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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항. ⓒ뉴시스
한국경제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미국의 관세 정책으로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전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산업 구조개편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 시장인 유럽연합(EU)까지 미국처럼 50% 관세를 예고하면서 수출 기반이 위협받고 있다.
이런 와중에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까지 다시 점화하면서 우리 제조업체들의 '샌드위치 상황'은 더욱 심화하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 속에 원·달러 환율은 1430원 위로까지 치솟는 등 금융시장 환경도 악화일로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시장 상황은 역설적이다. 기업 체질은 갈수록 나빠지는데도 주가는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여기에 집값까지 폭등 조짐을 보이면서 '유동성 거품'이 커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정작 선제적 정책 구사는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있다.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는데도, 한국은행은 집값에 손발이 묶여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지 못하고, 정부는 재정 확대에만 의존하고 있다. 장기 불황의 악령이 눈 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대응, 10일(현지시간) 중국산 제품에 대해 11월1일부터 100%의 추가 관세를 예고한 직후 미국 금융시장은 실물 경제의 미래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주가 하락 속에서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미국의 국채 금리도 급락세를 나타냈다. 미중 무역 전쟁이 다시 점화할 경우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예상때문이었다. 가뜩이나 세계무역기구(WTO)는 내년 세계 무역의 위축을 예고한 상황. 여기에 글로벌 무역 '빅2'의 대립이 극심해지면 세계 경제의 침체 속도는 더욱 빨라질 공산이 크다고 본 것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서 자동차 등 주력 제품이 천문학적 손실을 보고 있는 우리 제조업체들로서는 세계 경기 침체라는 더 큰 파도에 직면하게 됐다.
미중 무역 전쟁 속에서 우리 기업들이 '고래 싸움에 새우등이 터지는' 형세는 계속되고 있다.
당장 트럼프 행정부가 14일부터 외국에서 제조된 자동차를 운반하는 선박에 대해 부과하기로 한 입항 수수료를 당초 예고보다 3배 더 높이기로 하면서 우리 기업들은 또 한번의 타격을 입게 됐다. 중국 조선·해운 산업을 견제하고 미국산 선박 건조를 장려하기 위한 조치인데, 정작 현대차·기아의 수출차량을 실어나르는 국내 해운업계의 부담이 더 커졌다.
여기에 중국이 미국으로의 수출길이 막히면서 동남아 등에 대규모 덤핑 수출에 나서면서 철강 등 우리 주력 수출품목이 미국 외에 여타 국가에서 수출이 힘들어지는 상황도 속출하고 있다.
미중 패권다툼이 격화하면서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또 하나 심각함을 드리우는 것이 미국 외에 다른 수출국들마저 보호 무역의 장벽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7일(현지 시간) 유럽 철강업계 보호 대책을 담은 규정안을 공식 발표했다. 철강 무관세 쿼터 총량을 전년 대비 47% 줄인 1830만 톤으로 축소하고,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 대해선 기존 25%에서 50%로 관세를 인상한 것은 상징적이다.
국가별 쿼터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무관세 총량이 반 토막 난 만큼 한국 등 주요 수출국의 쿼터도 대폭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 지난해 EU에 393만 톤의 철강을 수출했으며, 이는 튀르키예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규모다. 우리로서는 제2, 제3의 수출국들마저 줄줄이 막히고 있는 셈이다.
미국에 이어 EU까지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세청 국세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세를 신고한 법인 중 당기순이익이 0원 이하인 법인은 47만1163개로 전년 대비 4만5933개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순이익을 내지 못한 법인이 전체 신고 법인(105만8498개) 중 44.5%를 차지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가운데 대만이 한국 경제를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아시아경제 9월 전망'에 따르면, 대만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5.1%로 제시됐다. 지난 4월 전망치(3.3%)보다 1.8%포인트 높아진 수치다.
반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는 0.8%에 그쳐, 성장 속도에서만 6배 가까운 격차가 벌어졌다. 내년에도 대만(2.3%)이 한국(1.6%)보다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대만이 한국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었던 배경에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를 중심으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핵심 지위를 강화하고, AI 산업 확대에 따른 첨단 산업 수출 효과를 극대화한 점이 꼽힌다.
관세 불확실성으로 환율과 집값은 동시에 급등하고 있다. 10일 원·달러 환율은 23.0원 오른 1423원으로 개장하며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100%의 추가 관세를 발표한 직후에는 야간 시장에서 달러당 1430원 위로 치솟았다.
이런 상황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집값의 고공 행진은 그칠 줄 모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다섯째 주(29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직전 주 대비 0.27% 상승했다. 성동구(0.78%), 마포구(0.69%), 광진구(0.65%) 등 강북 한강 벨트가 강세를 보이며 상승 폭을 확대했고, 서울 25개 자치구 모두 오름세를 나타냈다.
서울 아파트값은 6·27 대출 규제 시행 이후 안정세를 보이다가 9월 둘째 주(8일)부터 급격한 상승세로 전환됐다. 상승률은 지난달 1일 0.08%에서 8일 0.09%, 15일 0.12%, 22일 0.19%, 29일 0.27%로 4주 연속 오름폭을 키우고 있다. 주식시장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10일 코스피지수는 장 초반 사상 처음으로 3600선을 돌파했다.
한국은행은 '경기 부양'과 '집값 안정' 사이에서 금리 인하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지난달 금리를 인하하고 추가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한국은행도 금리 인하 여력이 생겼지만, 관세 불확실성과 부동산 시장 자극 우려로 결정을 미루고 있다. 10월로 예상됐던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은 집값에 묶여 11월로 사실상 연기됐다.
정부는 이렇다 할 경제 위기 극복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재정 확대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내년 예산을 올해보다 약 55조 원 늘린 728조 원으로 편성했다. 5년 임기 동안 매년 재정수입보다 재정지출이 많은 구조여서 올해 1273조 원인 국가채무는 내년에 사상 처음으로 1400조 원을 돌파하고, 4년 뒤에는 18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재정 건전성 악화와 국가 신용등급 하락 등 경제 전반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면, 경제 체질을 바꾸기 위한 산업 구조 개편 방안은 여전히 부재하다. 특히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상법 개정 등 반기업적 법안 추진과 규제로 인해 기업들이 해외로 떠나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대학 교수는 "한국 경제가 이미 0%대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획기적인 경기 부양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며 "정부는 재정 확대에만 의존하지 말고 규제를 완화해 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동시에 산업 구조 개편을 통해 경제의 기본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