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노조법 시행령' 개정안 내년 1월5일까지 입법예고교섭방식 두고 혼란 불가피 … 노사관계 사법화 우려원청노조 영향력 감소 … 인천공항 벌써 '노노갈등'
  • ▲ 노사관계 (PG) ⓒ연합뉴스
    ▲ 노사관계 (PG) ⓒ연합뉴스
    정부가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 간 실질적 교섭을 촉진하기 위한 '노동조합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시행 초기 절차·판단의 불확실성으로 노사관계가 사법화되고, '노노 갈등'이 격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고용노동부는 24일 '노동조합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오는 25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이같이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내년 3월 10일 시행되는 노동조합법 개정안(노란봉투법) 시행에 따른 후속 작업이다.

    우선 정부는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 간 교섭은 원청 사용자의 사업(장)을 기준으로 하되, 노사 간 자율적인 교섭을 존중해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가 자율적인 교섭이나 공동교섭에 동의하면 합치된 의사에 따라 교섭을 진행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한다. 

    다만 합의하지 못할 경우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하되 하청노조의 실질적 교섭권을 최대한 보장한다. 노동위원회의 교섭단위 분리 과정에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는 교섭권의 범위, 사용자의 책임 범위, 근로조건, 이해관계 등에서 서로 차이가 있으므로 원칙적으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 간에는 교섭단위를 분리한다.

    이후 하청노조 간 교섭단위를 분리함에 있어서도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가 합의한 사항은 최대한 존중해 반영하고, 노·사간 의견이 불일치되는 경우에는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안정적 교섭체계를 이룰 수 있는 방향으로 교섭단위 분리제도를 운영한다.

    에컨대 직무나 이해관계, 노동조합 특성이 현저히 다른 경우에는 개별하청별로 분리하는 방식, 직무 등 특성이 유사한 하청이 있는 경우에는 유사 하청별로 분리하는 방식, 전체 하청의 직무 등 특성이 유사한 경우는 전체 하청노조로 분리하는 방식 등 합리적인 방식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통해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다.

    아울러 하청노조에서 교섭단위 분리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에는 원청 교섭단위에서 원청노조와 하청노조가 서로 연대해 교섭하도록 지도할 계획이다. 교섭단위가 분리되면 이후 분리된 교섭단위별로 각각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해 각각의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결정하게 된다.

    ◆장관도 인정한 창구단일화 악용 우려 … '실질적 지배력' 기준 등 모호

    정부는 노란봉투법과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 간 실질적 교섭이 가능해지면서 원청 사용자의 책임이 더 커지고, 노동자 전체의 편익이 늘어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다만 노동계는 이번 제도가 하청노조의 교섭권을 명확히 보장하겠다는 취지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지만, 하청노조가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실질적 지배력' 기준이 시행령에서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으면서 교섭단위 분리 기준, 사용자성 판단기준 등 세부 기준이 모호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는 등 창구단일화가 악용된 사례가 있었던 만큼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이 축소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앞서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이번 노조법 개정은 한국 노사관계가 '자율·연대형 구조'로 넘어가는 첫 시험대"라며 "노동계는 하청 노동자의 교섭권이 축소될 수 있다고 보는데, 그동안 창구단일화가 악용된 사례가 있었던 만큼 의심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어 김 장관은 "(경영계는) 노사관계가 사법화되길 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원청이 하청업체의 문제까지 책임져야 하는 구조에서 협상 창구까지 다방면으로 구축될 경우 내부 교섭 인력과 예산이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영계 관계자는 "사용자 범위와 노동쟁의 대상에 대한 기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관련 입법이 급격히 추진되면서 노사관계가 법적분쟁으로 휘말릴 수 있다"며 "이번 시행령으로 협상 창구까지 여러 갈래길로 나뉜다면 기업 입장에서 관련 예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려했던 노-노 갈등 현실화 … 공공부문서 큰 혼란 예상

    이번 시행령으로 하청 노조의 원청 상대 교섭이 가능해지면서 노사 갈등뿐 아니라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 간 '노노 갈등'으로 번질 거란 우려도 제기된다. 하청 노조의 협상력이 커지는 만큼 원청 노조가 독점하던 교섭권과 영향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실 노란봉투법 시행을 앞두고 현장 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인천공항에서 파업을 벌이며 노란봉투법 시행과 정규직 전환 문제를 쟁점화했다. 정부는 노란봉투법 1호 사업장을 내부적으로 특정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노조 측은 "공사가 노란봉투법 시범사업장 추진 사실을 숨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 소속 장기호 인국공 노조위원장도 지난 13일 사내 내부망에서 "정부가 강원랜드와 함께 공사를 노란봉투법 1호 시범사업장으로 추진하려고 한다"며 "(하청 노조의) 대규모 파업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노란봉투법이 시행되면 민간기업은 물론 자회사·협력업체가 촘촘히 얽혀 있는 공공부문에서도 큰 혼란이 전망된다. 인천공항을 제외한 전국 14개 공항의 건설, 관리, 운영을 전담하는 한국공항공사는 지난달 '노조법 개정안 시행에 대비한 대응 방안 마련'을 주제로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일부 공사와 공단은 자회사 구조조정과 노사관계 재설계 시나리오를 내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노총은 대기업·정규직 사업장이 많지만 민주노총은 공공·서비스 분야 비정규직 조합원 비율이 상대적으로 커 양대 노총 간 미묘한 갈등도 감지된다. 

    노동계 관계자는 "원청 사용자와 하청노조 간 실질적 교섭을 추진한다는 정부안에는 공감하지만 노조 내부적으로 방향성이 다를 수 있다"며 "노사 간 협의 구조를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노동계 내부의 불만은 더 커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