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반 타의반 용퇴가 출발...정피아 등 확대재생산 우려 무작정 '관피아 바라기'도
  •  

    [관피아 쇄신-中] '官은 治를 좋아해'


    전관예우는 현직예우이다.

     

    아름다운 용퇴로 포장된 1, 2급 고위공무원들의 퇴진은 기실 '자의반 타의반'이다.

     

    물러난 이들의 자리엔 후배들이 승진을 하고 선배들을 위한 자리만듦을 주저하지 않는다.

     

    다스리기를 좋아하는 官의 특성상 유관기관과 산하기관은 물론 협회와 민간기업까지 우리사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治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관피아의 탄생...'우리끼으리'

     

    시쳇말로 족보에 올라간다는 공직의 직급은 최소 '官'자가 붙어야 한다. 공식적인 최하위 '관'직위는 사무관(5급)이다.

     

    고시파 늘공들은 유독 외부에서 들어온 어공이나 하위 공무원들의 직책과 직급에 官자가 붙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논란끝에 주무관, 담당관, 전문관 등이 생겨났지만 그저 단순한 호칭일뿐 이들의 직급 명칭은 여전히 주사와 서기, 전문계약직 등이다.

     

    고위공무원단 가급과 나급 보다는 1급과 2급으로 불리는 것을 더욱 선호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위계와 서열, 계통과 질서를 강조하는 공직사회의 본령인 셈이다.


    직업공무원들의 최종 목표인 1급 관리관은 사실 꿈의 자리다.

     

    중앙부처 차관보와 실장 등을 맡고 있는 1급은 300여명 내외로 우리나라 전체 공무원 수 100만명에 견줘보면 얼마나 오르기 힘든 자리인지 실감이 난다.

     

    9급, 7급에선 기적이 아니고는 가기 힘든 자리이다. 행시를 거친 5급 중 30~40% 정도만이 도달한다. 그들도 25년 이상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넘볼 자리다.

     

    연봉제가 되면서 근무평정에 따라 연급여는 6526만~9790만원으로 편차가 있지만 권한은 막강하다. 기사 달린 승용차에 널찍한 사무실, 판공비나 기관운영비도 꽤 지급된다.


    하지만 이렇게 폼나는 1급은 계약직이다. 1~2년내 대부분 옷을 벗고 '관피아'의 길로 들어선다.

     

    퇴직관료의 재취업은 명예퇴직과 직결돼 있다. 엄중한 평가를 받으면서 정년을 보장받는다면 관피아의 폐해는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보통 부처에서는 정년 3년 전에 명퇴하는 4급 이상 간부들에게 보상 형태로 재취업을 주선한다. 부처로선 승진 등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있고 장기근속 고액연봉자 대신 신규 공무원 충원에 따른 일자리 창출 및 예산 절감 효과도 뒤따른다.


    이렇게해서 수천 개에 달하는 정부 부처의 산하 기관과 협회, 조합 등에 그만 둔 관련 기관의 공무원 출신들이 대거 고위직을 차지하고 앉아 철밥통의 기득권을 이어간다.

     

    물론 전문성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은 수긍할 수 있으나 전관의 프리미엄에 의한 관과의 유착과 그 유착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빚어지는 업무에서의 적당주의, 정실주의, 도덕적 해이는 피하기 어렵다.


    공공기관 정상화 방안을 놓고 박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 지난 26일의 청와대 워크숍.

     

    이날 참석 공공기관장 120여명 가운데 '관피아'가 63명, '정피아(정치권+마피아)'가 23명으로 70%가 낙하산 수장이었다.

     

     

  • ▲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캡처
    ▲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캡처

     

    ◇빗나간 의리...'으리타파'

     

    최근 인천의 한 자치단체에서는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2급 이사관인 전현직 부구청장이 잇따라 독직사건에 휘말려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자 구내 방송까지 통해 직원들에게 탄원서 서명을 받다가 노조의 제지로 중단됐다.

     

    올 초 한 청와대 행정관이 자신이 담당하는 관계 부처의 법인카드를 건네받아 사용하다 내부 감찰에 적발됐다. 자신이 담당하는 부처로부터 용돈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해당 행정관은 별다른 징계 조치를 받지 않고 원래 부처로 복귀했고 활동비에 쓰라며 법인카드를 직접 건네줬던 비서관은 청와대에 그대로 복무중이다.

     

    대개의 부처는 힘쎈 곳으로 파견나가 있는 공무원들에게 부처의 법인카드를 지급하며 공을 들이고 있다.

     

    해운비리를 수사중인 검찰도 관피아의 의리에 애를 먹고 있다.

     

    한국선급과 해운조합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해수부 공무원들을 상대로 접대와 향응을 제공한 내용을 확인했지만 당사자들은 한사코 입을 닫고 있다.

     

    신상까지 구속되는 등 본인에게 불이익이 닥쳐도 변함이 없다는 전언이다.

     

    '의리'라고 쓰고 '으리'라고 읽는 셈이다.

     

  • ▲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캡처


    ◇정피아...프로페서... '풍선효과' 우려

     

    관피아와 견주면 정피아는 그 수가 많지 않다. 다만 전문성과 경험을 담보로 한 관피아에 비해 정피아는 전문성도 상대적으로 미흡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관피아 외에 진영논리가 작용하는 정피아까지 근절해야 낙하산 인사에 따른 국민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공공기관 정보공개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현재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 304곳의 기관장과 감사 가운데 정치권 출신 기관장은 15명 감사는 23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 출신 18대 국회의원 10명이 기관장으로 이동했다. 김성회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 박대해 기술신용보증기금 감사, 이강희·조전혁 한국전력공사 비상임이사,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박보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손범규 정부법무공단 이사장, 박영아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장 등도 해당된다.


