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1500조원 규모 '3대 메가프로젝트' 발표하자美 "삼성전자·SK하닉 미국에서 메모리 생산시설 지어야"이달 말 새 관세 도입 앞두고 반도체 투자 압박 본격화쿠팡 제재도 변수 … 정부 "美와 다양한 채널 통해 협의"
  •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부 제공) 2026.05.10 ⓒ뉴시스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8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DC 상무부 회의실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과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산업통상부 제공) 2026.05.10 ⓒ뉴시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 규모 호남 반도체 투자 계획을 빌미로 미국의 새로운 통상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한국 반도체 기업의 자국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데 이어 이달 말 새 관세 체계 발표를 앞두고 있어 정부의 통상 협상이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13일 산업통상부와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미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난달 발표한 호남권 반도체 투자 계획 이후 한국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미국 내 추가 투자 확대를 요구하는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직접적인 신호탄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쏘아 올렸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의 뉴욕주 신규 팹 건설 현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미국으로 불러와 메모리 생산시설을 짓게 하고 싶다"며 "현재 한국 기업들과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직접 거론하며 미국 내 메모리 생산시설 건설을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권에 총 80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 4기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직후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미국이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는 전략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이날 마이크론은 오는 2035년까지 미국 투자 규모를 기존 2000억달러에서 2500억달러(약 375조원)로 확대하고 D램 생산의 40%를 미국에서 담당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는 이를 계기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주도하는 한국 기업들의 미국 투자를 더욱 확대하려는 전략을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문제는 미국이 요구하는 생산시설이 단순한 후공정이 아니라 D램 웨이퍼 제조 등 핵심 메모리 전공정이라는 점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약 370억달러를 투자해 첨단 파운드리 단지를 건설 중이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입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짓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메모리 핵심 생산라인까지 미국으로 이전하기를 원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메모리 전공정을 미국에 구축하는 것은 경제성과 기술보호 측면에서 부담이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높은 인건비와 건설비는 물론 HBM 등 첨단 메모리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있어 생산기지 이전에도 적지 않은 제약이 따른다. 공급망 안정과 현지 생산 요구는 커지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과 기술 경쟁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반도체 투자 압박은 관세 카드와 맞물려 있다. 미국은 이달 24일 종료되는 글로벌 10% 관세를 대신할 새로운 관세 체계를 준비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가 무력화된 이후 무역법 301조 등을 활용해 각 무역 대상국에 새로운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는 반도체 품목 관세를 대폭 끌어 올릴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미국 내 생산시설을 짓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대해 최대 100% 수준의 품목 관세를 언급한 바 있다. 실제 시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미국이 이를 언제든 협상 카드로 다시 꺼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3대 메가프로젝트'는 미국 입장에서 추가 투자 요구의 명분이 되고 있다. 

    정부는 총 1500조원을 투입해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와 전국 AI 데이터센터 등을 구축하는 '3대 메가프로젝트'를 지난달 29일 발표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호남권 반도체 산업단지에 각각 400조원씩 총 800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발표 직후 미 상무장관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콕 찍어 대미 투자를 압박한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관세율을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3500억달러(536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액의 약 3분의 1 수준이다. 

    통상 당국은 이런 투자 규모 차이로 인해 미국이 새로운 통상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 쿠팡을 둘러싼 논란도 한미 통상 협상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한국 정부가 쿠팡을 차별적으로 규제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고, 백악관도 미국 디지털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에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이를 미국 기업에 대한 비관세 장벽 문제로 해석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미국의 추가 투자 요구와 새로운 관세 체계 발표 가능성에 대비해 이미 합의된 관세율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 외교력을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또 조만간 반도체 공급망 협력과 조선·에너지 등 전략 산업 협력을 연계해 1호 대미투자사업을 선정하고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인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쿠팡 관련 사안은 국내법에 따른 조사와 규제 절차라는 점을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설명하면서 반도체와 관세 협상 등 핵심 통상 현안과는 분리해 관리한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의 관세 합의 이익균형이 훼손되지 않도록 미국 측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