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회사 '손발' 자른 금융당국 책임론
  • 우리은행은 해마다 새해 첫 행보를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있는 홍.유릉에서 시작한다. 홍릉은 조선 제26대 고종과 명성황후 민씨를 합장한 곳이고 유릉은 제27대 순종과 그 왕비 순명효황후 민씨 및 계비 순정효황후 윤씨를 합장한 곳이다.

    매년 업무가 시작되는 첫 날, 우리은행 은행장 및 주요 간부들은 이른 아침 홍.유릉을 참배한 후 본점으로 돌아와 시무식에 참석한다.

     

    신임 점포장과 신입 행원들도 사령장을 받으면 홍.유릉을 참배한다.

     

    우리은행이 이런 특이한 전통을 이어가는 이유는 은행의 뿌리가 1899년 1월 30일 처음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족은행인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이기 때문이다.

     

    민족의 자존을 세우고 외세로부터 은행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했던 대한천일은행은 고종황제가 황실자금인 내탕금 3만원을 자본금으로 납입했고 초대 은행장 민병석은 탁지부자대신, 궁내부대신을 역임한 고종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었다.

     

    특히 2대 은행장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 이은이었다.

     

    이런 연고로 우리은행 임직원들은 틈만 나면 홍.유릉을 찾아 116년 역사의 정통 민족은행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되새기고, 조국과 민족의 경제발전에 앞장서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은행이 지금 절박한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그 동안 은행의 외연 확장과 수익력 신장의 발판이었던 자회사들이 대부분 매각되면서 다른 은행들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장기화되는 초저금리 상황 하에서 은행상품만으로는 더 이상 설 땅이 없다. 고객들은 보다 수익이 높은 다른 업권 상품으로 눈을 돌리게 마련이고 증권이나 보험, 자산운용 등 계열사가 없는 은행은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것.

     

    더욱이 금융당국은 상품 교차판매와 복합점포 허용 등 금융지주회사 체제가 유리한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다. 우리은행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렇게 되도록 만든 책임은 금융당국에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위원회는 우리금융그룹을 통째로 매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고 계열사별 분리매각을 시작했다. 경남은행, 광주은행에 이어 우리파이낸셜, 우리F&A, 우리자산운용을 매각했고 우리투자증권과 우리아비바생명 및 우리금융저축은행 등 3개 알짜 계열사는 통째로 NH농협금융에 인수됐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은행과 우리카드, 우리종합금융 등 뿐이다. 사실상 은행만 남은 셈이다.

     

    물론 탈출구는 있다. 조속한 민영화다. 민영화된 우리은행이 다시 제2금융권 계열사들을 사들여 외연을 보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책임이 있는 금융관료들은 우리은행 민영화에 미온적이다. 겉으로는 민영화를 외치지만 원매자가 없는 상황에서 택한 '과점주주 분할매각' 방식이 자칫 헐값 매각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제2의 '변양호 신드롬'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차기 정부에서라도 너무 싸게 팔았다고 책임을 추궁당할 까 두려운 것이다.

     

    헐값 매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역경매(逆競賣)' 혹은 '더치옥션(dutch auction)'이라고 불리는 방법은 매도자가 최고 호가부터 가격을 낮추다가 매수 희망자가 나오면 일괄 매도하는 방식이다.

    우리은행 민영화의 경우, 여러 명의 매도자가 각자 제시한 입찰가 중 지분이 모두 매각되는 최저 가격을 모든 수량의 최종 매각 가격으로 결정하게 된다.


    국민주 방식이나 할부 방식도 거론된다.

     

    우리은행 임직원들도 조기 민영화를 위해 발벗고 나섰다. 

     

    이광구 은행장은 해외 투자자들을 만나 적극적으로 우리은행을 홍보하기 위해 뛰고 있으며, 삼성증권 등 제2금융권과의 협업과 핀테크 투자 등 기업가치를 높이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노동조합도 국회와 언론 등에 민영화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칼자루'를 쥔 금융관료들은 팔장을 끼고 있다. 그러는 동안 116년 역사의 정통 민족은행인 우리은행은 서서히 도태돼 가고 있다. 관료들 자신이 그렇게 되도록 정책방향을 몰아가고 있다.

     

    정말 이대로 놔둘 셈인가. 시간이 없다. 내년이면 총선, 대선 등 '정치바람'에 민영화는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