    기관장뿐 아니라 상임이사, 감사 등 임원급 인사들로 눈을 돌리면 정피아들의 공공기관 장악 현상은 심각하다.

     

    예금보험공사의 임원들을 살펴보면 재정경재부, 감사원, 통계청 등 금융관련 인사들 뿐 아니라 여성가족부 차관, 새누리당 충남도당 서산태안당원 협의회 위원장 등 출신이 다양하다.

     

    교통안전공단의 임원도 서울특별시의회 의원,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 대통령 비서실장 보좌관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공석이 된 여수광양항만공사 경영본부장 자리도 '정피아'논란이 뜨겁다. 이 자리엔 새누리당 목포시 당원 협의회 위원장을 지낸 양모씨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피아·금피아→감피아→정피아로의 확대 재생산도 우려된다. 이른바 '풍선효과'이다.

     

    재정부 차관 출신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 재정부 기획관리실장 출신 김규복 생명보험협회장, 기재부 국고국장 출신 김근수 여신금융협회장, 역시 기재부 국고국장 출신 최규연 저축은행중앙회장.

     

    모피아 출신이 장악하고 있는 금융업계 이익단체 회장 자리가 전문성이 결여된 정피아 낙하산들이 대신할 것으로 염려된다.

     

  • ▲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캡처


    금감원 출신들의 자리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 4월에는 이기연 부원장보가 여신금융협회의 부회장으로, 정이영 전 금융감독원 조사연구실장이 저축은행중앙회의 부회장으로 선출된 바 있다.

     

    앞서 금감원 전 김영대 부원장보는 은행연합회 부회장으로, 신응호 전 금감원 부원장보는 금융연수원 부원장으로, 금감원 전 김수봉 부원장보는 보험개발원장으로 선임된 바 있다.

     

    이들의 후임이 누가될 지 업계의 촉각이 곤두서 있다.


    앞서 지난 1월 예금보험공사는 문제풍 전 새누리당 충남도당 서산·태안당원협의회 위원장을 신임 감사에 선임하면서 정피아 낙하산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기술보증기금도 박대해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을 감사로 임명한 데 이어 캠코도 송학 새누리당 광진갑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감사로 선임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전문성이 결여된 정피아의 경우 금융권 곳곳에 포진돼 있는데 그동안 사고를 치면 큰 사고를 내온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들(정피아)이 금융권에 낙하산으로 내려오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정치권에 기웃거리는 교수나 준 관피아 수준의 민간인들도 결코 반갑지 않다.

     

    최근 관광공사 사장에 임명된 시각디자인 교수 출신의 변추석씨나 업계 출신으로 코스콤 사장 자리에 오른 정연대씨는 모두 박근혜 대통령 캠프 출신으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그래서 관피아 척결을 공식 선언한 정부 역시 내부적으로는 비슷한 고민에 빠져 있다.

     

    공공기관이나 협·단체에 관료 출신을 전면 배제할 경우 그 자리가 정치인 등 또 다른 낙하산이 독점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 ▲ ⓒ공무원노조 홈페이지 캡처


    ◇관피아 바라기...'공생위한 헐리우드 액션'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공공기관, 공기업 및 공공성을 가진 민간기업에는 새 정부에서 힘깨나 쓸 것 같은 낙하산 CEO가 내려온다.

     

    대부분 노조들은 일제히 "낙하산 반대"를 외치며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인다. 인품과 능력을 인정받아왔던 공직자, 혹은 거물 정치인으로 공덕을 쌓아온 새 낙하산 CEO는 창피해 죽을 지경이다.

     

    이미지를 구길 대로 구긴 낙하산 인사는 비밀리에 노조위원장과 만나 복지 확충, 임금 인상 등의 부분에서 대타협을 한다. 결국 노조는 낙하산을 인정하고 새 CEO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안락한 소파에 등을 기댄다.

     

    씁쓸한 통과의례이다.


    전직관료들의 전문성과 풍부한 경험 그리고 경륜을 활용하여 발전의 전기를 마련한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사례도 적지는 않다.

     

    이들 관료들은 정책정보, 추세나 실태파악에 밝고 경영 환경변화에 대처하는 능력과 전문성도 보유하고 있으며 더욱이 현직 관료와의 연을 갖고 있다.

     

    이런 특장들은 기업이나 업종의 경영활성화를 위한 정부와의 가교 역할뿐 아니라 기업활동을 규제하는  각종 법규, 장해를 극복할 수 있는 수단과 노우하우를 제공해 경영개선에 기여한다. 경제원리가 말해주듯 이렇게 높은 편익과 실적을 보이는데 시장에서 이들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규제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거나 민간기업, 단체가 고위 임원이나 사외이사, 감사 등의 자리에 전직 관료, 법관 등을 모시기에 눈을 부릅뜨는 이유이다.


    무작정 관피아만 쳐다보는 호갱(?)도 적지않다.

     

    정부 및 당국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사활을 걸고 유착을 미리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학계 인사보다는 고위관료가 수장을 맡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하다는 시각이다.

     

    어차피 사정을 손바닥처럼 알고 있는 내부 임원이 승진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힘 있는 관료가 낫다는 그들의 인식도 함께 바뀌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