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밥그릇 싸움에 선수들만 피해
  •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가 표류하고 있다.

    2009년부터 KLPGA 회장을 맡아온 선종구 하이마트회장이 회장직에서 사퇴하면서 개막전 대회가 취소되는가 하면, 선수 출신 부회장 2명이 차례로 회장으로 선출됐다 절차상 문제로 물러나는 촌극이 벌어졌다. 회장 직무대행을 뽑아놓고도 내분은 그치지 않고 있다.

    갈피를 못 잡은 KLPGA의 표류로 겨우내 기량연마에 열중해온 선수들과 골프팬은 물론 국내 골프업계가 심각한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선종구 회장의 사퇴에서 직무대행 체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그 동안 누적된 KLPGA의 고질적 내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 수 있다.

    자리싸움, 밥그릇 싸움, 주도권 다툼, 외부인사에 대한 거부감, 행정의 미숙 등이 복합적으로 화학반응을 일으켜 유례없는 KLPGA 표류사태가 빚어졌다는 게 골프계의 시각이다.

    임기를 1년 남긴 선종구 회장의 사퇴는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의 대표 선임문제에서 촉발됐다. KLPGT는 KLPGA의 수익 창출을 위해 만든 자회사로, 선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왔는데 3월말로 임기가 끝나는 선 회장은 당연히 대표이사의 연임을 원했다.

    그러나 선수 출신 이사들이 선 회장 취임 이전처럼 공동대표제로 하자고 맞섰다. 선 회장은 “KLPGA의 협회장이 KLPGT의 공동대표의 한 사람이 되는 것은 격에 맞지 않고 신속한 업무집행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그렇지 않아도 선 회장이 취임한 뒤 경기위원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경기위원 정년을 70세에서 60세로 낮추는 등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위기의식을 느껴온 터라 상당수 이사들은 공동대표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일부 이사들은 “그 동안 외부 인사를 영입해 협회 운영을 맡겼지만 이제 우리도 협회를 이끌 능력이 있다”며 외부인사에 대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결국 선 회장은 “이런 상황에선 일을 할 수 없다”며 지난 22일 물러났고 하이마트가 후원하는 시즌 개막전인 하이마트오픈이 취소되는 사태를 빚었다.

    협회를 더 큰 혼란으로 몰고 간 것은 이후 협회의 수습과정.

    선 회장 사퇴 후 협회는 지난 24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한명현 수석부회장을 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출했으나 의결정족수 부족으로 무효처리 됐다. 이어 다음날 열린 정기총회에서 구옥희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선출했으나 이번에도 정족수 미달로 없던 일이 돼버렸다. 정족수를 채우기 위해선 대의원 56명 중 과반수인 28명이 참석해야 했는데 1명이 부족했다.

    협회가 안팎으로 공격을 당하자 부회장단(한명현 구옥희 강춘자)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사표를 냈고 김미회 전무가 회장직무대행을 맡았으나 해프닝은 이어졌다. 31일 임시총회를 소집하려 했으나 이사회 안건상정 절차를 빠뜨려 취소되었고 일부 이사들은 김 전무의 직무대행 자체를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해 12월 방송중계권 대행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시비를 잠재우고 당장 4,5일 열리는 시니어투어 개막전도 준비해야 하는데 선장 잃은 협회는 일을 손에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KLPGA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김 전무는 이른 시일 안에 이사회를 열어 회장단을 선출하고 방송 중계권 계약문제도 마무리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골프계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