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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원인(遠因) 가운데 하나로 지목된 이른바 '관피아' 비리 척결을 위한 움직임이 숨가쁘다.
어느 때 보다 강도높았던 대통령의 질타성 담화에 검찰이 특별수사본부까지 만들어 발빠르게 나섰고 관가도 대통령 '주문 사항'에 즉각 반응하기 위해 가시적 성과 위주의 후속 대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민관유착의 부조리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더욱 싸늘해지고 있다
◇ '칼' 빼든 검찰...검찰 인력 20% 투입
"관피아 문제가 세월호 참사의 화를 키웠다. 재앙의 단초가 됐다"(5월19일 박대통령 담화)"정보 수집과 수사 역량을 유착 비리 근절에 집중해 엄정히 수사하겠다"(5월21일 김진태 검찰총장)
"이제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심정으로 환골탈태해야 할 시점이다"(5월20일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개혁의 첫 타깃으로 '관피아'가 지목됐다. 간접사과, 지각사과 논란속에서 끝내 눈물까지 보인 대통령의 담화엔 비장함이 서려 있다. 대통령의 주문을 실천력으로 뒷받침하겠다는 검찰의 다짐은 서슬이 퍼렇다.세월호 참사로 한 달 넘게 몰아친 냉기류에 이어 인사와 사정태풍까지 예고되자 공직사회는 말문을 닫은 채 더욱 움츠러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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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검찰發 사정태풍이 시작됐다.검찰은 지난 21일 전국 검사장회의를 통해 '퇴직 관료가 산하기관이나 민간업체로 자리를 옮겨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전형적인 관피아 범죄로 꼽았다.
수사 대상은 8개 분야의 관피아.
△모피아= 협회ㆍ금융기관에 재취업한 퇴직 경제관료가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
△산피아= 산업통상자원부 출신 관료가 에너지 등 산하기관에 취업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
△해피아=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 퇴직자가 해운조합 등에 들어가 해운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우
△원피아= 한수원 퇴직 임원이 부품업체에 재취업해 시험성적 위조 등 비리를 저지르는 경우
△철피아= 철도공사, 철도시설공단 출신이 민간기업 공사를 발주해 납품비리에 관여하는 경우
△군피아= 장성, 방위사업청 임원이 퇴직 뒤 방위사업체서 계약 선정 때 영향을 주는 경우
△소피아= 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퇴직자가 관련 협회 등에 다시 들어가서 편의를 제공하는 경우
△세피아= 국세청 퇴직 공무원이 기업세무 로비스트로 역할을 하는 경우 등이다.
사실상 모든 관피아가 대상이다.
주목할 것은 검찰의 강력한 수사의지이다. 이미 검찰은 이번 수사를 전국의 각급 검찰로 확대하면서 팀이 아닌 본부체제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수사관과 실무관을 합친 전체 검찰 인력 1만명 가운데 20%가 넘는 인력이 투입되는 매머드급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수사검사가 공소유지까지 맡아 처벌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했다.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검찰조직의 특성을 고려할 때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불허다.
검찰은 특히 그동안 각종 수사에서 도움을 받아오던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사정·감독기관들도 이번 수사에서는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관 출신 인사들도 수사 대상에 오를 것을 염두에 둔 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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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사 대상은...최대 1천명
1차 대상은 안전감독 업무와 인허가 규제 업무, 조달 업무와 직결되는 공직 유관단체 기관장과 감사직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대통령이 담화에서 직접 언급하며 앞으로 공무원들을 임용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분야이기도 하다.
안전행정ㆍ해양수산ㆍ산업통상자원ㆍ국토교통부 등 관련 부처의 주요 산하기관 35곳의 임원 350명 가운데 관피아로 분류되는 비율은 20% 정도인 70여명이다.
전기안전공사나 가스안전공사, 교통안전공단과 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기관명에 '안전'이 포함된 정부 산하기관 12곳의 관료 출신은 40여명으로 전체의 30%에 달한다.
8대 관피아중 모피아(금피아), 산피아가 1, 2순위로 꼽힌 점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양대노총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부실과 방만경영으로 중점관리대상으로 선정된 38곳의 공공기관장중 18명(47.4%)이 관료 출신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한국거래소·한국투자공사·한국예탁결제원·한국조폐공사·예금보험공사 등에는 기획재정부 출신이, 한국무역보험공사·한국수력원자력·한국중부발전·한국전력공사·한국광물자원공사 등에는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이 각각 기관장으로 있다.기관장 뿐 아니라 상임감사와 이사 등으로 확대할 경우 이들 기관의 관피아는 총 133명에 달했으며 기획재정부 출신이 21명(15.8%)으로 가장 많고 산업통상자원부 20명(15.0%)으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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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모피아와 산피아의 상호연결 관계도 살펴보겠다는 입장이다.
이른바 '눈먼 돈'으로 치부되는 정부의 각종 정책자금은 대개 산자부 산하기관의 추천에 따라 모피아 휘하의 금융권에서 대출이 이뤄진다.
