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독주에 선행지수는 '역대급'인데 동행지표는 19개월째 마이너스승용차 뺀 소매판매 4년째 감소세, 중소기업 연체율은 10년 만에 최고청년 일자리 39개월째↓ … 서울-지방 부동산 값 14배 '자산 절벽' 심화
  • ▲ 기사내용에 맞춰 AI 제미나이가 그려낸 삽화 ⓒ뉴데일리
    ▲ 기사내용에 맞춰 AI 제미나이가 그려낸 삽화 ⓒ뉴데일리
    한국 경제가 코스피 6000선 돌파 축포를 터뜨리고 반도체 수출 호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양극화 현상은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붐에 기댄 반도체 수출이 독주하며 전체 수출을 밀어 올리는 사이 철강·석유화학·건설업은 장기 불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격차는 고용과 내수 침체, 그리고 자산 양극화로 이어져 우리 사회의 구조적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반도체 기업 종사자들이 억대 성과급으로 함박 웃음을 짓는 사이,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 직원들은 연체와 폐업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고소득자들이 삼성전자로 떼 돈을 버는 동안, 20대와 건설 등 비IT 부문 일자리는 급속하게 소멸돼 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들에 대한 융단 폭격을 가하는 동안, 전세와 월세로 사는 세입자들은 치솟는 시장 금리에 고통을 겪고 그나마 물건을 못구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일자리·자산·산업 전 부문에 'K자형 성장'의 괴물 같은 기형의 그림자가 갈수록 짙게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전문가들조차 대한민국 경제 전체가 거대한 '분식의 함정'에 빠져 있다는 극단적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뉴데일리는 우리 경제에 퍼지는 악성의 K자형 곡선을 거시 담론과 실물 현장을 오가면서 장기 시리즈로 전한다. [편집자주]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경기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98.5로 19개월 연속 기준선(100)을 밑돌았다. 반면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103.1로 전월 대비 0.6포인트(p) 상승하며 2002년 이후 약 2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지표 간 격차는 4.6p로 '닷컴버블' 시기인 2000년 2월(4.7p) 이후 26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벌어졌다. 파죽지세인 '코스피 훈풍'이 미래 기대를 반영하는 선행지수 상승을 이끈 반면 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표는 부진을 면치 못하며 극명한 대조를 보인 것이다.

    멈춰버린 낙수효과 … 수출 호황에도 내수·중소기업은 '연체율 비상'

    산업 현장에서도 이 같은 대비는 확연하다. 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수출이 급증하며 고공 행진하고 있다. 이달 1일부터 20일까지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4.1% 급증하며 수출 호조세를 이끌었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다.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전체 시가총액의 약 40%를 차지하며 코스피 랠리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철강과 석유화학은 중국산 저가 공세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이중 압박 속에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 석유화학은 2018년 전체 수출의 약 8.2%를 차지하던 '수출 효자'였으나, 현재는 구조조정 1순위 업종으로 거론된다. 철강 역시 건설 경기 침체와 관세 직격탄을 맞으며 구조조정 압력이 높아졌고, 건설업은 지방 미분양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여파로 만성 불황에 빠졌다.

    문제는 반도체가 낙수 효과가 큰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도체는 대표적인 장치 산업으로 대규모 설비 투자가 이뤄지더라도 직접적인 고용 유발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자동화 수준이 높아 고용이 제한적인 데다, 해외 생산 거점이 늘면서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외국으로 향하고 있다. 

    반면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일자리가 줄어들며 지역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철강·석유화학 메카인 전남 광양·여수, 경북 포항 등은 고용·산업위기 지역으로 전락할 처지다.

    이처럼 수출과 내수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면서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소매판매액지수는 0.5% 증가해 4년 만에 반등했지만, 이는 승용차 판매가 11% 급증한 영향이 컸다. 승용차를 제외한 소매판매는 0.7% 감소해 2022년 이후 4년 연속 줄었다. 2010년 통계 작성 이래 최장 기간 감소세다.

    내수 부진은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고통으로 직결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은행 원화 대출 연체율은 0.5%를 기록하며 10년 만에 0.5%대에 진입했다. 기업 대출 연체율은 0.59%였으며, 특히 중소기업(0.72%)의 상승 폭이 두드러졌다. 지난 26일 열린 중소기업중앙회 총회에서 김기문 회장은 "이런 (주가, 수출) 성과는 일부 대기업에게만 집중돼 있다"며 중소기업과 자영업, 서민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했다.

    자금이 실물이 아닌 증시로 쏠리며 경기 냉각을 부추긴다는 진단도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가계·기업의 시중 통화량(M2) 증가율은 3.2%에 머문 반면, 증권사·보험사 등 금융기관 보유 자금은 12.3% 급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산업 구조가 반도체와 AI 위주로 재편되면서 'K자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며 "반도체 수출이 내수 경기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내수와 밀접한 건설업 등의 침체가 길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 ▲ 사진은 지난해 4월10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 사진은 지난해 4월10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세대 간 고용 절벽과 14배 벌어진 자산 격차 … 구조적 균열 심화

    노동시장에서는 세대 간 고용 양극화도 뚜렷하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1월 청년층(15~29세) 취업자는 17만5000명 줄어 39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갔다. '쉬었음' 인구는 청년층에서만 46만9000명에 달해 2021년 1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경력직 위주 채용 관행이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대기업 정규직 부문 고령자 고용은 5.9배 급증했지만, 청년 고용은 오히려 1.8% 축소됐다.

    자산 시장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공식은 견고해지고 있다. 자산 상승 속도가 실물경제 성장세를 압도하면서, 자산 보유 여부에 따른 계층 간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자산 상승장에서 자산가들이 복리 효과를 누리는 사이 정보와 자본력이 부족한 계층은 자산 형성의 골든 타임을 놓치거나 뒤늦은 추격 매수에 리스크를 떠안으며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최근 코스피 상승한 주도한 종목이 초대형 기술주에 집중되면서 체감 격차는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지수는 연일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실제 수익을 거둔 투자자는 일부 대형주 보유자에 한정됐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 비중이 38.8%를 차지하고 있어 '쏠림 장세'도 고착화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작년 4분기 5분위(상위 20%) 고소득 가구의 명목소득이 6.1% 늘어나는 사이 1분위(하위 20%)의 소득은 4.6%, 2∙3분위는 1%대 증가에 그쳤다. 역대급 증시 랠리에 따른 수익 역시 주식을 많이 보유한 고소득층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부동산 시장은 지역별 양극화를 드러내는 바로미터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상위 20%(5분위)의 평균 가격은 13억4296만원인 반면 하위 20%(1분위)는 9292만원에 그치며, 그 격차가 14.5배에 달했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값은 전년 말 대비 8.98% 상승하며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비수도권은 1.08% 하락하며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오는 5월 9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가 종료되면 서울 핵심지 1주택만 보유하려는 '똘똘한 한 채' 선호 현상이 더욱 뚜렷해 질 것이란 전망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지방 시장의 매물 적체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공급 과잉과 수요 위축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지방 부동산 시장의 어려움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6510가구로 76.1%(5만627가구)가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어 수도권과 지방의 온도 차가 통계로도 확인되고 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발 무역 불확실성과 AI 거품론으로 반도체 수출이 언제 급감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 경제는 반도체 의존도 심화와 부동산 중심의 극심한 양극화라는 이중고에 처해 있다"라며 "특히 가계 자산의 70%가 부동산에 묶인 상황에서 벌어지는 K자형 격차는 경기 개선과 증시 성장을 가로막는 결정적 한계가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