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 권리금 법적 책임 無…강제퇴거 정당한 재산권 행사전문가 "임차인 보호필요, 시장논리 맡겨둘 문제 아니다"
  • ▲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일대가 임차인과 건물주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사진은 서촌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모습.ⓒ뉴데일리경제
    ▲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일대가 임차인과 건물주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다. 사진은 서촌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모습.ⓒ뉴데일리경제


    # 서울 종로구 서촌에 있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서 ㄱ치킨을 운영하고 있는 조옥선(65)씨는 지난해부터 퇴거를 요구하는 건물주에 맞서 임차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다. 건물주는 보상금 2000만원을 줄 테니 점포를 비워달라고 요구한 데 이어 강제 집행을 통한 조씨의 퇴거를 시도하고 있다. 조씨는 현재 인근 점포 권리금이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2000만원으로 도저히 생계를 꾸릴 수 없다며 버티고 있지만 서울시, 종로구청, 법원 모두 정당한 재산권 행사라며 건물주의 손을 들어준 상황이다.  

    서촌 일대에서 임차인과 건물주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임차인들은 생존권 보장을 내걸고 오랫동안 공들인 점포를 사수하겠다고 말하지만 건물주들은 정당한 재산권 행사가 침해되고 있다고 항변한다.

    12일 오전 9시, 뉴데일리경제는 대중교통으로 30여분을 달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에 도착했다. 양 옆으로 다양한 음식점들과 술집들이 들어서 있었다. 전선에 걸린 만국기가 이국적인 풍모를 더했다.

    이곳에서 만난 조옥선 씨는 "2010년 경기 안양시에 있는 전세를 빼서 권리금을 내고 영업을 시작했다"며 "그런데 5년 계약 기간이 지나자마자 건물주가 재계약을 거부하고 점포를 비워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촌에 점포를 잃은 상인들이 많다"며 "5년 전과 비교해 서촌 땅값과 임대료가 크게 올랐는데 애써 점포를 가꾼 임차인들의 권리는 찾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해당 건물주의 업무 대행을 맡고 있는 A 중개사무소는 "법적으로 다툼이 끝난 사안"이라며 "더 할 말이 없다"고 답변했다.

  • ▲ 임차인 권리 보호를 위한 투쟁을 지지하는 쪽지가 점포에 붙어 있다.ⓒ뉴데일리경제
    ▲ 임차인 권리 보호를 위한 투쟁을 지지하는 쪽지가 점포에 붙어 있다.ⓒ뉴데일리경제


    조씨는 임대료를 지불하고 영업을 계속할 의사가 있지만 계약 갱신을 거부당한 데 이어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권리금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나가야 한다. 권리금은 기존 점포가 보유하고 있는 고객과 영업 방식을 이어받는 대가로 임차인끼리 주고받는 돈이다. 

    임영희 맘편히장사하고싶은상인모임 사무국장은 "기본적으로 건물주는 권리금과 관련이 없지만 임차인을 내보낼 때 자기가 장사를 하겠다는 의도라면 권리금을 내야 한다"며 "그런데도 건물주라는 이유로 권리금 지급을 거부하면 임차인은 응당 받아야 하는 권리금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이전에 계약이 끝난 임차인들은 권리금반환청구권이나 계약갱신요구권 등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없으며 조씨도 이 경우에 해당한다"며 "건물주가 계약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임차인을 퇴거시키는 것은 약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서촌은 상가 활성화로 지난 5년간 땅값이 3배 가까이 올랐고 권리금 상승폭도 컸다"며 "그럼에도 지역 가치 상승에 기여한 임차인의 권리가 무시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 ▲ 서촌뿐만 아니라 홍대와 이태원 등 서울 상업지역 곳곳에서 임차인들이 밀려나고 있다. 사진은 서촌에 있는 임대현수막 모습.ⓒ뉴데일리경제
    ▲ 서촌뿐만 아니라 홍대와 이태원 등 서울 상업지역 곳곳에서 임차인들이 밀려나고 있다. 사진은 서촌에 있는 임대현수막 모습.ⓒ뉴데일리경제


    이처럼 유망한 도심 상업지역에서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부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본 의미는 중산층들이 도심 주거지로 유입되면서 고급 주택가를 형성해 원주민이 외곽지로 밀려나는 것이지만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서울에선 서촌 외에도 △홍익대 거리 △이태원 경리단길 △용산구 한남동 △성동구 성수동 등에서 소규모 카페, 갤러리, 공방 등을 운영하는 상인들이 건물주의 요구에 의해 점포를 잃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는 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은 두 갈래로 나뉜다. 우선 당국의 적극적인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현일 열린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나 자치단체에서 임차인 권리 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임대료 규제나 계약 기간 연장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면서도 "건물주를 옥죄는 것보다 원하는 임대료 수준의 돈을 당국이 임차인에게 지원하는 특별대책도 고려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시장경제 시스템에서 많은 수익을 거두려는 건물주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다"면서도 "임차인이 상대적 약자인 현재 여건에서 일정 수준의 규제는 필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반면 젠트리피케이션을 도시 개발에 있어 필연적인 과정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계적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은 사례가 드물다"며 "개발이 진행되면서 원주민들이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략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는 업종이라면 행정기관이 건물을 매입하고 많은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며 "다른 방식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재생의 일환"이라며 "임차인 문제가 있다지만 개발이 이뤄지면 필연적으로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의견은 달랐지만 젠트리피케이션에 있어 건물주를 비판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며 행정기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시각은 같았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임차인을 선, 건물주를 악으로 보는 것은 이분법적 시각"이라며 "예컨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규정하고 있는 계약 보호 기간 5년이 임차인에게 너무 짧은 경우가 있겠지만 상황에 따라 임대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이 건물주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고 강제집행을 허가한 것은 재산권 보호라는 가치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며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선 입법이나 사법이 아닌 행정이 중재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