검찰이 검사장 회의직후 에너지관리공단의 2급 간부를 전격 구속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실제 유병언 일가의 회사인 아해는 2011년 산업은행으로부터 2억4500만원을 1.5% 금리로 대출 받았다. 이 돈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운용하는 에너지이용합리화기금이다.
검찰은 유씨 일가 계열사가 싼 값에 빌릴 수 있는 정책자금을 다른 계열사 지원금으로 사용하거나 비자금으로 빼돌린 것으로 보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얽히고 설킨 실타래가 각종 부정과 비리를 방조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모피아에 대한 시선은 지난해말 동양그룹사태와 최근의 KB사태와도 맞닿아 있다.
실물경제 활동을 관장하며 국민에게 직접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산피아는 관피아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큰 집단으로 원피아(한국수력원자력 출신)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전·현직 한수원 직원 200여명이 피고인석에 섰던 2013년 원전비리 파문 당시 한수원 사장과 후임 사장 역시 모두 산피아였다.
'셀프 개혁'하겠다고 대대적으로 공언했지만 이달초 한수원 부사장이 부품 납품 청탁과 함께 1000여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한수원에는 또다시 피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해피아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일단 해피아 비리 핵심으로 해운조합을 꼽고 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나자마자 사퇴 의사를 밝혔던 전 해운조합 이사장은 조합비를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 출국금지 상태다. 2010년부터 3년간 해운조합을 이끌었던 직전 이사장도 횡령혐의가 포착됐다.
직전 이사장은 해수부 해운물류본부장, 부산지방해양수사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해수부 고위 관료 출신의 전형적인 해피아다.
국민 안전을 담당했던 소피아(안전행정부, 소방방재청 출신)나 해경 비리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지난 19일 동해지방경찰청 장모 경정을 객선 운항관리자들의 허위 안전점검을 묵인한 혐의로 구속했다.
방산비리의 주범인 군피아 척결도 관심이다. 방산업체의 납품 비리가 잇따르는 것은 허술한 품질 검증 시스템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국방부 출신 인사나 퇴직 장성들의 비리가 발생한다.
이밖에 기업의 세금탈루를 돕는 세피아에 대한 수사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은 주세법에 따라 주류업게 전반의 관리 감독권을 갖고 있는데 퇴직후 자신이 감독하던 주류업계로 이직한 '전형적인 관피아'들이 적지 않다.
통계작성의 기준과 범위에 따라 관피아 숫자는 천양지차이다.이번 관피아 수사대상이 최대 1000명을 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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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왔다'...줄사퇴 예고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관피아 출신 기관장들은 연임은 고사하고 중도사퇴 압박에 직면하게 됐다. 현재 공모가 진행중인 공공기관에서 관료 출신 후보군은 아예 포기하는 분위기이다.
기관장이 공석중인 강원랜드, 인천공항공사와 세월호 참사로 수장이 사퇴한 선박안전기술공단, 한국해운조합 등에서 관료출신 배제는 기정사실화 됐다.
연내 임기가 끝나는 현직 기관장들 역시 바짝 숨죽이고 있다.세월호 참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천항만공사 사장, 어촌어항협회 이사장의 임기는 8월에 만료되고 울산항만공사 사장 역시 12월이면 임기가 종료된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6월,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은 8월, KOTRA 사장의 임기는 11월이면 끝나는 가운데 수장들은 연임은 고사하고 중도 퇴임마저 고민해야할 판이다.
재정부와 한은, 금감원 출신 기관장과 감사 등이 대거 포진해 있는 금융권 역시 전전긍긍하고 있다.
금융업계 최대 이익단체인 은행연합회는 오는 11월 10년만에 민간 출신 회장이 선임될 가능성이 커졌다. 주택금융공사 사장 자리도 당분간 비게될 전망이다.
기획재정부 출신 인사가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던 손해보험협회장 자리는 최근 관피아 논란이 확산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일부에서는 새로 임명하는 기관장은 몰라도 현직까지 거론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지만 반향은 적다.
정부 부처의 한 국장급 인사는 "현재로선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의 임원으로 임명된 전직 관료가 당장 옷을 벗게 될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각 부처에서 직행한 관피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높은 상황에서 부담을 안고 임기를 채우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위기감이 감도는 관가에선 명퇴바람도 불고 있다. 조직해체가 결정된 해양경찰에선 벌써부터 명예퇴직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평소 월 평균 10명 가량이던 신청자가 이달 들어 벌써 30명이 넘었다고 한다. -
◇'관피아의...관피아에 의한...관피아를 위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관료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위 관료들은 퇴직 후 관련 공기업이나 유관기관, 산하단체 등에 재취업해 민·관 그리고 전직과 현직이 유착하는 고리를 만들며 끼리끼리 문화를 오랫동안 향유해 왔다.
'관피아의...관피아에 의한...관피아를 위한...' 관피아 공화국인 셈이다.
이러한 엘리트 카르텔이 자연스레 부패 카르텔로 진화했고 수십년간의 적폐가 이번 세월호 참사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끄러운 민낯을 낱낱히 드러낸 관피아 비리를 척결하고 새 살과 새 순을 돋게 해야한다.
더 이상 늦출 수도 미룰 수도 없는 관피아와의 전쟁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