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경영승계만으로 '정경유착' 단정… "유죄 주장 정치권 요구 부응"명시적 청탁 없다 인정하면서 '묵시적 청탁' 개념 도입… "비겁한 타협""경제 문제, 편가르기로 해결 안돼… '민-관' 머리 맞대야 할 시기"
  •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뉴데일리DB
    ▲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뉴데일리DB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와 관련해 반기업·반재벌 정서 및 정치권의 재벌개혁·경제민주화 공략에 반대해온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가 입을 열었다. 

    신 교수는 지난달 17일 열린 이 부회장 등의 40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의 배경과 시사점을 증언한 바 있다.

    그는 '엘리엇 저격수'라는 별명에 걸맞는 명쾌한 발언으로 재판부와 방청석을 압도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손해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합병에 찬성했다' '엘리엇 등이 합병비율의 불공정에 문제를 제기했다' 'ISS도 보고서를 통해 합병에 반대했다' '물산의 주가가 조작됐다'는 특검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반박했다.

    특검은 당시 신 교수의 증언에 '꼬투리 잡기' 전략으로 응수했지만, 재판부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결국 재판부는 1심 선고에서 삼성물산 합병건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다.

    신장섭 교수는 최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 부회장의 1심 선고를 포함한 재판 과정에 대해 "반재벌정서가 지배한 비겁한 판결"이라 지적했다. 그러면서 "판결문이 정치적 타협을 합리화하는 문서처럼 읽힌다. 법리와 증거로만 판결을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에 유일한 피고측 외부 증인으로 출석한 바 있다. 재판부의 1심 선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반재벌 정서가 냉철한 이성을 가리는 것 같아서 지난 2015년 삼성과 엘리엇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의견을 개진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반재벌 정서가 이성을 가리는 것 같아서 증언석에 앉기로 했다.

    그러나 1심 판결을 보면 재판부도 반재벌정서에 지배당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거기에 더해서 비겁한 판결을 내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재판부가 '반재벌정서'에 지배당했다고 생각하는 배경은?

    ▶재판부는 이 사건의 본질을 설명하면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했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경영권 승계에 대한 도움을 부탁하거나 실제 도움을 받은 증거가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당시에 경영승계가 진행됐다는 정황 만으로 '밀착'을 단정했다. 

    이는 글로벌 1위를 다투는 다국적기업조차도 중요한 일들을 국내 정치권과 '정경유착'으로 달성한다는 반재벌정서의 선입견에 바탕을 둔 생각이다.  

    -비겁한 판결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재판부는 명시적 청탁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묵시적 청탁'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특검이 제기한 다섯 가지 죄목에 유죄를 선고하는 한편 형량은 12년에서 5년으로 줄였다. 이것이 비겁한 타협이다. 어중간하게 유죄 선고를 해놓아서 유죄를 주장하는 정치권의 요구에 부응하고 증거부족에 따르는 문제를 양형 축소로 땜질한 것이다. 

    재판부에 대해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법리와 증거에 따르는 대쪽 같은 판결이다. 타협은 정치인들이 하는 것이지 법관이 할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판결문이 정치적 타협을 합리화하는 문서처럼 읽힌다.

    -묵시적 청탁이라는 개념이 항소심에서 최대 쟁점이 될 거란 분석이 나온다.

    ▶법률가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이야기하기는 어렵겠지만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도 뇌물죄라는 형사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리면서 '묵시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그것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지 대단히 의문스럽다. 증거는 명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석은 불명확하거나 다양할 수 있어도, 증거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명확해야지만 거기부터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것 아닌가.

    묵시적 증거라는 개념을 사용하면 재판부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증거 내용이 달라질텐데, 그것이 사법부가 하는 일인가. 재판부가 편의에 따라 입법까지 하는 기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스럽다.

    -증언에서 주로 삼성물산 합병 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 판결에서 합병에 대해 부정한 청탁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판결문을 읽어 보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가 '비겁한 판결'을 내린 것 같다. 삼성물산 합병에서의 핵심 쟁점은 △삼성이 경영승계를 위해 주주들에게 불리한 일이었는데도 밀어부쳤느냐 △그래서 정부에게 로비를 했느냐 △결론적으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느냐 여부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여기에 대한 답변이 없다. '이재용 승계작업과 관련성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말만 나온다. 우리나라 법에 승계가 불법이라는 조항은 없다. 따라서 범죄여부를 따지려면 승계 추진 여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불법사항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승계와 관련이 있으니 묵시적으로 불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뉘앙스만 던져 놓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내린 승계에 관한 박 전 대통령의 '묵시적 청탁'이라는 것에서 핵심 고리는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회장도 이 부분을 가장 억울해하면 재판부가 오해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렇지만 재판부는 이에 대한 답변을 회피했다.

