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부發 지방 이전 논의 도미노 … 여권 중심으로 지역 유치전 격화 노조는 반발 "정치적 선동 복사판" … 내년 지선 앞두고 '정치 쟁점화'
  • ▲ HMM 컨테이너선.ⓒHMM
    ▲ HMM 컨테이너선.ⓒHMM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기관 이전을 요구하는 지자체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에 이어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을 국정과제로 제시하자, 각 지역에서도 기관 유치 요구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특히 공공기관 2차 이전이 국정 과제에 담기면서 정치권과 지자체의 움직임은 한층 더 분주해졌다. 일각에서는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취지보다 표심을 겨냥한 '이전 경쟁'이 앞서면서 선거용으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번진다. 

    18일 정부 등에 따르면 해수부 부산 이전이 연내 마무리될 예정인 가운데, 전재수 해수부 장관이 HMM 본사의 부산 이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국정감사 당시 연말까지 HMM 지배구조, 부산 이전 등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발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이전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앞서 이재명 정부와 해수부는 '해양수도 부산' 육성의 일환으로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해양·물류 클러스터 구축을 추진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해수부와 산하기관, HMM 본사 이전이 핵심 과제로 부상했다. 정부는 해운·물류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산에 해운기업을 집적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해수부는 HMM을 비롯한 해운 대기업을 부산으로 이전해 부산 해양 수도 실현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구상이다. 부산시와 부산상공회의소도 '해운기업 이전 추진위원회'를 꾸리고 HMM 등 주요 해운기업 본사 이전의 실질적 실행전략 마련에 착수했다. 

    반면 HMM 노조는 '타당성 없는 이전'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향후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불가피한 전망이다. 최근 전 장관은 HMM 육상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만나 본사 이전 추진 배경과 계획을 설명했지만, 노조 측은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최악의 경우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경고까지 내놓은 상태다.

    기관 이전 논란은 부산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여권을 중심으로 수협중앙회, 농협중앙회, 마사회 본사 등까지 이전 요구가 확산하며 관련 법안 발의도 이어지고 있다. 

    특히 해수부 부산 이전과 맞물려 전남을 지역구로 둔 여당 의원들이 수협중앙회의 전남 이전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해 기준 전국 수산물 생산량의 59.4%를 차지하는 전남에 본사를 둔 기관이 한국어촌어항공단 한 곳뿐인만큼 수협중앙회가 전남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논리다. 

    문금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공기관 이전 논의가 있을 때마다 해운·물류 중심 기관은 부산으로 가면서 정작 수산과 어촌의 중심 전남은 번번이 배제돼 왔다"며 "수협중앙회 본사를 수산업 1번지이자 전국 어민의 터전인 전남으로 이전하기 위해 수협중앙회는 전향적 검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수협중앙회 본사를 서울에서 지방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수산업협동조합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수협중앙회 본사의 주소지 이전 근거를 마련해 수산업 정책의 현장대응력과 연계성을 강화하고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에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은 "치적 목적의 지방 이전 논의는 즉각 중단하라"며 즉각 반발했다. 금융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과거 금융기관 지방이전 논의 때마다 되풀이돼 온 정치적 선동의 복사판에 불과하다"며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익을 노린 무책임한 입법놀음이 금융기관과 노동자들에게 또다시 불안을 안기고 있다"고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전북 출신 여당 의원들은 한국마사회와 농협중앙회 전북 이전을 적극 요구하고 있다.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농협중앙회와 농협케미컬, 한국마사회 등 농생명·축산·말산업 관련 기관의 전북 이전은 단순한 지역 이전이 아닌 국가균형발전의 핵심 과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과 이성윤 의원은 각각 농협중앙회 본사를 전북으로 이전하는 것을 명시한 '농업협동조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농협중앙회가 산하에 금융지주를 두고 있는 만큼 본사 이전을 통해 전북이 '농생명-금융허브'로 도약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기관의 지역 이전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지역 간 경쟁을 부추기고 정치권 표심 확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못지 않다. 

    김경수 지방시대위원장이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추진을 공식화한 가운데, 정부가 올해 이전 대상 공공기관 전수조사를 마치고 내년에 구체적 이전 실행계획을 수립한 뒤 2027년부터 본격적인 이전 추진에 나설 계획이다. 

    만일 내년 상반기에 이전 계획이 나올 경우, 이는 지방선거 판세를 흔드는 핵심 변수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각 지역들이 앞다퉈 유치전에 돌입하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책의 근본 취지는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권의 득표 계산에 따라 흔들리는 선거용 이슈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혁신도시정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혁신도시 상생지수'에 따르면 10개 혁신도시 중 S·A 등급은 한 곳도 없었고 나주시만 B등급으로, 나머지는 모두 C등급 이하였다. 

    연구원은 "기관 유치만으로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며, 지자체와 이전 기관 간 협력이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뼈아픈 성적표"라며 "혁신도시를 단순히 '기관만 들어선 도시', '읍·면 단위보다 조금 나은 행정구역' 수준에 머물게 한 책임에서 지자체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