' 주역인 제조업도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DL그룹(대림산업)과 한화그룹이 50대50으로 합작해 만든 국내 3위의 석유화학 회사인 여천NCC 부도설이 대표적이다.

    석유화학은 국가 핵심 기간 산업이다. 작년 수출액만 약 480억달러(약 66조6000억원)로 반도체, 자동차, 일반 기계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국내 제조업 생산액도 2023년 111조원으로 전체 산업 중 5위였다.

    특히 여천NCC는 2017년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하는 등 20년 이상 석유화학 업계의 최우량 기업 중 하나였다. 이런 기업이 최대 수입국에서 최대 생산국으로 180도 태세를 전환한 중국의 저가 석유화학 제품 공세로 최근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여천NCC의 대주주인 두 그룹이 긴급 자금지원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부도는 일단 면했다. 업계에서는 경쟁력을 키울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아 부도 위기는 언제든 다시 닥칠 수 있고, 이런 위기가 제조업 전반으로 도미노처럼 확산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에 잠재성장률 하락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목되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생산가능 인구 감소, 노인 인구 증가를 야기하며 앞으로 수십년 간 우리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줄 것으로 보인다.
  • ▲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08.13.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5.08.13. ⓒ뉴시스
    ◇경제 망치는 정치, 쏟아지는 反기업법 … "저성장 탈출 가로막아"

    극단적인 진영 논리, 정쟁에만 매몰된 후진적인 정치 역시 암 세포처럼 국가 경쟁력을 좀먹고 있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투자 자본을 적극 유치해야 하는데,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입법으로 뒷받침하기는 커녕 거꾸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상법 개정안 등 '반(反) 기업법'을 쏟아내고 있다.

    논란봉투법은 파업 등 쟁의행위 범위를 기업의 사업 경영상 결정까지 확대하고 있고,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기존 주주뿐 아니라 더 넓은 이해관계자 대상으로 확대해 소송 리스크와 경영 간섭이 증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12일 여야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서한을 보내 "논란봉투법이 통과되면 기업들을 상대로 쟁의 행위가 상시적으로 발생해 원·하청 간 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것이다. 구조조정이나 해외 생산시설 투자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기업들이 정상적으로 사업하기 어렵다"며 법안 철회를 호소했다.

    주한유럽상공회의소 역시 공식 성명을 통해 "노란봉투법은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만든다"며 "형사처벌 위험에 직면할 경우 기업은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은 "노란봉투법이 한국 경영과 투자 매력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한국에 진출한 미국계 기업을 포함해 글로벌 기업 전반에 부담을 높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건설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이어지자 이재명 대통령이 '건설 면허 취소 검토' 지시가 나왔고,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수색에 나섰다.

    사망 사고를 낸 DL건설은 강윤호 대표부터 현장소장에 이르기까지 임직원 80여명이 사표를 냈다. 포스코이앤씨의 전국 103곳 사업장과 DL건설의 44곳 사업장은 공사를 무기한 중단했다.

    150여개의 현장이 동시에 셧다운되면서 해당 사업장 건설 일정은 무기한 연기되고 현장 용역업체 직원들의 일감도 모두 끊기게 됐다. 이를 두고 "건설 현장에서 인명 사고가 나올 때마다 면허를 취소하면 집은 누가 짓냐"는 말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에 부담을 주는 각종 기업 규제와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을 경우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빠져나오는 게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성장을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인데,  0% 성장 가지고는 아무것도 해결이 안 된다"며 "결국은 기업하기 좋은,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전 부총리는 "한국에서 돈 벌려다가 감방에 가게 생겼는데 누가 투자를 하겠냐"며 "기업하기 좋고,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선 과감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선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 국면에서 빠져나온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