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반도체 키우기 혈안인데 … 韓 '반도체 이익 분배 토론회' 소집납세·고용 확대가 기업의 역할 … "공공재 발상, 시장경제 원리와 충돌"대통령 "가짜뉴스" 진화에도 '분배론' 재점화 … "기업 경영에 정치 개입"
  • ▲ 강남 테헤란로 ⓒ뉴시스
    ▲ 강남 테헤란로 ⓒ뉴시스
    미국과 중국이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지원까지 동원하며 반도체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삼성전자 성과급 논란을 계기로 '대기업 초과이익의 사회적 재분배'와 '한국형 사회연대임금' 필요성을 공개 거론하고 나서면서 산업계 안팎에서 "기업 경쟁력보다 분배 논리를 앞세운 위험한 접근"이라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김영훈 장관은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차담회에서 "이제는 대기업의 초과이익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다음 달 1일 노동부 주관 긴급 토론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토론회 명칭은 '한국형 사회연대 임금정책 가능성 모색에 관한 토론회(가칭)'다.

    김 장관은 이날 삼성전자 노사 갈등과 관련해 "초과이익이 정규직만의 전유물이 돼선 안 된다"며 원·하청 간 동반성장과 노동시장 내 재분배 논의를 강조했다. 이어 "반도체는 공공재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됐다"고 주장하며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김 장관이 언급한 '사회연대임금'은 스웨덴식 임금 모델에서 영향을 받은 개념이다. 스웨덴의 사회연대임금은 같은 산업 내에서는 기업 규모나 수익성과 관계없이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로, 강력한 복지국가 체제와 노사정 대타협을 바탕으로 운영돼 왔다. 

    생산성이 낮은 기업은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높은 생산성을 기반으로 이를 감당하는 구조다. 다만 산업 구조와 노사 문화, 복지 시스템이 전혀 다른 한국에 이를 단순 이식하려는 시도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김 장관의 이러한 발언을 두고 업계를 중심으로 정부가 기업 경쟁력보다 분배 논리에 집중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재 미국은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막대한 보조금과 세제 지원을 쏟아붓고 있고, 중국 역시 국가 차원의 반도체 굴기를 추진하며 한국 기업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는데 정작 우리 정부는 스스로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려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같은 날 자신의 SNS 계정에서 "지금 세계 반도체 시장은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국가 총력전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노동자의 헌신과 성과가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면서도 "미래 투자를 지속하고 기술 초격차와 생산 안정성을 지켜내는 것 역시 반드시 함께 지켜야 할 공동의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국 수장이 '초과이익 재분배'를 화두로 꺼낸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가 자국 기업의 투자를 늘리고, 어떻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데 한국은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부터 이야기하고 있다"며 "반도체 산업을 사실상 공공재처럼 보는 발상 자체가 시장경제 원리와 충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업은 이미 법인세와 각종 준조세를 부담하고, 고용 유지와 투자 자체가 사회 기여 성격을 가지기에 김 장관의 발언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며 세금을 내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정부가 추가로 '사회적 재분배' 논의를 주도하는 순간 기업 경영의 예측 가능성과 자율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영계 관계자는 "최근 노조가 영업이익 연동형 성과급 요구를 본격화하면서 재계 전반으로 유사 요구가 확산하는 분위기"라며 "정부가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기보다 기업의 부담을 가중하는 근거로 삼고 있다. 사회적 대화라는 허울 좋은 말에 숨어서 기업을 압박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특히 이번 논란은 최근 김용범 정책실장이 불을 지핀 '국민배당금' 논란과 맞물리며 파장이 더 커지는 분위기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관련 논란이 확산하자 "가짜뉴스"라며 진화에 나선 바 있지만, 곧장 노동부 장관이 기업 초과이익 재분배와 사회연대임금 담론을 다시 꺼내 들면서 시장 혼선을 키우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도 이번 논란에 즉각 반응하고 있다. 최보윤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공보단장은 논평에서 "노동부 장관이 특정 기업의 성과급 체계와 이윤 배분 문제까지 거론하며 '한국형 사회연대임금'을 언급한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며 "법과 제도가 아닌 '사회적 대화'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압박 신호를 보내는 것은 기업 경영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