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혹' 한국사업단 "금명간 공식 질의해 대응"번복 가능성 작지만, 낮은 수준 입찰준비 의견도
  • ▲ 말~싱사업 포기 기자회견.ⓒ뉴시스
    ▲ 말~싱사업 포기 기자회견.ⓒ뉴시스

    추정 사업비 16조 원쯤의 대형 철도 인프라 사업인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도 건설사업(이하 말~싱사업)이 돌연 없던 일이 됐다.

    우리나라와 일본, 유럽연합 등 상부(궤도·시스템·차량) 사업 입찰을 준비하던 수주 참가국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친중(親中) 성향 나집 라작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실각으로 유력 주자였던 중국이 사실상 아웃되면서 한·일전 양상으로 바뀐 수주전에 기대감을 키웠던 우리나라 사업단은 공황상태다.

    우리나라 사업단은 일단 말레이시아 발주처에 공식적으로 사업 향방을 문의할 계획이다. 가능성은 작지만, 발표 번복을 염두에 두고 낮은 수준에서의 입찰 준비를 계속하자는 의견도 내부에서 제기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29일 철도업계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하티르 모하맛 말레이시아 총리는 전날 기자회견을 하고 국가부채를 줄이기 위해 말~싱사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말~싱사업은 말레이시아 구간 300㎞와 싱가포르 구간 30㎞를 고속철로 잇는 민관협력사업으로, 동남아 첫 국가 간 고속철도로 주목받았다. 사업비가 600억 링깃(16조2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마하티르 총리는 이날 "최종 결정이다. 다만 싱가포르와 맺은 협약이 있어 (사업 중단 확정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업 추진에 막대한 자금이 들지만, 구간이 짧아 수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 말레이시아~싱가포르 고속철 건설사업 MOU.ⓒ연합뉴스
    말~싱사업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업무협약을 맺고 공동 추진했던 사업이다. 사업이 중단되면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에 적잖은 피해보상금을 줘야 한다. 마하티르 총리는 보상금 규모를 5억 링깃(1350억원)쯤으로 추산했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 정부로부터 공식 입장을 전달받지 않았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말로 미뤄진 상부사업 입찰을 준비하던 수주 참가국들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한국사업단 관계자는 "말레이시아 내 사업은 의사결정이 어렵지 않겠지만, 말~싱사업은 양국 간 협약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 사업 포기가 쉽지 않을 거라 봤는데 한 마디로 당혹스럽다"며 "일본 등 다른 경쟁국도 마찬가지 반응"이라고 말했다.

    사업단 다른 관계자는 "마하티르 총리가 이번 선거에서 나집 총리가 이끄는 집권당의 친중 의존 성향을 문제시하면서 말~싱사업을 재검토하겠다고 했었으나 그동안 쓴 돈이 적지 않은 만큼 설마 하고 생각했다"고 부연했다.

    말레이시아의 이번 결정은 국가부채 감축을 위해 내려졌다. 지난 9일 치러진 총선에서 61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한 말레이시아 신정부는 전 정권이 1조873억 링깃(293조원)에 달하는 국가부채를 7000억 링깃쯤으로 축소·은폐했다며 대대적인 긴축재정에 나섰다.

    신정부는 말~싱사업과 중국이 추진하는 총사업비 550억 링깃(14조8000억원)의 동부해안철도(ECRL) 등 대형 인프라 사업을 중단하면 부채 규모를 20%쯤 줄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사업단 관계자는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되는 상부사업 입찰이 연말로 미뤄지면서 입찰제안요청서(RFP) 내용이 보완됐다. 2~3조원이 드는 차량기지를 재정사업으로 전환하는 내용이 포함됐다"며 "발주국 정부가 나랏돈으로 짓겠다는 것이어서 자금조달 부담이 줄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예 사업 자체가 물거품이 됐다"고 망연자실했다.

    우리나라 사업단은 오늘내일 중 말레이시아 발주처에 말~싱사업의 향방에 관해 공식 질의할 방침이다.

    사업단 관계자는 "최고위층인 총리가 '최종 결정'이라고 말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발주국 직원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테니 만족스러운 답변이 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일단 공식 질의서를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투자가 늦어져 매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지만, 그런데도 현지 용역 등으로 적잖은 돈을 쓴 상태"라며 "일부 외국 파트너사는 정황을 살피면서 만일에 대비해 낮은 수준에서 입찰 준비를 계속하자는 의견도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