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기후로 재해 피해 증가하며 농업 지형 변화 주산지 이동하고 뜨거운 바다에 육상 양식 연구도정부, 첨단 기술 연계한 스마트 농업 등 돌파구 모색 전문가 "정밀·맞춤형 재해 대응 정책 체계 확립해야"
  • ▲ 양구 사과. ⓒ연합뉴스
    ▲ 양구 사과. ⓒ연합뉴스
    기후변화가 농수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 반복되는 폭염·폭우·가뭄은 생산 기반을 흔들고, 물가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상기후가 '뉴노멀'이 된 지금, 정부의 대응과 농수산업의 구조 전환이 절실하지만 더디다.  이에 두 차례에 걸쳐 농수산업이 지속 가능성, 물가 대응을 위한 근본적 변화 대책을 모색해본다.  [편집자주]

    기후변화로 집중호우와 고온현상이 잦아지고 여름철에 비가 전혀 내리지 않은 극한 기후까지 나타나면서 농어업 재해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이상기후는 농작물 생육에 치명적 영향을 주고 가축 폐사와 수산자원 감소로 이어지며 농어업 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연중 반복되는 농어업 재해로 정부 대응 정책도 시험대에 올랐다. 이상기후로 재배지가 육상하는 등 농업지도가 변화하면서 농촌 현장에서도 스마트 농업이나 신종품 개발과 같은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농어업은 다른 산업에 비해 환경 의존도가 높아 기후 변화에 더욱 취약하다. 이에 단기적인 재해 보상 중심에서 벗어나 기후 적응을 위한 구조 전환과 장기적 연구·개발(R&D), 현장 적용이 이어질 수 있도록 보다 적극적인 정책적 지원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농어업 환경 변화는 이미 현실로 다가왔다. 과일 재배지의 북상은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 지형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온이 1℃ 올라가면 농작물 재배 가능 지역은 81㎞ 북상, 고도도 154m 높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과일인 사과는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 품목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비교적 서늘한 기온에서 잘 자라는 사과는 온난화로 재배 가능한 면적이 빠르게 줄어들 전망이다. 50년 후인 2070년대에는 재배 가능한 농지가 전체의 1.1%로 줄어들고 2090년대엔 사실상 재배지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됐다. 

    사과 재배지는 이미 북상 중이다. 과거 대구, 경북 중심이던 재배지가 강원도 양구, 정선, 인제 등 북부로 이동하며 강원도 사과 재배면적은 2009년 199ha에서 올해 1951ha로 약 10배 증가했다. 

    서진교 GSnJ 인스티튜트 원장은 "이상기후로 인해 각 품목의 생산지가 변화하는 것에 대한 선제적 대비가 필요하다"며 "재배지 변화에 따른 새로운 주산지를 개발하고 이에 맞는 유통망 등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랭지 배추도 이상기후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여름 배추 주산지인 고랭지의 재배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생산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안정적인 기후조건이 무너지면 수급 불안이 반복되고, 가격 변동성과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고랭지 배추 면적은 1996년 1만793ha로 정점을 찍은 뒤 해마다 줄어들어 2023년에는 3995ha까지 감소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지면 2050년에는 지금의 7% 수준으로 축소되고 2090년에는 사실상 재배지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도 최근 4대 국정과제에 농림위성을 활용한 수급예측 고도화 등 체계적 농축산물 수급 관리와 인공지능(AI)·로봇 등 첨단기술과 연계한 스마트농업 고도화 등을 담았다. 또 자연재해에 대한 국가책임제 도입도 국정 목표로 설정했다. 아울러 전남 해남군에 농식품분야 기후변화 대응을 전담하는 컨트롤타워인 '농식품 기후변화 대응센터'를 조성 중에 있다. 
  • ▲ 육상 김 양식. ⓒ대상
    ▲ 육상 김 양식. ⓒ대상
    이상기후는 수산업에도 역시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검은 반도체'라고 불리며 수출 효자 품목으로 자리잡은 김 산업 역시 이상기후로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김은 수온과 일조량 등에 따라 성패가 갈리는 대표적인 기후 민감형 품종으로, 최근 몇 년 새 수온 상승과 기상 악화로 양식 환경이 악화됐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국내 김 생산량은 2019년 1억7746만 속(1속=100장) 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지난해 1억4970만 속으로 5년만에 15.6% 감소했다. 

    김은 양식으로 생산되는데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전남 지역 생산량은 2023년 기준 평년 대비 15% 감소했다. 갈수록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앞으로 80년 내 남해안 전역에서 김 생산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김은 주로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생산되며 성육 시기 수온은 5~15℃다. 김 종자를 바다에 붙여 키우는 채묘 적정 수온은 일평균 22℃ 이하다. 최근 수온 상승으로 채묘 시기가 9월 초에서 9월 말로 늦춰지고 있다. 

    이에 최근에는 김 양식을 바다에서 육지로 영역을 넓히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주관하는 '김 육상 양식' 국책 과제 최종 사업자로 고흥군·대상·하나수산 등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선정됐다.

    기후변화에 대비해 김 수급 안정화 및 식품 안전성 확보를 목표로 연중 대량 생산이 가능한 육상양식 기술 개발을 추진하게 된다. 향후 5년간 국비 35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육상양식 김 종자 연중 공급 및 대량 양성 기술개발, 김 연중 생산 육상양식 시스템 및 품질관리 기술개발 등이 과제다. 

    2029년까지 기술개발과 상용화 시스템을 마련하고 2030년부터 육상양식으로 수확한 김을 상품화한다는 목표다. 김 육상양식은 계절이나 날씨, 바다 환경등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연중 균일한 품질의 김을 생산할 수 있으며, 정수된 해수를 사용해 중금속 오염 우려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이상기후가 상수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R&D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김상효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인공지능(AI)·센서 기반의 농가 단위 데이터 수집과 현장 네트워크 연계를 강화해 정밀·맞춤형 재해 대응 정책 체계를 확립하는 등 농업 시스템 전반을 기후 위기에 적응 가능한 구조로 전환해야 한다"며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다양한 R&D 성과가 축적되고 있으나, 현장 확산 속도는 더뎌 추진 거버넌스 정비가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