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7000억 달러·코스피 5500 '축배' 들었지만 양극화 심화 멈춰 선 내수 엔진 살리려면 규제 걷어내고 제도 개선 나서야 재정지출 정책, 시중 유동성 팽창에 물가 상승해 취약계층 타격향후 금리 인상·유동성 축소 땐 자산 시장 버블 꺼질 가능성 경고
  • ▲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모습. ⓒ연합뉴스
    'K자형 성장'이 구조적 문제로 굳어지고 있다. 산업과 계층 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며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특정산업과 수출·자산시장만 뜨겁고 내수는 차갑게 식어버린 불균형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성장'을 31번이나 외쳤지만 'K자형 양극화'는 더욱 선명해지는 모습이다. 

    ◇경기 회복세, 특정 산업·계층에 집중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연간 성장률은 1.0%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연구기관마다 차이는 있지만 올해는 대체로 1%대 후반에서 2%대 초반의 성장률을 예상한다. 다만 경기 회복세가 특정 산업과 계층에 집중되며 격차가 커지는 K자형 양극화 우려가 제기된다. 

    수출에서 양극화는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수출액은 전년 대비 3.8% 증가한 7094억 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이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기댄 성과로, 산업 구조 편중이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실제로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24.4%(1734억 달러)를 차지하며 전체의  4분의 1 가까이를 홀로 지탱하는 쏠림 현상이 확인됐다. 반면 15개 주력 수출 품목 가운데 반도체와 컴퓨터, 자동차·선박, 바이오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품목은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산업 전환기를 맞아 산업이 반도체나 인공지능(AI) 위주로 재편되고 중국의 부상으로 전통 제조업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K자형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여기에 부동산 정책 실패로 인한 '똘똘한 한 채' 쏠림 현상이 부의 불평등을 키웠고, 수출은 양호한데 내수는 침체되는 불균형으로 인해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 경고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산업 구조를 보더라도 반도체 의존도가 높고 인공지능(AI)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인 만큼 이를 소화할 수 있는 일부 섹터만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며 "인력 고용 측면에서도 AI와 로봇이 상용화되면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결국 소득 양극화로 이어지고 자산 효과를 통해 부동산이나 주식 등 자산 격차를 더 벌리게 될 것"이라며 "경제 발전 단계가 양극화를 가속화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 ▲ 서울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기업 빌딩 전경. ⓒ뉴시스
    ▲ 서울 남산공원에서 바라본 서울 기업 빌딩 전경. ⓒ뉴시스
    ◇ 규제는 속도전·제도 개선은 '거북이 걸음' 
    K자형 성장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정부의 규제 정책이 지목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계가 요구해온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을 강행 처리하고 1·2차 상법 개정까지 몰아붙인 것과 달리 기업들이 요구해온 배임죄 개선 등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정이 1차 상법 개정 당시 배임죄 폐지 또는 전면 개선을 통해 경영 판단에 대한 과도한 형사책임 우려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거북이 걸음'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시장이 원할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기업 리스크를 가중시키는 노란봉투법이나 배임죄 등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상속세 등 규제 합리화를 통해 기업하기 좋은 법·제도적 환경을 구축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제언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도 "노란봉투법 시행과 법인세 인상 등 정부가 세수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펴면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라며 "법인세를 세계 평균 수준인 21%로 낮춰 일자리를 만드는데 초점을 둬야 하며, 증세 기조에서 벗어나 서민과 중소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발굴해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의 선심성 예산 투입도 도마에 올랐다.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이나 기본소득 도입 논의 등도 결과적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기본소득이나 추경은 경제적 필요성보다 정치적 목적이 앞선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상 효과가 없다"며 "추경은 성장 견인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시중 유동성 팽창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높여 취약계층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AI나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부분 완전히 대체하는 시대가 온다면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현 단계에서는 적절치 않다"며 "여전히 일자리가 존재함에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유인(인센티브)마저 꺾어 우리 경제의 근로 의욕을 저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 유동성 장세의 역설 … 부동산·주식도 '쏠림' 
    최근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가파른 상승세로 자산 보유 여부에 따라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부동산 시장은 정부의 잇따른 부동산 대책에도 '똘똘한 한 채' 현상으로 서울 강남권과 한강벨트 아파트값이 수억 원씩 치솟으며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사이 지방 부동산은 쌓여가는 미분양 물량과 거래 절벽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다. 

