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10년간 500조 투자 … 국내 고부가 산업과 겹쳐제조업 기반 약화되면 지역경제·고용시장 연쇄 타격 불가피전문가들 "서비스업 육성과 해외기업 국내 유치 병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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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면서 한국 정부가 향후 10년간 매년 200억달러, 총 3500억달러(약 500조원)를 미국에 투자하는 세부안이 확정됐다. 이는 작년 한국의 전체 대미 해외직접투자(FDI) 규모와 맞먹는 수준으로, 그 파급력은 단순한 외교적 합의 수준을 넘어선다. 문제는 이 막대한 자금이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되면서 국내 투자 여력을 빠르게 갉아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3일 정부 통계 등에 따르면 최근 한국의 대미 투자는 꾸준한 증가세를 보인다. 2020년 151억6000만달러였던 대미 FDI는 2024년 220억8000만 달러로 45.6%나 늘었다. 특히 반도체가 포함된 전기장비·전자부품 제조업 분야는 전체 대미 투자액의 17% 이상을 차지하며 핵심 산업으로 부상했다.문제는 이번 협상에 따라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 및 첨단산업 해외투자가 더 증가할 거란 전망이다. 대미 FDI는 대부분 민간 영역의 투자인 만큼 이번 협상에 따른 정부 주도의 투자가 진행될 경우 대미 향후 투자는 약 두 배로 뛰어오르게 된다.특히 미국이 주도하는 산업 프로젝트와 한국이 투자해야 할 산업이 겹친다는 게 문제다. 과거 중국에 대한 투자는 저부가가치 산업 중심이었기에 국내 산업과 보완적 관계를 형성했지만, 이번 대미 투자는 반도체·AI·배터리 등 국내 핵심 산업과 직접적으로 충돌할 수 있다.또 반도체와 배터리는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산업이다. 클린룸 구축, 장비 도입, 연구개발(R&D) 인력 확보 등 초기 투자비용이 수조 원에 달하는 만큼, 자금의 흐름이 해외로 집중되면 국내 기업들은 투자 여력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AI 역시 고성능 서버와 데이터 인프라, 알고리즘 개발에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분야인데, 미국 중심의 투자로 국내 AI 생태계가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더욱이 이번 대미 투자는 단순한 지분 투자나 기술 협력이 아닌, 미국 내 생산시설 구축과 인프라 확충을 위한 직접 투자 성격이 강하다. 이는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던 공장, 연구소, 고급 일자리 등이 미국으로 이전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결과적으로 국내 산업의 경쟁력 약화는 물론 지역경제와 고용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부가가치 산업의 해외 집중은 단순한 자금 유출을 넘어 한국 산업의 구조적 공동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대미투자는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에서 국내 투자 요소가 미국으로 향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에선 주요 제조시설뿐 아니라 국내 주요 인재들의 미국행도 우려된다"고 경고했다.국내 제조업은 최근 반도체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24년 10대 제조업 투자 실적은 114조원으로 국내총생산(GDP)의 4%, 전산업 설비투자의 42%를 차지했다. 올해는 119조원으로 7% 증가가 예상되며, 설비투자가 GDP 성장률을 견인하고 있다.하지만 이번 한·미 관세협상 타결로 인해 10년간 500조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가 본격화되면, 이 회복 흐름이 꺾일 수 있다. 특히 국내 중소기업과 지역산업의 자금 흐름을 약화시켜 민생경제 전반의 투자여력을 축소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시민단체인 참여연대 관계자는 "대규모 대미 투자로 인해 제조업 중심 지역과 중소도시 경제의 위축, 조선·철강·부품 산업 등 주력 제조업 기반 약화는 하청·중소기업의 경영난과 지역 고용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경남연구원은 관세 15%가 부과될 경우 경남의 대미 수출액이 연간 4990억원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으며, 한국은행은 충남 제조업 성장률이 0.5~1.5%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전문가들은 대미 투자 확대가 불가피하다면, 정부 차원에서 대미 투자 확대의 명과 암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물론 해외 기업의 국내 투자 유도 및 서비스업 경쟁력 강화, 실업자 및 피해 기업 대책 등을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김진일 교수는 "향후 우리 경제와 산업을 위해서라도 국내 AI와 배터리 업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막바지 논의에 반영했길 바란다" 며 "국내 산업 보호와 고용 안정,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다층적 대응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