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정유사 美·아프리카·북해산 대체원유 확보 사활비축유 68일·나프타 15일분…'산업 셧다운’ 현실화 우려美, 韓 등에 군함 파견 압박…에너지·관세와 연동 가능성日, 미국산 원유 수입 늘리며 공급망 재편…韓 대응력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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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5.08.26. ⓒ뉴시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이 중동 대체 물량 확보 전쟁 국면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특히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아프리카·북해 등 대서양 연안 원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며 사실상의 '원유 쟁탈전'에 돌입했다. 한국 역시 비상 수급 체제에 들어가면서 이재명 정부의 '오일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19일 정유 업계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주요 정유사들은 대체 원유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의 트레이딩 부문 유니펙은 서아프리카산 원유 최소 600만 배럴을 확보했고, GS칼텍스는 6월 도착 예정인 미국산 원유 약 400만 배럴을 선제적으로 매입했다.인도 국영 힌두스탄 페트롤리엄은 4월 선적 물량 입찰에 나섰고, 태국 정유사는 북해산 원유 약 70만 배럴을 사들이며 2019년 이후 처음으로 유럽산 원유 확보에 나섰다. 베트남 역시 앙골라에 원유와 가스 공급을 공식 요청하는 등 동남아 국가들까지 긴급 조달에 뛰어든 상황이다.이 같은 수요 쏠림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유가 기준인 브렌트유는 18일(현지시간) 장중 배럴당 111달러를 돌파해 52주 최고치를 기록했다. 16일 싱가포르에서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배럴당 153.24달러로 2월 말 71.24달러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오만산 원유 역시 17일 기준 154달러까지 치솟았다. 운송비도 폭등했다.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의 하루 운임은 15만7000달러에서 47만 달러로 약 3배 상승했다. 여기에 북해·아프리카산 원유는 브렌트유 대비 사상 최고 수준의 프리미엄이 붙으며 '대체 가능 원유' 자체가 희소 자산으로 변하고 있다.문제는 물량을 확보하더라도 곧바로 중동산을 대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중동산 원유는 주로 '중질·고유황' 특성을 갖는 반면, 미국·북해산 원유는 '경질·저유황' 중심이다. 아시아 정유소 상당수가 중동산 원유를 전제로 설계된 만큼 원유 성질이 바뀌면 정제 효율과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다. 설비 개조나 운전 조건 변경이 필요하지만 단기간 내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물류 측면에서도 공백은 불가피하다. 중동에서 한국까지는 약 20일이면 도착하지만, 미국 등 대체 공급지는 35~40일이 걸린다. 공급선을 전환하더라도 시간 차로 인한 수급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한국의 상황은 더욱 복합적이다. 정부와 민간이 보유한 원유 비축량은 약 1억9000만 배럴로, 정부는 이를 기준으로 최대 208일을 버틸 수 있다고 설명하는데 이는 수출을 제외한 계산이다. 실제로 지난해 국내 정유사의 수출 물량은 4억8535만 배럴로 전체 도입량의 51.9%에 달했다. 이를 반영한 하루 소비량은 약 280만 배럴 수준으로, 비축유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약 68일에 불과하다. 산업계에서 '4~5월 위기설'이 제기되는 이유다.더 심각한 문제는 석유화학 산업이다. 원유에서 추출하는 나프타 재고가 약 15일치에 불과해 이달 말부터 공급이 사실상 끊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로 롯데케미칼은 여수 NCC 설비 가동을 중단하고 정기 보수에 들어갈 예정이며, 일부 업체들은 '불가항력'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나프타는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기초 소재의 원료로, 식품 포장재·화장품 용기·자동차 시트·가구 소재 등 산업 전반으로 영향이 확산된다. 공급 차질이 현실화될 경우 생산 중단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장상식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은 "석유화학은 나프타 조달 차질로 비용상승, 운송 차질, 전력·연료비 부담이 겹치고 있다"며 "설비 통폐합, 고부가 스페셜티 전환, 합작재편 등의 산업재편 일정이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정부도 '오일 외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을 주축으로 한 아랍에미리트(UAE) 전략경제특사단은 지난 15~17일 UAE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대통령을 예방하고 기존에 확보한 원유 600만 배럴 외 1800만 배럴을 추가로 확보했다. 이와 함께 산업통상부는 비축유 방출 준비와 함께 나프타를 경제안보 품목으로 지정해 수출을 제한하기로 했다. 자원안보 위기 경보도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그러나 확보 물량은 전체 수요 대비 제한적이며, 장기전 대비 전략은 일본에 비해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일본은 한국보다 빠르게 에너지 위기 대응에 나서고 있다. 중동 의존도가 약 90%에 달하는 일본은 이미 비축유 15일분을 방출했으며, 미국산 원유 수입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단기 대응을 넘어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과 대비된다.한국도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미국이 원유 수입 문제를 안보와 관세 등과 연동해 압박할 수도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유럽 동맹국에 호르무즈 해협 상선 호위를 위해 군함 파견 등으로 협조하라는 요구를 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한 유가 상승 국면이 아닌 '공급 붕괴형 에너지 위기'로 규정한다. 1970년대 1∙2차 오일쇼크가 가격 급등으로 인한 충격이었다면, 이번에는 확보 가능한 물량 자체가 사라지면서 산업 생산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 원유 약 68일, 나프타 약 15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대응 전략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한국해양진흥공사는 "과거 사례를 고려할 경우 봉쇄가 해제되더라도 정상화까지는 봉쇄 기간의 2배 이상이 소요된다"고 전망했다.아울러 이번 위기를 통해 중동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에너지 수급 구조 전반에 대한 문제점이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한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특정 지역에 집중된 공급 구조, 설비 의존성, 늦어진 공급망 다변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에너지 위기를 증폭시켰다"며 "정부의 '오일 외교'가 단기 물량 확보를 넘어 구조적 에너지 전략 전환으로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