    -재판부가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금(64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출연금(16억원)을 뇌물로 인정했다.

    ▶재판부가 무죄라고 판결한 미르 및 K스포츠재단에 대한 지원이든 유죄로 판단한 승마 및 영재센터 지원이든 지원 사실에 대해서는 피고측과 특검측의 이견이 없다. 때문에 핵심 쟁점은 해당 지원이 뇌물이냐, 강요에 의한 지원이었느냐를 따지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봤을 때에 삼성과 같이 커다란 그룹의 경영권이 걸려 있는 사안에 대한 뇌물로 보기에 89억은 '껌값'에 불과하다. 삼성은 하루에 1조원을 버는 그룹이다. 그런데 겨우 80억원으로 경영권 확보를 지원해 달라고 뇌물을 줬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또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국내 대기업들이 박근혜 정부에서만 낸 준조세가 2조3000억원에 달한다. 삼성이 아무리 적어도 이 중 5000억원 이상은 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묵시적 청탁' 의사가 없었을까? 정부가 내라는 사업에 기업이 돈을 낼 때에는 100% 사회공헌이라기보다는 뭔가 묵시적 지원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이러한 돈을 '보험료'라는 부르는 것도 나중에 뭔가 받을 게 있다고 묵시적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삼성이 80억원을 보험료로 냈는지, 승계에 관한 지원을 기대한 건지를 판가름할 수 있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것에 대해서는 뇌물로 인정했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변호인단이 항소함에 따라 10월부터 2심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법리와 증거로만 판결을 내려줬으면 좋겠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인데, 이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한심하다.

    -정부의 기업정책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보자. 최근 기고문을 통해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현대차그룹에 순환출자 해소 압력을 넣는 것에 대해 비판했는데.

    ▶사실관계를 제대로 따지지 않고 반재벌정서에 의해 정책이 갈수록 강하게, 불가측하게 집행되는 것 같아서 쓴 글이다. 순환출자 형태로 있건, 지주회사 형태로 있건 그룹의 금융위험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 회사가 잘못되면 그 회사 주식 들고 있는 계열사나 지주회사가 그 만큼만 손실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주회사는 좋고 순환출자는 나쁜 것이라 밀어붙이는가? 역사적으로 살펴봐도 한국 상법이 일본 상법을 아무 생각없이 베끼다 보니 일본의 지주회사 금지를 그대로 들여와서 순환출자 위주의 재벌이 생겼다. 그 다음에는 정부가 나서 지주회사가 좋은 것이니까 순환출자 없애라고 재벌들을 몰아붙이고 있다. 재벌 입장에서는 적반하장으로 두들겨 맞는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사업구조에 절대선이라는 건 없다. 정부가 모든 기업에게 가장 바람직한 사업구조를 알 수도 없고, 자기가 안다는 것을 기업에게 강요해서도 안 된다. 기업의 활동이 체계적 금융위기를 가져올 것인지, 불법적인 행위가 있는지 등을 감시감독하면 된다.

    정부는 불편부당해야 한다. 전반적인 기업정책을 써야지 특정기업에게 법에도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을 장관이 나서서 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정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공론화해서 법을 통과시키고 기업에게 그 법을 지키라고 해야 한다. 그래서 기고문에서 '법치가 아니라 인치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가 기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반재벌 정서가 굉장히 강한 것 같다. 기업을 '착한 기업'과 그렇지 않는 기업으로 구분하는데, 대부분의 기업들, 특히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착하지 않은 기업 부류에 들어가는 것처럼 낙인찍는 모습이 우려스럽다.

    정부의 낙인찍기에 기업인들이 사업할 의욕이 생길 지 의문이다. 기업인들은 야심을 갖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내며 그 결과로 큰 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동력이다. 너무 착한 사람들은 기업을 제대로 키우지 못 한다. 존경받는 기업은 먼저 크고 힘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기업인들은 이렇게 기업을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사회에 나름대로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의 자부심을 살려주며 경제를 키워가나가되, 그 과정에서의 부작용이 적도록 하는 선에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거창하게 편가름하는 얘기들만 너무 난무하는 것 같다. 그러면 사회가 좋아지지 못한다. 뭔가 개선이 있으려면 건설적 대안을 놓고 각자 맡은 분야에서 구체적인 얘기들이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 

    법률가들조차 편가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특검이 변론 과정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직무에 대한 대가로 삼성이 금품을 교부한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건 정치인들이나 쓰는 용어다. 

    법률가는 법전에 있는 용어와 정신을 중심으로 사안을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 사람이다. 경제 문제도 편가르기로는 해결책이 찾아지지 않는다. 당면한 성장활력회복, 분배문제 개선 등의 구체적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놓고 민관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