    김정식 교수는 "부동산 정책 실패와 건설업 규제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 내수 침체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시중에 풀린 과잉 유동성으로 화폐 가치가 하락하자 실물 자산인 부동산 수요가 늘어나고 있고, 서울 변두리 신도시만 늘리는 정책은 도로 등 인프라 한계로 오히려 서울 수요를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1주택자 장기보유특별공제도 최대 80%까지 감면받을 수 있어 투자 수익률이 높다 보니, 강남 등 핵심 입지의 '똘똘한 한 채'로 수요가 쏠리고 있다"며 "현재 부의 양극화가 굉장히 심각한데, 부동산 시장이 안정되면 건설 경기가 회복되면서 내수와 수출 양극화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코스피가 5500선을 돌파하며 신고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일부 대형주가 시장을 독식하는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며 증시의 기초 체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해 코스피 대형주 지수가 32.85% 급등하며 축배를 드는 동안 소형주 지수는 3분의 1 수준인 11.31% 상승에 그쳤다. 특히 시가총액 '빅 3'인 삼성전자(51.13%), SK하이닉스(35.18%), 현대차(68.30%)는 시장 평균을 크게 상회하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실제 이 같은 쏠림 현상은 가구의 소득·자산 격차 확대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들의 금융자산 증가율은 8.5%로 전체 가계 금융 자산 증가율(4.4%)의 두 배에 육박했다. 

    조동근 교수는 "주식시장이야 말로 양극화의 결정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일부 산업군에 수급이 쏠려 있다"며 "코스피가 5500선을 도달하는 과정을 보면 처음부터 수익을 쌓아온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 빚투와 영끌로 상투에 올라탄 MZ세대도 상당수"라고 우려했다. 

    이어 "무리하게 진입한 투자자들은 지수가 조금만 횡보하거나 조정을 받아도 견디기 힘든 구조"라며 "이른바 '몰빵 투자'로 스스로 양극화를 자초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정식 교수는 "지금은 전형적인 유동성 장세"라며 "실물 경기는 침체되고 경기는 나쁜데, 돈을 풀어 유동성이 많아 부동산 규제에 막힌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쏠린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이처럼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은 금융 시장의 가격 상승이 바로 '버블'"이라며 "앞으로 금리가 높아지거나 유동성이 줄어들면 버블이 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 서울 시내의 한 폐업 식당 앞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 서울 시내의 한 폐업 식당 앞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시스
    ◇"K자형 성장 돌파구는 규제 완화" 
    전문가들은 K자형 성장 구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규제 완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염명배 교수는 정부의 규제 만능주의를 정면 비판하며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민간의 반응을 시뮬레이션하는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세금을 올리고 규제를 강화하면 국민과 기업이 곧이곧대로 따를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으로, 현실의 주체들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인다"며 "시장의 반응을 정밀하게 분석하지 못한 채 정책이 기대에 못 미칠 때마다 규제를 덧칠하는 방식은 기업의 예측가능성을 훼손하고 자본과 기업의 해외 이탈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정책 설계 단계부터 개인과 기업의 반응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연구가 반드시 선행될 필요가 있으며, 경제 기초 체력 강화를 위한 과감한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고 했다.

    규제 완화가 곧 일자리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대종 교수는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구호로만 외칠 것이 아니라 '우버'와 같은 4차 산업혁명 기반의 신사업들을 전격 허용하는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며 "4차 산업혁명 신사업의 빗장만 풀어줘도 수십만 개의 양질의 일자리가 새롭게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